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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자 Sep 06. 2023

"존재하는 것은 없다"

'신은 죽었다'는 선언의 의미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프리드리히 니체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설령 무엇인가 존재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다. 우리가 그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타인에게 이야기해 줄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고르기아스의 말입니다. 그는 이 말을 통해 철학의 핵심이 되는 주제 3가지를 제시했고, 극단적으로 회의적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지난 글에서 철학자들이 최초에 찾아 나섰던 '변하지 않는 진실' 혹은 '진리'를 찾는 데는 실패했고, 진리는 변할 수 있으며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고르기아스가 제시한 철학의 첫 번째 주제를 통해 그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1.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존재론


철학의 가장 오래된 주제는 존재론입니다. 과연 세상에 무엇이 존재하는가를 탐구하는 것이죠.


지난 글에서 철학은 '세상의 이치'(진리 혹은 진실), '변하지 않는 만물의 근원'을 파악하는 학문이라고 썼습니다. 철학에서는 그것을 '존재'라고 말합니다.


과거 철학자들은 무릇 '진리'라고 한다면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고, 그래야만 진실로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한다면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또 마구 변해버린다면 '존재한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가령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나일까?' 이런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하룻밤 사이에 머리카락 몇 개가 빠지고, 몸무게도 달라지고, 얼굴도 좀 붓고, 생각도 달라졌는데 같은 나일까? 만약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제의 나', '1초 전의 나'는 모두 사라지고 없고, 오직 '현재의 나'만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그 '현재의 나'는 또 사라지고 말았네요. 존재한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철학자들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 즉 '진리'를 찾아 나섰으며, 지난 글에서 썼다시피 누군가는 '물이다', 누군가는 '원자다', 누군가는 '숫자다'라고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종교에서는 그 답을 '신'이라고 말했죠. 즉 '진리=존재=신'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모세 앞에 나타나 자신을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I am that i am)라고 표현합니다. 또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진리'라고 말하죠. 모두 그 같은 철학적 맥락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서양은 기독교 사회고, 특히 중세시대에는 기독교의 힘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리라는 것은 오래도록 서양인의 의식을 지배해 온 관념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잖아요. 서양에서도 근대에 들어서면서 감히 신의 존재에 의심을 품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아예 '신은 죽었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사람이 나타났죠. 바로 19세기 독일 철학자 니체입니다. 


'진리=존재=신'이라고 한 것을 상기해 본다면, '신은 죽었다'는 말은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라는 선언도 됩니다.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문화 상대주의, 다원주의 등이 이렇게 싹을 틔우게 된 것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존재(=진리=신)하는 것은 없다"라고 했던 고르기아스의 철학이 얼마나 사유의 극단까지 가닿았는지 알 수 있죠.


다음 글에서는 고르기아스가 던진 다른 주제를 마저 얘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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