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기자 Aug 23. 2023

"태양은 지구 주위를 돈다" 그게 '팩트'다

팩트는 '진실'이 아니다.

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말이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말이나 모두 '팩트'다.

"그거 팩트(fact)야?"


요즘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입니다. 아마 여러분도 한번쯤 써보셨을 것입니다. "그거 진짜야?", "그거 정말이야?"라는 뜻으로 쓰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런 뜻으로 '팩트'라는 말을 쓰는 건 잘못됐다는 사실, 아시나요?


'팩트'는 우리말로 하면 '사실'인데, 이는 'true'(우리말로 '진실' 혹은 '참')와는 구별돼야 합니다. 논리학을 배우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이 그 둘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중고등학교의 도덕(혹은 윤리) 수업에서도 배울 정도로 기본적인 약속입니다.


개념적으로 정의하자면 '팩트'는 참(true)-거짓(false)을 판별할 수 있는 명제(문장)를 말합니다.


예를 들자면, '8월15일은 광복절이다'라는 명제는 참-거짓을 판별할 수 있기 때문에 '팩트'입니다. 그렇다면 '8월15일은 한글날이다'라는 명제는 어떨까요? 팩트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닙니다. 그 역시 참-거짓을 판별할 수 있기 때문에 '팩트'입니다. 다만 '틀린 팩트', '거짓인 팩트'인 것이죠. 제목에서처럼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명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팩트는 '진실'이 아니고,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따져봐야 하는 문장'인 것입니다. 일상적으로 쓰는 "그거 팩트야?"라는 말도 "그 팩트, 진실(참)이야?"라고 해야 맞습니다.


'쓸데없이 머리 아프게 그런 걸 왜 구분하고 사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용어 구분은 일상생활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가령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를 다룰 때 그 같은 개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요즘은 모든 사람이 온라인 세상에서 소통하고 갈등을 겪기 때문에 그같은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죠.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의 차이는 '팩트'를 언급했는지 여부입니다. 팩트를 말해서 처벌받는 것이 명예훼손죄고, 팩트가 아닌 단순 비방을 말해서 처벌받는 것이 모욕죄죠. 여기서 말하는 '팩트'란 앞서 말했듯이 '진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참-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문장'을 의미합니다. 즉 '거짓인 팩트'를 말할 경우에도 명예훼손죄, 더 구체적으로는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게 됩니다.


-"바보같은 녀석"(참-거짓을 판별할 수 없는 문장을 말했으므로 '모욕죄')

-"건우가 바지에 오줌 쌌대요"(진실인 경우. 참인 팩트를 말했으므로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건우가 바지에 오줌 쌌대요"(거짓인 경우. 거짓인 팩트를 말했으므로 '허위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


특히 언론 기사를 독해할 때는 '팩트'와 '진실'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요, '팩트'가 아님에도 '팩트'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 문장, '거짓인 팩트'인 문장이 곳곳에 산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진실인 팩트'만으로 이뤄졌음에도 '거짓'인 기사도 아주 많습니다. 


앞으로 연재할 글에서 그에 대한 내용을 하나하나 풀어가보려 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