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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Feb 28. 2020

Use common sense.

상식은 양 극단에 있지 않다.

미국에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급기야 어제 (현지시각 2/26일 동부시각 기준 6:30 P.M.) 트럼프 대통령은 1시간 50분가량 기자회견을 열었고, 나는 - 당최 내가 다른 나라 대통령 기자회견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이나 해 봤겠냐마는 - 그것을 실시간으로 봤다. 두 아이들이 칭얼대는 와중이었음에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와이프는 내가 영상을 틀어 놓은 것을 이해해 줬다. 그날 한국에 대한 입국 통제 발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결과는 괜찮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볼라와 같은 치명적인 질병과는 달리, 이번 바이러스가 독감과 차라리 유사하니 지나친 우려를 하지 말라면서, 타국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를 현재로선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이는 중국에 대한 현 제재를 풀지 않는다는 뜻도 되기에 연관한 질문을 했던 기자는 - 중국인으로 보였다 -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 한 숨을 돌리게 된 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한국 뉴스를 살펴봤다. 아직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이 제대로 기사로 송부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너무나 많은 극단적인 내용들이 눈을 어지럽혔다.




브런치로 넘어오기 전, 나는 페이스북을 꽤나 즐겨 썼다. 빠르게 글을 올리기 쉽고, 즉각적인 피드백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인스타나 트위터보다 훨씬 길고 상세하게 알 수도 있었다. 언젠가 정치에 대한 갈등이 심해지던 찰나였다. 나는 극우/극좌에 치우친 사람들을 고르게 친구로 맺었다. 그 중간 즈음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으리란 기대에서였다.


그러나 그건 판단 착오였다. 나는 엄청난 피로감에 휩싸였고, 미련 없이 페이스북을 버리고 브런치로 넘어왔다.

 



양 극단의 주장을 그만하자. 별 뜻 없는 현상에도 모조리 의미 부여를 해 버리니 그것을 보고 듣는 데 피로감이 커 진다. 세상 모든 현상이 현 정권, 또는 이전 정권 탓일 리가 없지 않은가.


예전에 흥미로운 기사를 본 적 있다. 어떤 정치적인 쟁점이 발생했을 때였다.

여당 쪽 싱크탱크에서 보고서를 냈다. "이렇게 하면 핵심 지지층이 아닌 사람들이 중도로 이탈한다."

야당 쪽 싱크탱크에서 보고서를 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탈층이 우리 쪽으로 넘어오지 않는다."


싱크탱크는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의견들은 정치인들에게 1%도 활용되지 못했다. 정답은 재미없기 때문이다. 재미가 없으면 시선을 끌지 못한다. 정치적인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소리다. 그러다 보니 점점 주장들이 양 극단으로 치닫는다. 음모론을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흥미롭게도 이는 이론과 정확히 배치된다. 경제학에 따르면, 최대한 많은 유권자의 관심을 사기 위해 양당제 국가에서 각 당이 내놓는 정책이 중도에 가깝게 수렴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양극화다. 일전에 '포퓰리즘'이 내편/네편을 가르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한 적도 있는데, 이후로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https://brunch.co.kr/@crispwatch/292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팬덤 정치'라고 말한다. 나도 처음엔 그리 생각했다. 이건 마치 "H.O.T vs. 젝스키스" 또는 "S.E.S. vs. 핑클"의 관계 - 물론 좀 더 정확히는 그들 팬클럽 간의 관계 - 를 보는 것 같다. 내가 최근에 즐겨 주장하던, "옳고 vs.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내 선호 vs. 네 선호"의 문제라는 점에서 꼭 같다.


그러나 요새는 생각을 조금 바꾸고 있다. 저런 틀의 분석은 너무 단순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다. (음모론에 빠져들지 말자는 다짐이 되레 나만의 음모론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건.)


나는 차라리 이상형 월드컵이 문제라고 본다. 우리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에 '둘 다 좋아.'라는 것이 최고 정답이라 인식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어느 날 둘 중 하나를 반드시 골라야 하는 문화가 된 것이다.


'A가 좋아? B가 좋아?'

'음, 다 좋긴 한데...'

'아니 꼭 한 명을 고르라면 말이야.'

'음... 그럼 B!'

'그럼, B랑 C를 비교하면?'


왜 이 얘기를 하냐면, 지금의 양극화가 움직이는 형태가 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A라는 안건에 대해 너는 우리 편이야? 상대편이야?"

"당연히 너와 한 편이지!"


그러다 새로이 발생한 이슈 앞에서 다시 질문이 나온다.

"B라는 안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아, 이건 좀 동의하기 힘든데..."

"그럼 넌 상대편!"


누구도 모든 면에서 100% 똑같을 수 없다. 이건 자명하다. 그래서 야당이든 여당이든 핵심 지지층이란 게 언제나 '최소 12,345명은 확고부동하다'라고 콕 꼬집어서 말할 수 없다. 지금은 같이 핏대를 올리며 상대를 함께 공격하다가도 다른 어떤 안건이 나왔을 때 주춤하게 되는 순간 적으로 나락한다.




지금 우린 근원적인 질문을 잊고 있다.

"가만가만가만. 잠시만 멈춰 봐. 그런데 우리가 왜 꼭 굳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거지?"


모든 국민이 극우나 극좌인 게 아니다.

모든 국민이 현 정권이나 전 정권을 딱 잘라 칭송하지 않는다.

모든 국민이 특정 사이트 소속인 게 아니다. (어딘지 말하지 않아도 알리라 생각한다.)

모든 국민이 미국/ 중국/ 일본 중 한 나라를 콕 집어 칭송하진 않는다.

모든 국민이 특정 지역을 갈라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 이 시점에, 특정한 어떤 안건에, 지속된 편견 없이,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냥 지금 이 시점에, 특정한 어떤 안건에, 지속된 편견 없이, 칭찬을 할 수 있다.


오늘 선물을 사 준 엄마가 고마워서 '엄마 최고!' 했다고 해서 '너 그럼 오늘부터 엄마랑만 살아라' 하며 당장 이혼을 하고 자식을 내치는 아빠가 있겠는가?




오늘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내부 보고서가 나왔다. 그중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Remain flexible, use common sense.


상식을 쓰자. 내가 생각하는 상식에 따르면 이 세상은 양극단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띤 무지개 색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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