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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자 Aug 30. 2023

'철학'은 대체 뭘 배우는 학문인가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르는 그 단어에 대하여

앞선 글에서 '하나의 현상이라도 10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0개의 진실이 있다'라고 썼습니다.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진실은 하나지, 사람마다 다르다면 그걸 진실이라고 할 수 있나?" 당연히 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 오늘은 '철학'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


사람들은 누구나 '철학'을 말합니다. '인생철학', '직업철학', '정치철학' 등으로요. 하지만 그런 일상적 용어 말고,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개념을 알고 계시나요? 대학에서 '철학과'라 하면 대체 뭘 배우는 걸까요?


철학이 대체 뭔지 그 개념이 쉽게 추측되지 않는 이유는 단어에 무엇을 배우는 학문인지가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통 학문이라 하면, 역사학은 역사를, 정치학은 정치를, 경제학은 경제를, 심리학은 심리를 배우죠. 단어에 배우는 대상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런데 철학은 '밝다' 혹은 '알다'라는 뜻의 철(哲)과 학(學)이 결합한 단어입니다. 굳이 단어 자체의 의미를 설명하자면 '세상의 이치를 밝히는(알게 되는) 학문' 정도로 쓸 수 있겠네요. 아니, 세상의 이치를 밝히지 않는 학문도 있나요? 모든 학문이 자신의 분야에서 세상의 이치를 밝히죠. 이는 철학이라는 뜻의 영단어 'philosophy'도 마찬가지입니다. 'philo'(사랑한다)와 'sophy'(지혜)'의 합성어죠. 왜 철학만 이렇게 있으나마나 한 이름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를 알려면 철학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철학은 인류가 만들어낸 최초의 학문입니다. 철학이 있기 전에는 어떤 학문도 없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당시 그리스는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쌓아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해지면서 학문과 예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우리도 '배 부르고 등 따시면' 잡생각들을 할 여유가 생기잖아요. '인생 참 무상하구나.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변하지 않는 건 없을까' 이런 생각 말이죠. 바로 그런 질문들이 철학의 시작이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만물의 근원'을 찾는 것 말이죠. 그리고 그 '변하지 않는 만물의 근원'에 '진실' 혹은 '진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막 변해버린다면 그건 진실이나 진리라 할 수 없으니까요.


최초의 철학자라는 탈레스는 '변하지 않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정확히 왜 그런 주장을 했는지는 사료가 남아있지 않아 알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그는 만물이 물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론이 나올만하죠. 곧이어 다른 철학자는 '만물의 근원'이 '불'이라고 했고, 또 다른 철학자는 '공기'라고 했습니다. 유치해 보이시나요? 우리나라는 철기시대였던 기원전 6세기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을 벗어나 최초로 이성을 통해 합리적으로 세계를 파악하려 한 첫 걸음마니까요.


터무니없어 보이는 상상과 주장들도 많았겠지만, 그렇게 인간의 학문이 발전해 나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피타고라스입니다. 수학 시간에 배웠던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떠오르시죠? 그는 바로 '만물의 근원'이 '숫자'라고 주장한 인물입니다. 그와 그의 제자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비롯해 수에 관한 여러 규칙들을 발견해 냈고, 그렇게 수학이 시작됐습니다. 또 데모크리토스는 '만물의 근원'이 '원자'라고 주장했는데요, 대체 현미경도 없는 그 옛날에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과학이 그렇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피타고라스


앞서 철학은 인류가 만들어낸 최초의 학문이고, 철학 이전에는 어떤 학문도 없었다고 했죠? 즉 '철학'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학문'과 동의어였고, '학문' 그 자체였습니다. 인류가 가진 학문은 '철학'밖에 없었는데, 연구를 거듭하면서, '철학'이 분화해 '수학', '과학' 등이 떨어져 나온 거죠. 그 밖에도 '법학', '역사학', '경제학' 등등 다른 학문들을 낳은 것이고요. 지금도 '역사학'이라고 하더라도 연구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서양사학', 동양사학', '한국사학' 등등 계속해서 나눠지고 있잖아요. 즉 철학이 모든 학문의 '시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제 '철학'이라는 단어에 왜 무얼 연구하는 학문인지, 대상이 드러나 있지 않는 이유를 아시겠죠? 철학은 '학문'의 다른 이름이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이 세상의 모든 '진실' 혹은 '진리'를 연구하기 때문에, 굳이 무엇을 연구하는지 대상을 제한하지 않는 것입니다.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상상력의 극한, 인간이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내놓은 최신 이론이 철학에는 있습니다.


다만 최초에 찾아 나섰던 '변하지 않는 진실' 혹은 '진리'를 찾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철학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실패를 인정했습니다. 대신 진실 혹은 진리는 변할 수 있고,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10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0개의 진실이 있다'라고 한 이유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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