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철근육 Nov 06. 2019

곳간에서 인심 난다.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방법.

미국에 살면서 좋은 점을 꼽으라면 나는 운전에 대한 몇 가지를 들곤 한다. 서로 양보하는 운전 태도, 그리고 맘껏 차 문을 열어도 될 만큼 널찍한 주차 공간 등 말이다.


그러나 가족들과 단풍 구경을 나선 날, 나는 미국이라고 믿기지 않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우선, 차들이 도로에 그렇게 길게 늘어선 모습 처음 봤다. 어디든 쭉쭉 달리는 모습만 보다가 마치 한국 명절날 성묘길과 같은 차량 행렬을 보자니 어색했다.


목적지를 1마일 정도 앞두고 거북이걸음을 1시간여 째 하던 중 흥미로운 일이 발생했다. 원칙대로 기다리던 차선, 느새 생겨버린 얌체 차들의 끼어들기를 막기 위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를 바짝 붙이는 한국식 대동단결을 보여주고 있던 참이었다.


얌체 차량 중 한 대의 조수석 문이 열리더니 한 여성이 우리 차 뒤로 가서 대뜸 서 버렸다.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인데 그 즉시 내 뒤차의 여성이 내리며 언성을 높 싸우기 시작했고 이윽고 남자들까지 합류해 다툼이 커다.


그 와 중에 차들은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고 두 커플이 싸우는 틈을 타 얌체족들이 모조리 본 라인으로 들어왔다. 어부지리를 얻었다며 환호작약하던 그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평소에 앞차를 향해 경적을 울리는 것도 실례라고 할 정도인 이곳에서, 얌체 행렬을 봤고 심지어 다투는 모습까지 본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아노미의 현장 앞에서 나는 기분이 미묘했다.


애매한 상황이 되면 먼저 가라고 상대방에 손을 내미는 것, 주차 공간이 넓은 것 모두 공간에 비해 차량 밀도가 적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차량 밀도가 높아져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나자 사람들이 온화함을 잃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심이 곳간에서 난다는 옛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용되는 것일지 문득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최근 언론에서 자주 다루는 '소득주도성장'은 이와 유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소득을 늘리면 소비가 증대하고 이는 기업의 생산 확대로 이어지며 이는 투자 및 소득 증가로 다시 연결되는 선순환 체계를 그린다. 누가 뭐라고 다른 포장을 하든 큰 맥락은 동일하다. 인심이 나게끔 곳간을 채워주는 게 핵심이다.


곳간을 어떻게 채워주는 방식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최저임금 상향일 수도 있고, 전 국민에게 기본 소득을 나눠주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에는 효율성 내지 형평성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 '곳간을 채운다'는 목적에는 변함이 없다.


자, 그러면 곳간을 채우면 반드시 인심이 후해질까? 오늘은 그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단, 제도의 정합성에 대해 논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를 응용해 언론이나 자료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에 대해 집중하려 한다. 제도의 정합성을 분석하는 것은 내 역량 밖이다.




곳간을 채우는 로직을 다시 살펴보자.

1. 소득을 늘려준다. (곳간을 채운다.)

2. 소비가 늘어난다. (인심이 난다.)

3. 기업 생산이 늘어난다.

4. 투자/소득이 증대된다.

5. 다시 1. 의 과정으로 돌아가서 이를 반복한다.


제도의 정합성을 보려면 1. 을 했을 때 2. 가 되는지를 보는 게 핵심이다. 즉 소득을 늘리는 정책을 펼쳤더니 정말로 소비가 확산되는지를 봐야 한다. 이론적인 용어를 쓰자면, 소득을 늘려준 계층의 한계 소비 성향이 증가(내지는 유지)했는지를 보면 된다.


그러나 논의는 이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대부분은 1.로 인해 3.이나 4. 가 되었는지를 놓고 따진다. 뉴스나 인터넷에서 나오는 자료 대부분 제도의 시행으로 인해 경기가 살아났는지, 취업률이 개선되었는지 등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제도를 옹호하는 쪽이든, 비판하는 쪽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인 비약이다. 2.로 인해 3. 이 되기 위해서는 기업의 생산 역량, 생산 효율성 등의 조건이 필요하고, 3. 이 4.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배당성향, 금리, 규제 현황 등의 고려가 필요하다. 즉 다른 변수가 개입할 여지가 많다.


그렇다면 왜 많은 자료에서 이와 같은 논리적 비약을 취하는 것일까? 나는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을 가졌고, 그들은 그렇지 못해서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예전 '사내 유보금'에 대한 논의 때도 발생했다. 국회나 언론에서는 '사내 유보금'을 두고 기업들이 몰래 감춰 둔 쌈짓돈 취급을 하며 왜 사회에 풀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사내 유보금은 대차대조표에서 자본에 기록되는 잉여금으로서, 부채를 갚거나 자산을 늘리는 행위와 이미 결부된 상태다. 즉, 이미 빚을 갚거나(부채의 감소), 투자를 했을(자산의 증가) 가능성이 크다. (복식부기를 알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https://brunch.co.kr/@crispwatch/199


만약 사내 유보금을 쌈짓돈이라는 개념과 연결 지으려면 잉여금을 모두 현금 및 예금으로 들고 있는 경우에 한하는데, 이 역시 쉽게 비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곧 지불을 해야 할 매입채무나 차입이자 등의 규모나 지급 시기를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시 동일한 답답함이 든다. '국회와 언론에 회계사 한 명 조차 없단 말인가?'




이러한 궁금증은 지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자 이내 풀렸다.


"국회의원들을 개인적으로 보면 한 명 한 명이 그렇게 똑똑할 수가 없다. 생각도 깊고 말도 잘한다. 그러나 이들이 국회로 들어가서 목소리를 내거나 정쟁에 포함되면 이내 그 현명함을 잃어버린다."


"이런 뉴스들을 보고 답답한가? 그러나 그 발언들은 당신더러 보고/들으라고 한 게 아니다. (이슈를 만들기 위한 이슈일 뿐이라는 말)"


위 내용들을 한 데 모으면 우리가 비판적 사고를 키워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한 연습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우선 사안에 대한 나만의 분석을 한다. 배경, 로직, 근거, 관련 이론 등.

2. 내 분석과 어긋나는 주장이 있을 경우, 그에 언급된 배경, 로직, 근거, 이론을 파악한다.

3. 만약 내 분석이 틀렸고, 주장에 사용된 것들이 더 낫다면 생각을 바꾼다. (물론 쉽진 않다.)

4. 그러나 상대편 근거가 빈약하다면 '왜 이런 주장이 만들어졌을지' 고민해 본다. (누구 보라고 만든 것일까? 누구를 기쁘게 하고 누구를 열 받게 하는 주장일까? 이로 인해 이익/손해를 보는 입장은 누구인가? 등)

5. 단, 이 모든 과정에서 그럴듯한 유추에 빠지지 않도록 유의한다. (소위 음모론은 여기에 해당한다. 음모론은 '흐름'으로만 보면 짝이 다 맞춰진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흐름에 맞게 딱딱' 맞는 경우가 되레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자, 이번에도 내가 정치나 언론 쪽 이슈로 외도를 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나는 어떤 쪽 의견이 옳은지 그른지 한 마디도 얘기하지 않았다. 되레 어떻게 사안을 볼지 그 방법론에 대해서만 얘기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직장에서도 필요하다. 우리 회사에 어떤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대처 방법이 180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내외 이슈에 대한 적절치 못한 대응은, 손익은 물론이고 평판 리스크에 특히 취약하다.


음모론도 마찬가지다. 설마 여러분은 이를 정치적 가십으로 치부할 뿐 자기 회사에는 없다고 생각하는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자.






1. 미국에서 겪었던 일화 하나를 가지고 잡상이 길었다. 그러나 굳이 스스로를 변명하자면, '이 여유와 배려가 텅 빈 곳간에서도 나올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비판적 사고의 예시라고 보면 좋겠다.


2. 비판적 사고라고 해서 당면한 모든 현실을 '비판(=반박)'하라는 뜻은 아니다. 쏟아지는 정보 앞에서 스스로 주관을 정립하자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충분하다.


3. 나는 이 방식을 어떤 분의 인터넷 글을 보고 처음 배웠다. 특히 사내 유보금에 대한 논의는 상당 부분 그로 인해 관심을 갖게 됐다. 판단만 잘한다면 인터넷에서 상당한 양질의 자료를 찾을 수 있다. 모든 TV 프로그램이 바보상자인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Too much informatio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