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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May 04. 2024

본질 vs 비본질

-폴 세잔: 길을 헤매는 독행자

"조잡한 실험"

"구역질 나는 오물"

"충동적이고 무의미한 미술"

"완전 실패작"


오늘날 '현대미술의 아버지'란 칭호를 받으며, 피카소가 자신의 유일한 스승이라고 추대한 폴 세잔이 생전에 들었던 평가다.      

19세기 후반, 파리 화단을 풍비한 도회적이고 화사한 인상파 -르누아르와 드가와 같은- 그림과는 달리 세잔의 그림은 올리브 그린과 갈색조의 색채와 단순한 형태 그리고 거친 필선과 통일되지 않은 원근법으로 '테크닉이 부족하다', '야만인처럼 발광한 그림이다'란 혹평을 들었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한두 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전문성을 갖추는 데에 비해 세잔은 정물화, 인물화, 풍경화, 풍자화 등 온갖 장르를 시도했는데 본래 창의적인 사람이 두루두루 관심사가 넓은 법이지만 세잔에게 있어서는 이것 또한 혹평거리로 작용했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서였을까, 세잔 스스로도 자신이 본 것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 놓을 수 없다며 늘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그림을 그리다 붓을 천장에 던지며 난폭한 행동을 일삼기도 하는가 하면, 그림을 완성해 놓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파기해 버리는 일이 일쑤였다.

이런 완벽주의적이고 다혈질적인 모습과 달리 친구 에밀 졸라의 주선으로 가끔 파리의 예술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는 그는 말수 없고 경계심 강한 모습을 보이며 외톨이를 자처했다.

화단의 비난과 대중의 몰이해 그리고 잘 나가는 동료 화가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세잔은 한때 그림을 포기해야 하나 고심했던 것 같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법률가가 되길 바라셨던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화가가 되겠다고 호기롭게 나섰으나 거듭된 미술대학의 낙방과 살롱전의 낙선은 너무나 초라하고 실망스러운 성적표였다.

이런 세잔을 곁에서 본 에밀 졸라는 법률가와 화가의 길에서 우왕자왕 하는 세잔이 안타깝고 또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그가 따끔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세잔을 질책하였다.

"내가 자네 입장이라면 난 결말을 내고 말겠네. 모든 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걸겠네. 예술과 법률 사이에서 더 이상 우왕좌왕하지 않겠네. 자네가 이런 어정쩡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괴로움을 받는다는 걸 잘 아네. 그래서 자네가 안되었다는 생각도 들어. 하지만 두 눈 똑바로 뜨기를 바라네. 화가가 되든지 법률가가 되든지 양자택일하게. 자네는 좀 게으른 데가 있어."(1860년 7월 에밀 졸라가 세잔에게 보낸 편지)

Paul Cézanne, Paul Alexis Reading a Manuscript to Zola, 1869-1870

세잔은 이런 친구의 충고를 고깝게 듣지 않은 것 같다. 그림 <졸라에게 책을 읽어 주는 폴 알렉시스> 은 미완성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세잔이 파기하지 않았다.

그림 왼편에서 옆모습을 하고 의자에 앉아 책을 읽어주는 사람은 폴 알렉시스라는 인물(에밀 졸라의 제자이자 비서)이고 오른편에서 가만히 듣고 있는 남자가 에밀 졸라이다. 에밀 졸라는 간단히 스케치만 되어 있음에도 강직하고 날카로운 문인의 품성이 잘 드러난다.

아마도 세잔이 에밀 졸라의 올곧고 야무진 모습을 부러워하고 또 사랑한 것 같다.


현실과 타협하고자 하는 유혹을 떨치고, 혹은 현실을 외면하는 데서 발생하는 불안을 떠안으며 선택한 예술의 길에서 세잔이 탐구하고 몰두하였던 것은 자연의 '본질'이다.

세잔은 자연외양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멈추고 자연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형태를 찾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그에게 있어 늘 변화하는 자연의 외양은 비본질인 것으로 그는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원칙과 속성을 그리고자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세잔은 모든 자연은 구, 원뿔, 원기둥으로 되어 있다는 통찰을 얻었다. 예를 들어 사과는 구, 산은 원뿔, 나무는 원기둥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창조된 새로운 양식은 피카소와 마티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훗날 추상화의 뿌리가 된다.


Paul Cézanne , Still Life with Apples, 1878

나는 세잔의 이러한 독특한 그림 양식이 그가 예술에 전념하기로 한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부르주아 사회에서 가장 이해받지 못한 직업군인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감내해야 했다. 사람들은 예술가를 호기심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다가도 "그래서 그 일로 얼마를 법니까?"라며 돌연 힐난과 동정을 보낼 태세를 취하니 말이다.

그렇게 '밖'에선 내 근원에 대한 열망과 결핍감에 시달려 메마르고 '안'에선 세상 흐름에 맞춰서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아야 한다는 불안과 강박에 쫓기다가 마침내 내린 결론. 오직 본질(예술)만을 남기고 비본질(인정, 돈, 성공, 불안 등)은 제거하겠다는 그의 의지와 태도가 자연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도 영향을 끼친 게 아닐는지.

누군가의 말대로 한 작가의 통찰력이 대중으로 하여금 새로운 취향을 만들게 하는지, 아니면 대중적인 분위기에 의해 한 작가가 마침내 합법적으로 인정되는지 알 수 없다. 지금이야 사과 하나로 현대미술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듣는 세잔이지만 생전에 그가 얼마나 외로웠고 고약한 신경쇠약에 시달려야 했던가.

우리 중에도 누군가 세잔처럼 지난한 길 찾기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현실계와 상상계 사이를 오가며 길을 헤매고 있을모른다. 망설이고 주저하 아무대도 가지 못하거나 낯섦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박차고 나온 길 되돌아 가려는지 모른다. 가끔 우연히 앞서 걸은 나와 비슷한 이의 발자국을 만나 잠시나마 위안받고 힘으로 다시 한 발 한 발 힘겹게 발걸음을 조정해 가면서 어두운 길을 더듬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상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같은 처지로.

그러나 내 길에 당장 전망이 없어 보인다고 길을 가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걸 세잔으로부터 배운다.

길을 찾는 과정이란 원래 모호하고 애매하며 의심스러운 것이다. 그럴땐 내가 가장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는 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본질'로 수렴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잔가지들은 제거하면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에만 몰입하는 것. 그것이 세잔이 보여준 예술혼이자 그의 작품이 세세토록 사랑받게 된 원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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