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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Dec 03. 2019

뉴스가 골치 아플 때

객관적 정보를 취하는 방법.

요새 뉴스를 보면 골치가 아프다. 정말로 시국이 불안정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외국에 있어서 감정 이입이 더 잘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혹은 사회는 늘 이랬는데 내가 나이가 들면서 좀 더 예민해진 탓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정치적/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이 터지고 그 댓글들을 보자면 세상이 이토록 혼탁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인터넷 뉴스에 달리는 댓글은 대부분 양극단으로 치우친 입장에서 작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 카페도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분위기가 기울 수도 있고, 사회적 이슈에 대해 과격한 댓글이 달릴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각주 1) 국민들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권리를 갖고 있으므로 이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혼동 속에서 분위기에 휩쓸려 자기도 모르게 입장을 정한 뒤 상대편을 보고선 거꾸로 솟는 피를 참지 못하고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이들 역시 어쨌거나 자신의 의지와 생각에 반해 억지로 어떤 입장을 취한 것이 아니므로 뭐라고 폄훼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작금의 분위기와 일련의 흐름을 한 번쯤은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뉴스를 보지 않고 살 게 아니라면, 내가 살아가는 사회와 단절해서 살아갈 게 아니라면, 적어도 내가 어떤 흐름 속에서 어디쯤에 서서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정도는 파악해야 하지 않겠는가?




단계 1.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자.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자. 이 말을 하면 즉시 '내 말은 사실이고, 네 말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이론의 여지없이 이 반응 역시 또 하나의 주장에 해당할 뿐이다.


굳이 이 방법을 따르면 'xxx라는 사람이 yyy라는 사건에 대해 zzz라는 의심점이 있어 조사를 받고 있다.'라는 정도의 단순한 문장만이 사실로 인정받게 된다. 이는 마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정언 명제와 유사하다.


그러나 하늘에 우러러 말하건대 대체 이 이외에 진실로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또 무엇이란 말인가? 딱 저 수준을 벗어난 모든 이야기는 그저 '주장'일뿐이다.



단계 2. 주장의 필요성을 인정하자.


그렇다면 주장이라고 해서 다 나쁜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역사'도 깊이 들여다보면 '다수설'과 '소수설'로 구분될 정도로 '주장'들의 집합체인 경우가 많다.


역사에서도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xxx왕조 xx대 왕이 xxx 년도에 태어나 xxx 년도에 세상을 떴다.'는 정도뿐이다. 그때가 다른 왕조보다 태평성대였는지, 백성들 삶이 안정되었는지, 어떤 제도가 정말 그때 '시작' 되었는지 등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어딘가에서 고대 토기를 발굴 해 방사능 반감기를 이용해 생성 기간을 추정한 결과에도 오차 범위가 생긴다.


흔히 '국뽕'이네 어쩌네 하지만 사실 역사 역시 이러한 주장들의 누적이며, 각 국가들은 자기 나라에 유리하게끔 조금씩 내용을 조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정말로 Fact가 하나 존재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역사 해석에 대한 갈등이 존재할 이유가 없음을 생각해 보자.


그러나 '사실 해석'의 범주를 지나치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자국에 유리한 '주장'은 국민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서 애국심을 고취하고 '하나 된 마음'을 심어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만약 이런 게 없다면 '국민'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해외에서 유수한 교육을 받은 뒤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굳이 국내로 복귀해 각 분야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인재도 사라질 것이다.


이런 사고를 확장하면 국내 이슈에도 '주장'들이 갖는 이점이 있다. 마치 정치에서 다당제가 상호 견제에 유리하듯,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게 함으로써 한쪽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하고, 자기 편의 입지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각주 2)


* "그거 너 보라고 만드는 기사가 아니야."라고 쓴 적 있다.

https://brunch.co.kr/@crispwatch/279



단계 3 : 내가 어떤 주장을 지지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먼저 강조하겠다. 다투기 위해서가 아니다. 상대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 내 얘기는 싸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핵심은 내가 주관을 갖고 그 주장을 지지하는지 한번 더 고민해 보는 데 있다. 만약 이 단계에서 적정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나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의견이 좋아서' 이를 지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런 경우라도 의견을 철회할 필요는 없다. 때론 별다른 이유가 없이 끌리는 입장이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내가 이 주장을 지지하는 데는 감정/ 감성에 기댄 측면이 더 크다.'라는 정도의 인지를 하는 게 좋다. 그래야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도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과 언성을 높이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



단계 4 : 상대방의 주장과 그 근거를 살펴보자.


내가 어떤 주장을 지지한다고 해서 반대 편이 괴물이란 뜻은 아니다. 그들 역시 그 안건 외엔 나와 같이 축구 경기를 보며 열광하고 새로운 기술의 발전에 신기해하고, 새해가 되면 소원을 비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또한, 상대방의 주장을 살펴본다고 해서 종교인처럼 보편적 관용을 펼치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다만 상대방의 주장과 근거를 공부하는 일은, 내 입장을 중립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다듬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추천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의 주장에 좋은 근거가 있을 경우 이에 대응해 내쪽 주장을 강화할 근거를 찾을 수도 있다.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파악하셨겠지만, 이는 사실 나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자, 스스로에게 필요한 연습이다. 해외에 있다 보니 정보의 출처가 편협해지고 접촉하는 사람의 범위가 좁아지니 의견이 쉽게 감정적으로 치닫는 탓이다.


위에서 언급한 방법 이외에 내가 추가적으로 행하는 것이 있다.

1) 외국 자료 찾아보기 : 블룸버그 같은 매체부터, 구글링 후 나오는 외국인들의 시선까지 두루 살펴본다.

2) 학술 자료 찾아보기 : 어떤 안건에 대해 학술 자료가 존재한다면 이를 최대한 찾아보려 노력한다. '주장'일지라도 '감정을 뺀 담백한 주장'일 가능성이 큰 데다 나보다 훨씬 깊고 넓게 그 안건에 대해 파악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제 곧 크리스마스인데 캐럴처럼 정겹게, 눈 내리는 풍경처럼 고즈넉하게, 그리고 트리처럼 반짝이게 서로 이해하고 돕고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면 좋겠다.





각주 1 : 헌법에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및 행복 추구권으로 이를 보장한다.

각주 2 :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을 읽어보면 이런 관점을 이해하기 쉽다. 코끼리(본능)에 올라탄 조련사(이성)의 비유로 유명한 책인데, 사실 이 책의 주된 줄기는 본능이 이성에 앞선다는 게 아니라 (이런 식의 좁은 해석에 집중한 소개를 너무 많이 봤다...) '왜 평범한 사람들도 정치적 이슈에서 극단의 성향에 쉽게 치우치게 되는가.'에 있다. 즉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사회 심리학적으로 풀어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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