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양 Apr 20. 2024

신경통

태어날 적은 3.7kg 우량아로 났는데 크면서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약골 중에 약골이다. 누가 보면 내내 주방일 하는 줄 알게 손은 자주 짓무르고 조금만 무리했다 싶으면 온몸에 화산 터지듯 포진이 으니 "참으로 양반체질이다"라며 친구에게 놀림을 사도 다.

고작 이런 걸로 되게 엄살다는 소릴 듣기 전에 나는 얼른 지병도 하나 갖고 있음을 서둘러 혀야겠다. 그것은 삼차신경통이란 것인데 인구 10만 명당 4.5명 꼴로 발생한다고 알려진 이 뇌신경통을 나는 스물다섯에 처음 겪은 이래로 서른여덟 난 지금까지 앓고 있다.

그렇다고 매일같이 통증에 시달리는 건 아니고 뭐랄까, 그래, 이를테면 느닷없이 일어난 지진 같은 것이다. 땅이 한번 용트림하면 도로가 갈리고 건물이 무너지듯, 통증은 잊을만하면 찾아와 내 머리통을 부수고 얼굴을 찢는다. 기다란 송곳이 잇몸 깊숙이 사정없이 들쑤시고 날카로운 칼이 내 뺨을 사정없이 할퀴는 듯한 고통은 몰핀주사 없이는 견딜 수 없게 끔찍하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사실 나는 이 신경병이 아주 싫지만은 않다. 이유인즉슨 복용하는 약 카르바마제핀에 붙여진 문구 때문이다. '이 약은 간질병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나는 내가 빈센트 반 고흐와 같은 고통을 공유한단 것이 못내 기쁜 것이다. 마치 예술가의 증표라도 받은 것 마냥 은근한 카타르시스가.

뿐인가, 이 고통은 내게 그럴싸한 변명거리도 만들어 주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덮쳤던 때, 나는 다니던 학교는 마저 마치고 가라아버지의 말을 기어이 안 듣고 마치 영영 돌아올 것처편도 항공권을 끊어 호기롭게 독일로 떠났다. 그리고 나는 이왕에 떠난 유학길 박사학위까지 따오라는 아버지의 말을 기어이 듣고 별안간 귀국했다. 

이게 웬 돈 낭비에 시간 낭비냐며 내게 힐난의 총알을 가득 장전하고 대기하던 모든 입들은, 마침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발병한 삼차신경통 앞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닫혔다.

덕분에 학업중단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는 무마되고 부모의 기대를 저버린 괘씸죄 또한 면죄받았다.

실업의 기간도, 짧은 직장생활도 경통이 또 발발하였단 이유를 대면 나는 어렵지 않게 주변인들의 수긍을 살 수 있었다. 그러니 이만하면 병도 얻을 만한 것이다.

한 번은 누가 "이게 다 네가 신기가 있어서다. 네 병은 신병이야" 란 소리를 해댔는데, 나는 그 말이 신박한 해석인지 얼토당토 한 개소리인지 따지기보단 어떤 운명적인 힘이 내게 작용하는 게 아닌가 싶어 내심 야릇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아, 나는 예술가의 기질을 가졌구나! 아, 나는 신에게 부름 받은 자였구나!  

그러자 가슴이 울렁리는 거다.  나의 사회 부적응도 유별난 인간결벽증까지도 천재의 속성이자 샤먼의 징표가 되었으니!

그리고 이내 안심했다. 사원증 하나 목에 못 걸었다고 기죽을 필요 없구나, 평생 아무도 모르게 아무개로 살까 봐 안달 날 일도 없구나. 땅에 발 못 붙이고 부유하는 마음도, 삶의 마디마디마다 혹독한 배반을 감내해야 하는 일도 모두 내 태생에 박힌 바코드 때문이니까.

나는 그렇게 '어쩔 수 없음'을 허용하고 운명이란 휘장 아래에 나를 은신시키며 깊이 했다.

그러나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 것은 결국 나도 알고 세상사람들도 다 알게 돼있다.

팔자소관이라고 하기엔 내 병은 죽을병도 아니요, 지성과 영성 사이에 양다리를 걸친 몸이니 누구 말대로 신을 받들 몸도 못 된다는 것을. 그저 유별나게 예민한 종자가 번씩 지 분에 못 이겨 일으키는 고약한 신열일 따름이다.

나는 염치를 모르고 아우성치는 내 몸을 달래어 총탄이 빗발치는 생활의 전쟁터에 세우는 상상을 해봤다. 운명이란 휘장을 걷어내고 생의 한가운데서 깃발을 쳐들고 우렁차게 선포하는 상상.

이제 나는 낭만과 심약과 허영심의 포로가 아니라 과 눈물과 인내와 성실로 무장한 기사가 되겠노라!

그러자 나는 다시 두려워졌다. 

얼굴 찌릿찌릿 전기가 흐르고 덜덜덜 턱이 떨리고 잇몸이 벌어지고 어금니가 숭숭 빠진다.

아뿔싸, 이제 나는 망한 것이다.

더는 아무것도 변명할 게 없는 나를 이제 무엇으로 긍정할 수 있단 말인가?



Harald Slott-Møller, Spring, 1896


매거진의 이전글 나에게 시간을 내지 않는 연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