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준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의 공부를 봐주다가 든 잡상을 남겨본다. 학년을 거듭할수록 학생 스스로와 부모가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이 이런 수학 문제를 접했다고 생각해 보자. "5와 4만큼 차이가 나는 숫자를 구하시오."
수학 문제를 많이 풀어 눈치가 생긴 아이들은 문제를 보자마자 핵심 구절 몇 가지를 먼저 인지한다. 5와 4, 그리고 '차이'. 그리고 이는 다음과 같은 수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5-4=1". 그래서 정답은 1입니다라고 외치며 연필을 놓는다.
그러나 이는 그 반대방향의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망각한 것이다. 즉 '차이'라는 말이 곧장 '빼기'로만 이어지는 게 아니라 5에서 4만큼 더 큰 수 역시 정답이 된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차이'에서 '덧셈'을 유추할 수 있는 건 다음 두 가지 경우다.
유사한 문제를 많이 풀어 그 눈치를 키우거나 아니면 문제를 이해하는 능력을 높이는 것이다.
문제 이해력을 높인다는 건, 국어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사실 이는 어쩌면 자명한 얘기다. 당최 문제를 이해도 못한 채 어떻게 그것을 풀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놀랍게도 그런 주먹구구식으로 점수를 따 내는 학생들이 있다. 더 대단한 건 단순 연산이 아닌 영역에서도 이 위험한 추론을 해 낸다는 점이다. 모두 엄청난 문제풀이 양으로 일궈낸 결과다.
좋게 얘기하면 이는 눈치가 빠른 것이다. 아마도 이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선생님이나 강사는 '실전인 수능에서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 적어도 손을 놓지 않고 그걸 풀어낼 수 있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어 이해력 없이 이를 눈치로만 풀어내는 사람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다.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니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런바 자신이 푼 답안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모른다. 쉽게 설명하자면 검산을 할 수 없다. 더 간단히 얘기하자면 '풀고도 불안하다.'
그래서 수학을 잘하려면 국어를 잘해야 한다. 아니 좀 더 현실적으로 얘기하자면, 국어를 잘해야 수학도 '제대로' 풀어낼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궤를 가지는 주장이 있다. 수학 공부를 할 때 '공식을 외우지 말고 정의를 외우라'는 게 그것이다. 이는 내가 과외를 할 때 학생들에게 줄곧 전했던 얘기이기도 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의를 수식으로 풀어낸 게 공식이기 때문이다. 정의를 이해하고 그것이 공식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제대로 익힌다면 어쩌다 공식을 잊더라도 정의에서 이를 풀어낼 수 있다.
영어도 이와 연관된다. 어떤 학생이 '5와 4만큼 차이가 나는 숫자'는 1과 9라고 명쾌히 풀어낼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 문제가 영어 지문으로 'Find number(s) differ(s) 4 from 5.'라고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영어 해석을 못하면 답을 찾지 못한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다. 영어는 잘하는데 저 연산을 못한다면 역시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죽어라고 국/영/수를 집중해서 공부하면 될까? 사실 그것도 중요하긴 한데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 늘 교육과 관련한 이슈에서 이전부터 강조해오던 - 통합교과적 사고, 다시 말해 열린 사고의 중요성이다.
우리의 머리는 크게 좌뇌와 우뇌로 나뉘어 있다고는 하나, 그건 엄연히 러프한 의미의 구분일 뿐이다. (심지어 어느 한쪽이 크게 다치면 남은 반대쪽이 그 역할까지도 일부 수행하기도 한다고 한다.) 다시 상세히 보자면 뇌의 어느 영역은 국어 머리, 어디는 수학 머리, 어디는 영어 머리, 어디는 사회 머리... 이렇게 세세하게 나뉜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구분 없음'을 종종 잊는다. 마치 '자, 이제 국어 공부해야 하니까 국어 모드로 변신해야지!'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뇌의 어떤 부분도 그렇게 벽을 치고 살지 않는다.
열린 사고라 함은 크게 어렵지 않다. 그저 TV를 보다 보면 뉴스도 나오고, 코미디도 나오고 드라마도 나오는데 내가 아무런 대비 없이도 그 모든 것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듯이, 공부도 그게 국어든 수학이든 영어든 사회든 간에 경계 구분 없이 받아들이면 된다.
열린 사고를 하면 좋은 게 뭐냐면 '언제든지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중요한 건 국/영/수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차이(Differ)'라는 단어가 '뺄셈' 뿐 아니라 '덧셈'으로도 연관이 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학생들의 머리에 심어주는 일이다.
독서가 공부에 도움이 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비소설을 읽으며 지식을 쌓고, 소설을 읽으며 국어 지문을 미리 익혀 두는 것도 좋지만, 소설과 비소설, 인문과 과학 등 다양한 범주의 소재를 자유자재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와중에 '지금부턴 소설을 읽을 거니까 소설 모드로 변신해야지!'라는 사람도 있더라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