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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Jan 14. 2024

따뜻한 천문학,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유하는 과학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읽고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심채경)


‘어떤 대단한 계기로 천문학을 선택한 것도, 어릴 때부터 오매불망 천문학자가 되기만을 그리다 마침내 꿈을 이룬 것도 아니다. 삶을 따라 흘러 다니며 살다 보니 지금 이러고 있다’ p145


저자의 겸손한 고백이겠지만, 격한 공감으로 쓴웃음만 남는다.

10대 시절의 주입식 교육은 미래를 고민할 시간조차 용납하지 않았고, 단지 수학이나 과학 점수가 조금 더 높다는 이유로 이과행 판정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휩쓸렸다.


‘적성’이란 떠밀려 온 자리에 싹 틔우는 생존 능력에 불과하다. 인생 갈림길 ‘수능’. 한순간 당황하면 저 멀리 공장으로 흘러가 오래 황당하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있구나’

적성에 맞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큰일이다.

생각보다 세상 물정에 어둡기 때문이다.

저자 덕분에 뜬금없는 세상 탓이다.


이 책은 과학자, 인간, 엄마로서의 삶을 담담히 그린다. 자연스레, 지구라는 행성에 발 붙이고 살면서 마음속에는 우주를 품은 지구인 과학자가 떠오른다. 어린 왕자와 조우하는 캐릭터 중 하나로 제격이다.

책을 펼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어린 왕자와 자못 진지한 지구인 과학자 옆에 서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책을 덮고, 우주와 관련한 짧은 생각을 메모해 둔다.


<우주 도화지>

거리의 화려한 불빛은 밤하늘을 뒤로 숨긴 지 오래다. 나아가, 스마트폰은 인간의 시선을 빼앗았다. 밤낮 할 것 없이.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대로 생물학적 진화의 모습이 예상될 정도다.

앞으로 굽어진 목뼈, 돌출된 퀭한 눈.

길거리에서, 전철에서, 휴게실에서 모두, 스마트폰에게 고개 숙인다.

가히 종교다. ‘스마트폰을 경배하라’


그사이, 우리가 놓친 것은?  

하늘. 푸른 하늘 너머, 빛과 그림자가 무한히 펼쳐진 우주 도화지. 그 안의 지구와 나.

관점의 이동.


<남녀의 기원>

1977년 골든레코드를 싣고 지구를 떠난 보이저 1호. 목표했던 모든 천체를 방문한 뒤 태양계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홀로 향한다.

캐럴린 포코와 칼 세이건은 8년간 설득하여 마지막 임무를 허락받는다.

그것은 인류를 향한 마지막 작별인사였다.


보이저호는 뒤돌아 본다.

태양 옆 행성 ‘지구’가 보인다.

‘창백한 푸른 점’

이로써 허무가 증명되었다. 인류는 지구에 붙은 미생물인지 기생충인지 모르지만 지구조차도 우주의 티끌일 뿐, 아웅다웅 살 이유는 없다.


천문학자 엄마는 보이저 1호를 보며,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자녀의 모습을 떠올린다.

부모 눈에는 마냥 아기 같지만, 어느새 학교와 집을 떠나, 좌충우돌 끝에 홀로 서며 어른이 되어 간다. 결국, 태양계를 벗어나 자신만의 우주로 향할 테다.

‘나는 그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아주리라’ p156


삐딱한 독자로서, 내친김에 한발 더 나가보자. 자녀의 결혼, 결혼 후 갈등으로 상상을 이어간다.

누군가 우연히 또는 운명처럼 만난 보이저 1호와 ‘랑데부’한다. 골든레코드에 감동하고, 보이저 1호를 품에 안고 지구를 방문하는 존재를 상상한다. 그 누군가는 다른 은하계의 생명체일 것은 분명하다. 운이 좋으면, 물질의 원시조합이나 진화의 방향이 지구와 유사하여 머리와 몸통 한 개씩, 팔다리 두 쌍씩 갖고 있는 고등동물일 수 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는 익숙한 지구형 행성만으로 대폭 축소하며 남녀 간의 이질성을 설파했지만, 애초에 태양계 크기가 아닌 은하계 규모이므로 상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기억상실증 탓에 최소한의 동지애는 남아 있다.

‘같은 인간인데, 저 인간은 왜 그러지?’

알고 보면, 같은 인간이 아니었다.


어떤가. 이과형 통찰력도 꽤나 쓸모 있다.

증명할 수 없을 뿐 현상은 넘쳐나니까.


‘달에 집을 짓는다면 지구로 향하는 창을 낼 것이다. 낮에도 밤에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지구의 위치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창문이 곧 생동하는 액자가 될 테니’ p230

이런 천문학자를, 주변에서는 뜬 구름만 잡을까 배곯을까 우려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의 시선을 ‘신’에게서 다시 ‘인간’으로 되찾아 준 영웅이 바로 천문학자라는 것을.


고독하지만 낭만적인 하늘 문학, 천문학.

덕분에 천문학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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