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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신욱 Aug 10. 2017

버블은 왜 반복되는가?

FAANG에 대한 고평가 논란을 보며   


'빅쇼트'라는 책이나 영화를 알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모기지 채권 가격의 하락에 베팅을 해서 큰돈을 벌었던 헤지펀드 이야기입니다. 업계 종사자로서 흥밋거리가 많은 스토리인데 저를 가장 사로잡았던 건 바로 그들이 본격적으로 숏 포지션에 들어간 시점이지요. 그건 바로 2004년입니다. 


그렇습니다. 금융위기는 2007년 말에 시작해 2008년에 본격화되었으니 적어도 3년 이상 그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상승 속도만 둔화되어도 디폴트가 일어나는 상황이 2004년인데, 그 이후로 더 큰 버블이 3년간 일어난 것이지요. 헤지펀드가 3년간의 손실을 버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일단 매니저 본인이 버티기 어렵고, 고객이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니저인 마이클 버리는 고객들의 환매 요구에 소송을 불사하고 자금인출을 막아버립니다. 이건 그의 커리어뿐 아니라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행위지요. 그런데 이후에 결국 큰돈을 벌고 나서는 본인에게 감사인사조차 건넨 고객은 없었다는 게 그의 씁쓸한 후기입니다. 


여기 또 다른 영웅이 있습니다. 2000년 테크 버블 때 기술주에 전혀 투자하지 않았던 사람, 바로 워렌 버펫입니다. (최근은 제외하고) 과거 30여 년간 그의 수익률은 단 한해를 제외하고 시장 수익률을 상회하는 미친 성과를 보여주었는데,  그 해가 바로 2000년입니다. 그 당시 그는 '버펫은 끝났다'며 조롱받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 해의 Underperformance는 이젠 자랑스러운 훈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역사 속의 많은 버블 속에서 마이클 버리와 워렌 버펫 외에도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신중하며 부화돼 동하지 않는 숨은 영웅들이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술에 취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제정신으로 파티를 즐기는 일은 너무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만하면 다들 취할 만큼 취해서 끝났다 생각할 때쯤이면 사람이 술을 먹는 게 아니라 '술이 술을 먹는 단계'로 넘어가며 흥은 더 커집니다. 그때쯤 되면 나도 차라리 취해서 같이 즐길걸 하는 후회가 스멀스멀 올라올 수 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버블에 정면으로 맞서서 살아남는 것은 버펫과 같이 전설적인 투자자이거나 아니면 마이클 버리와 같이 인생을 각오한 사람들만이 가능한듯합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 상대적 소외감과 박탈감은 너무나 큰 감정적 고통일 것입니다. 미국 매니저의 과반수가 버블이 있다고 하면서 시장에 남아있는 이유기도 하지요. 그런데 버블에 맞선 사람들도 고통스럽지만 버블의 중심에 있던 사람도 사실 지나고 보면 아예 사라진 경우도 많습니다. 버블에서 일찍 소외되어 고통을 겪느냐, 아니면 끝까지 함께하다 한 번에 쓸려나가는지의 차이입니다.


최근 워렌 버펫은 연례총회에 '나는 구글에 대해서 틀렸고, 아마존의 가치를 평가하면서 너무 멍청했다'라고 하면서 특히 아마존에 대해서는 '실행의 위대함을 간과했다'라고 자책했습니다. 그간 월마트와 IBM 등과 같이 경제적 해자가 크다고 생각해서 투자했던 업체들이 신생기업들이 만들어가는 질서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경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 듯합니다. 그리고 반성의 주된 근거는 과거 테크 버블 때와 달리 현재 주도주들은 플랫폼에 대한 강력한 독점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리고 인터넷 세상에서는 플랫폼이 강력(독점력 증가)해질수록 소비자 후생도 증가하므로 독점규제에 대한 당위성도 떨어집니다.


저는 미국 테크주들이 버블의 영역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스냅챗과 같은 업체들마저도 덩달아 높은 가치를 받는 현실은 불편하기도 합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테크 버블 이후 결국 네이버가 시장을 평정하고 이후 엄청난 수익창출 능력을 보여주었듯이, FAANG(Facebook, Amazon, Apple, Netflix, Google)이 보여준 독점력이 수익 증가로 이어지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항상 그렇듯이 성공의 롤모델이 나타나면 가짜들조차 비슷한 부류로 여겨지며 수익성 불문하고 고평가를 받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은 맥주에 거품이 좀 껴있긴 하지만 맥주 맛을 해칠 정도는 아니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장 참여자로서 중요한 것은 너무 취하지만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파티에서 굳이 맥주 한두 잔까지 마다할 필요는 없겠지만 누가 술을 더 빨리 마시는 내기에 참여해서는 안됩니다. 평소에 자기의 체력과 주량, 감정적 에너지를 늘 염두에 두고 그 범위 내에서만 충분히 즐기겠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장 즐거울 때 파티에서 나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죠. 그래서 사전에 액션플랜을 철저히 계획하거나, 아니면 필요한 순간에 엄청난 절제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건 결국 극소수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래서 버블의 역사는 여전히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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