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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Feb 03. 2020

모든 이야기는 화자에게 유리하게 흐른다.

스토아학파에서 배우는 삶의 태도

미국에 자연사 박물관이 유명한 것은 그들의 역사가 짧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류 보편적인 고대의 역사로 사람들의 시선을 돌다. 이 점을 알고 방문하더라도 일단 그 거대한 규모에 압도되는 순간 선입견은 이내 잊히고 만다.


얼마 전에 서점에 들렀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Meditation"을 샀다. 한국에서는 "명상록"이라고 번역한다. 다른 작가들의 유사한 책 제목이 수상록이나 자경문인데 굳이 명상이란 말을 붙인 이유는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그 내용은, 로마제국의 황제에 오른 40세의 젊은 사람이 올바른 통치를 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이 깨달은 것을 정리하여 매일 되뇌었던 항목들이었 것이다. 그야말로 명상을 할 때 가슴에 담두기 적합한 문구들이었다.


그중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다.

"모든 문장은(이야기는)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실로 그러하다. 황제든 아니든 우리는 옆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그중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 비교 형량 할 수 있는 요소는 거의 전무하다. 대개는 주장들의 나열일 뿐이며 이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단순히 선호의 문제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주장을 그럴듯하게 잘 이어가는 사람을 '논리적'이라고 추켜 세우는데 사실 그에 대한 비판은 내가 즐겨 다루던 주제다.


그렇다면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갖춰야 하는 역량은 무엇일까? 진짜 진실을 찾아내는 통찰력이나 탐구심이라고 대답한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따르는 문장들이 그저 주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주장을 선택한 것은 내 선호일 뿐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 나아가 다른 편의 주장 역시 동일한 상황인바 이를 동등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굳이 이를 줄여 쓰면 '겸손'이 된다. 물론 이런 사유가 생긴 데는 지금 읽고 있는 "명상록"과 이를 관통하는 스토아학파가 주는 영향도 있지만 사실 최근 부닥친 일련의 사건들에서 느낀 부분이 더 컸다.


지금 나는 금융 쪽 기구에 파견 와 있다. 전 세계를 향해 눈과 귀를 열어 두고 있지만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다. 당장 며칠 전까지 가장 큰 리스크 요인으로 다뤘던 브렉시트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각종 뉴스에서 거의 완전히 묻혀 버렸다.


바이러스가 이렇게까지 확산될 지도 아무도 몰랐다. 기분 좋은 연초에 내가 교통사고를 당할지도 아무도 몰랐다. 최근 맞이하는 인사 시즌의 결과는 인생 큰 부분에서 희비가 갈리지만 당사자 누구도 미리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갖춰야 하는 건 분명해진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겸손) 갖추고, 눈앞의 결과에 따라 다시 변수를 조정한 뒤 빠르게 대응하는 것 (Agility)이다.


스토아학파 사람들은 삶에서 어떤 사건을 겪더라도 - 설사 그것이 무척 고통스러운 것일 지라도 - 마치 오래전부터 바라 왔던 일이 드디어 이뤄진 것처럼 여기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감정이 생생한 인간으로서, 나는 그 수준까지는 차마 못 갈 것 같다. 그럼에도 좀 더 묵직해 지기 위한 연습은 끊임없이 이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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