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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와 핫도그 Sep 23. 2021

골 때리는 그녀들 시즌 1을 보고

난생처음축구

축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학교에서 점심시간이 되면 우르르 뛰쳐나가 축구를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면, 나는 가끔 피구를 하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운동장 주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간소화됐다. 당연히 축구에 관심도 없었고, 잘하지도 못했으며, 해본 적도 없고, 배워본 적도 없었다. 그러던 내가 축구에 흠뻑 빠지게 되었으니. 바로 sbs 수요일 예능 <골 때리는 그녀>들을 만나고부터다.


수요일 예능의 1위 자리를 지키며 골 때리는 그녀들이 시즌 1을 종료했다. 첫 번째 시즌의 우승팀은 평균 연령이 40대를 넘어가는 불나방팀이 차지했다. 박선영 씨는 '절대자'라는 별명을 갖고 화려한 축구 실력을 뽐내며 그라운드를 종횡무진했고,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멋진 여성들로 이루어진 종합 선물 세트다. 티브이를 뚫고 느껴지는 그녀들의 열정은 학창 시절 운동장에서 축구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나의 심장까지 뜨겁게 달궜다. 이 프로그램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에는 여성, 축구, 열정, 감동, 투혼, 팀워크 정도가 있다. 직업이 모델이라 몸을 아껴야 할 것 같은 구척장신 팀원들도 허벅지 전체에 멍이 시퍼렇게 들도록 축구에 진심이다. 구척장신 팀의 감독을 맡은 최용수 감독은 얼마 전 fc서울 선수들에게 쓴소리를 내뱉으며 '구척장신 팀보다 멘털이 약하다'는 말을 하기까지 했다. 개그맨으로 이루어진 '개밴저스'팀은 그라운드에서 연신 "집중~!"을 외치며 웃음기 싹 뺀 진지한 모습을 보여줬다. 국대 패밀리 팀은 프로 선수들의 아내로 구성된 팀인데,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본인의 이름을 걸고 축구하는 모습이 멋졌다. 외국인들로 구성된 월드클래스 팀은 팀 스포츠를 통해 끈끈해져 가는 모습이 잘 드러났다. 최진철 감독과 월드클래스 선수들의 관계성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때까지 봐온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자들은 주로 미모가 강조되곤 했다. 어릴 적에 황금 시간대 티브이는 주로 남자 출연진들로 차있었다. 무한도전, 1박 2일, 남자의 조건 등등. 이름을 널리 알린 예능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남자 출연진들이 고정이고, 여성 연예인들은 가끔 게스트로 나왔다. 일박이일에서 모닝 엔절로 잠깐 나왔던 여성 연예인들이나 메인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초대된 여성 연예인들에게는 주로 외모와 관련된 찬사가 쏟아지곤 했다. 예쁘다, 애교 있다, 귀엽다, 천생 여자다, 아름답다 등등. 외모를 강조하는 티브이를 보고 있다 보면 나도 자연스럽게 외적인 면에 집중했다. 외모 지상주의 사회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따라 나왔다. 잠깐씩 나온 여성 연예인들은 주로 외모, 애교 같은 것들이 부각됐고 그녀들이 한 화장품, 옷 등이 여지없이 화제가 됐다.


골 때리는 그녀들을 보다 보면 외모에 집중할 시간이 없다. 땀 흘리며 승리에 집중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그들의 축구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부상을 딛고 투혼을 발휘하는지, 팀워크가 얼마나 끈끈한지 등에 감탄하기 바쁘다. 어떤 화장품을 쓰는지, 어떤 립스틱을 발랐는지, 얼마나 아름다운지에는 신경 쓸 시간이 없다. 젊거나 아름다운 모습 여성의 모습만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중년의 여성도, 가정을 이루고 아이가 있는 여성도, 독신의 여성도, 각기 다른 국적을 가진 여성들도 있다. 서로 다른 배경의 여성들이 축구라는 주제 아래 끈끈하게 뭉친다.




나의 최애 팀은 ‘구척장신’이다. 설특집 파일럿 때 최약체팀이었던 구척장신은 정규시즌이 되면서 놀라울 만큼 큰 성장세를 보여주며 시즌 4위로 마무리했다. 언빌리버블 그 자체! 주장인 한혜진 씨는 '정신이 몸을 지배한다'는 문구를 외우며 수비부터 공격까지 그라운드를 바쁘게 뛰어다녔다. 한혜진 님의 인스타그램에는 하이힐 대신 축구화가 올라왔고, 예능 프로그램은 어느새 인간극장 급의 다큐가 되어 있었다. 모델 이현이 씨가 처음 축구를 접할 때 헛발질을 하던 모습에서 정규시즌 멋지게 드리블을 하는 모습까지 변화한 건 멋짐 그 자체. 얼마 전 방송했던 국대 패밀리와의 준결승, 월드클래스와의 3/4위 결정전은 누구보다 진심으로 경기하는 모습에 눈물까지 났다.  


축구장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경기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푹 빠지게 된다. 여자들도 이렇게 운동할 수 있구나. 나도 따라 운동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 나는 얼마 전 동네에 있는 풋살클럽에 등록을 마쳤고, 난생처음 풋살화도 샀다. 


기쁜 소식은 그녀들의 모습을 계속 볼 수 있다는 거다. 골 때리는 그녀들은 시즌2 제작이 확정됐다. 골때녀를 시청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우리에겐 2002년 월드컵보다도 골때녀가 더 재밌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 멋진 여성들의 모습을 티브이에서 더 볼 수 있게 돼서 정말 기쁘다. 다음 주에는 '올스타전'이 예정되어 있다. 축구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여러분, 다들 골때녀 같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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