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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Jun 23. 2020

연습할 시간은 충분하니까.

전자 피아노를 샀다.

와이프의 지인이 한국으로 복귀하며 내놓은 Moving sale 품목 중 전자 피아노를 괜찮은 가격에 사 왔다. 명목은 딸을 위한 것이었지만 내심 나도 덤벼 보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어릴 때 내가 부린 호사는 그나마 하나 정도의 학원 수강이었다. 나는 당시 유행을 따라 속셈학원을 다녔는데 거기서 경시대회 참석차 서울도 가 보고 했으니 도움을 많이 받은 편이었다. 심지어 선생님의 무한 애정 속에 당신의 가족들까지 다 알게 됐을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서울 대회 입상은 실패했다.)


이후에도 내가 다닌 학원은 손에 꼽는데, 두어 달 다닌 컴퓨터 학원과, 내가 살던 임대 아파트 촌에서 그나마 대학을 나온 누나가 해주는 뒷동 공부방이 전부였다.


나는 꽤나 공부를 잘해서 어딜 가나 홀로 진도를 다 빼버렸는데, 그 때문인지 주변 누구도 런 구성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공부를 좀 더 시켜 줘야 하는 게 아니냐.' 하는 얘기가 좀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정작 내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따로 있었다. 속셈학원 건너편의 미술 학원과 그 옆의 음악 학원이었다. 그중 내 동경을 가장 키운 건 음악 학원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림을 혼자서도 잘 그렸기 때문이다.


외아들로 태어나 놀 게 마땅찮았던 나는 어린 시절부터 뭔가를 끄적이며 노는 게 좋았다. 그 덕에 초등학교 2학때 이미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좀 사는 친구들 집에 놀러 가서 해당 캐릭터 만화를 한편 그려주고 맛있는 것을 얻어먹는 건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물론 학창 시절에도 그 덕에 미술에서 곤욕을 치른 적은 없었다. 되레 그림 깨나 그렸다는 친구들보다 데생을 더 잘했다. 그러다 보니 고1을 마칠 무렵 내 꿈은 조각가가 되어있었다.


'미술을 하려면 프랑스 유학을 가야 하는 것 아니냐. 슬프지만 그런 지원이 힘들구나.'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던 지방의 수준이란 이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가 나올 대화지만 당시에는 꿈을 접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기에 무척이나 서러웠던 기억이 난다.


비록 그때 이후로 붓을 꺾긴 했지만, 그래도 미술에는 여한이 없었다. 희한하게도.




그런데 음악은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 같았다. 왜냐하면 그건 미술처럼 직감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녔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한 달이라도 그 노란 가방을 들고 음악학원을 다녀봤다면, 건반 파지법만 알았다면 혼자서 조금씩 조금씩 연습했을 테지만 나는 학원 문 안쪽으로 한걸음도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러다 세상이 바뀌어 유튜브란 게 나왔다. 악보를 어떻게 읽는지(는 이미 알지만 그래도)부터 건반을 손가락 어디로 치는지까지 너무나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다.


다행히 음악 학원을 좀 다녔던 와이프에게 딸은 재미있게 기초를 배우고 있다. 나는 머쓱해서 차마 그 옆에 있진 못하고 둘째를 안고 있다가 둘째가 품에 안겨 잠들고 딸과 와이프가 피아노를 떠나면 살짝 뚱땅거려 본다.


아직은 동요 몇 개 연습하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양손으로 처음 연주했던 순간은 스스로가 퍽 자랑스러웠다.




하루는 어스름한 저녁 무렵 딸이랑 피아노 방에서 놀고 있었다. 딸이 갑자기 자기 연주를 들려주겠다며 자리에 앉아 몇 소절을 치더니 수줍게 혼잣말을 했다.

'아이코 손가락을 또 펴버렸네.'


나도 혼잣말인 듯 딸에게 답을 한 듯 편안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괜찮아. 놀이처럼, 취미처럼, 재밌게만 쳐. 연습할 시간은 이제부터 아주 많으니까.'


내게도 이제 연습할 시간이 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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