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삶을 살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철근육 Jun 17. 2021

자녀 공부 강도 설정하기

정답이 없어 누구나 고민하게 되는 문제.

만나면 즐거운 사람들과 식사를 하던 저녁이었다. "공정함"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이는 이내 자녀 교육 문제로 이어졌다. 자칫 민감할 수도 있는 화제였지만 센스 있는 사람들 덕에 정제된 대화만 오갔다. 나는 그게 참 좋았다. 그래서 그 화두를 좀 더 붙잡고 싶었다. 하여 짧지만 며칠간 생각을 숙성한 뒤 여기에 풀기로 했다. 언제나 그렇듯 개인적인 생각일 뿐임을 밝힌다.

 



1. 육과 공정의 관계


교육에 공정함이 개입하는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학생들이 넘어야 하는 과제가 동일해야 한다는 공정이다. 모든 수험생들이 같은 시험 문제를 풀어야 공정성에 문제가 없다는 걸 생각하면 이해하기 수월하다. 곡선코스를 포함한 육상경기에서 바깥쪽 레인으로 달릴수록 출발선이 앞에 위치한 것도 비슷한 예다. 이견이 별로 없을 측면의 공정이다.


교육과 공정이 연결되는 두 번째 고리는 이러한 과제를 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용한다. 문제집 살 돈도 없는 학생이 있는 반면에 전과목 과외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요즘엔 이런 현상을 일컬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듯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주로 문제가 되는 건 이 부분이다.



2. 논의의 전제


여기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뚜렷한 답이 없거니와 내가 언급하기엔 너무 큰 담론이기 때문이다. 앞서 예로 든 두 학생을 생각해 보자.


가난한 학생에게 부유한 학생과 똑같은 선생님으로 전과목 과외를 시켜주는 게 공정일까? 아니면 부유한 학생의 과외를 차단하는 게 공정일까? 더 많은 학생을 고려하면 부의 수준 차가 더 큰 스펙트럼을 보일 텐데 그땐 어디를 기준으로 잡아야 공정한 것일까?


학생들의 지적 수준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체력이 다르고, 희망 직업이 다르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그래서 여기서는 이 문제가 아니라 각 가정의 판단에 대해 집중한다.


즉, 운동장이 기울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되 그 운동장에서 뛸 선수(=학생, 자녀)와 감독(=부모)이 어떤 판단을 할지 고민해 볼 예정이다.



3. 부모의 판단


운동장을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을 일종의 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성공을 이루는 요소로는 다음 같은 것들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자산, 직업, 학력 등이 되겠다.


상기의 논의를 간단한 함수로 나타내면 아래처럼 된다.

성공 = {자산, 직업, 학력}


자녀 교육에 관한 부모의 판단은 "자녀 세대의 성공값이 최소한 내가 이뤄놓은 성공값보다 크거나 같도록" 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즉 함숫값을 깎아 먹지 않게 하는 게 핵심이다.


예를 들어 연이자율이 1%인 사회에서 가용한 금융자산이 100억 인 부모가 외아들을 두고 있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그 사회에서 가게를 하나 차리는 데 2억, 외아들이 가게를 말아먹는데 2년이 든다면 어떻게 될까.


부모가 100억을 통장에 넣어두면 2년마다 모이는 이자가 2억이니 2년마다 2억짜리 가게를 폐업해도 원금 100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경우 그 자녀가 학력만 부모 이상을 일궈놓는다면 자산에 손실이 없는바 직업 (=가게 창업)에 큰 터치를 하지 않게 된다.


반대로, 부모가 모두 1등 대학을 나왔는데 자식의 성적이 2등 대학 수준에 그친다면 학력이라는 요소에서의 감점을 막기 위해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이 커질 수 있다. 2등 대학만 나와도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데도 말이다.



4. 자녀의 판단


자녀는 자신이 어떤 분야에서 강점을 가졌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어느 영역이 자기에게 즐거움을 주는지 정도는 얘기할 정도가 돼야 부모의 함수값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자기가 하고픈 걸 고르거나 주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업으로 자산을 크게 키울 자신이 있다면 그만큼 학력이나 직업 등이 조금 낮아지더라도 전체 성공값을 유지하거나 높일 수 있으니 부모를 설득할 수 있으리란 얘기다.


즉 자녀의 판단은 부모의 성공값이라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자유치를 찾기 위한 몸부림에 달렸다.



5. 결어 : 필요한 건 대화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일궈놓은 성공값을 더 키우거나 최소한 유지해 주길 바란다. 그런 제약 하에서 자녀들은 자기가 최대한 즐거운 일을 고르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이런 상황에서 윈윈이 되려면 부모 자식 간의 대화가 중요하다. 부모는 자녀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야 교육의 강도를 정할 수 있고, 자녀는 부모가 원하는 조건이 뭔지 알아야 자기가 누울 자리를 가늠할 수 있다.


어느 분야든 성공한 사람의 뒤에는 부모의 지원이 있다. 그러나 그 역은 항상 성립하지 않는다. 부모가 엄청난 지원을 퍼부어도 방향이나 방식이 잘못되면 자녀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


그 방향 설정 자체를 제대로 하고, 자녀도 자기의 적성을 올바로 파악하는 역량도 사실 부모의 성공값에 따라 이미 차이가 난다. 그러나 기울어진 운동장일지라도 어쨌거나 개인이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역시 대화임을 기억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수학만 잘하면 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