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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Nov 12. 2019

직업은 DNA에 흔적을 남긴다.

겸손을 유지하고, 외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어떤 환경에든 적응을 잘한다. 그래서 유구한 역사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적응에 꼭 진화론적인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찰나의 순간만 있어도 우리는 빛처럼 빠른 속도로 생각하고 반응한 뒤 마침내 적응한다.


무심코 내린 버스 정류장이 엉뚱한 곳이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내 낯선 환경임을 인지하고 낯선 사람에게 길을 물어 제 갈 길을 찾아간다. 상황에 적응한 것이다. 익숙지 못한 곳이라고 하여 울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찰나의 적응 경험은 누적된다. 그래서 낯섬을 익숙함으로 바꿔 놓는다. 좀 더 큰 적응이 되는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일종의 아이러니다.




직장에서의 첫날은 낯선 것 투성이다. 나는 아직도 내 첫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네 창구가 저기다.'

선배가 등을 떠 미는 바람에 의지와 상관없이 내 자리까지 걸어가던 길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고객들에게 바꿔 줄 소량의 시재(현금)와 계산기, 그리고 가서 꽂을 내 명패를 들고 나는 그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시간이 쌓이자, 그 길은 고작 너댓 걸음 정도의 거리에 불과했다. 심지어 내 고객 일을 보다가도 다른 동료가 큰 규모의 현금을 원하면 금고에 달려가서 꺼내 주고 내 자리로 돌아오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응했다.


나는 영업을 곧잘 했다. 고객의 불만을 만족으로 바꿔 놓은 경우도 왕왕 있었다. 나는 내 세 치 혀 덕을 많이 봤다. 슈렉의 고양이처럼 진실 어린 눈망울을 보여 줄 수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쌓여가던 나쁜 감정들은 뭉치고 구겨 작게 만든 뒤, 내 자리 밑으로 던져버렸다. 상품이나 금융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데서 오는 불안함, 안하무인격 고객을 만났을 때의 분노 등은 거기에 쌓여갔다. 그 쓰레기 더미를 깔고 앉은 채 나는 늘 자신감 넘치는 미소로 가슴을 펴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즈음 문제가 생겼다. 나는 (지금은 와이프가 된) 내 연인과, 가족에게도 똑같은 태도로 행동했던 것이다. 나는 그 나이 그 시절의 내 상황에 적응했다고 믿었지만 연인과 가족은 내가 어딘가로 구겨서 숨겨 둔 내 진짜 감정을 읽었다. 토요일부터 말수가 적어지고 월요병이 시작되는 나를 연인은 묵묵히 받아주었다. 부모님은 아마도 안쓰런 미소와 함께 내 얘기를 들으며 못내 아무 말도 못 하셨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과 통화하던 말미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내 아들이 아닌 것 같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좁은 골목길 가로등 아래. 그 아련한 불빛이 스러진 다음날. 나는 사표를 냈다.




내가 힘들었던 그 직장을 지금도 멋지게 잘 다니는 동료들이 더 많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 시절, 나는 적응을 못 했다. 그러나 그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내가 너무 적응을 잘한 데 있었다. 완벽히 적응을 해 버리는 바람에 내 삶마저 그 안에 매몰돼 버린 것이다.


꼭 필요한 만큼만 적응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대체로 건강하다. 이것이 자존감의 문제인지 가치관의 영역인지 모르겠다. 단순히 Work & Life Balance의 문제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건강하다'는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이 직장일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도 아니고 늘 승승장구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찌했든 건강한 범주에 들어 있다. 건강한 사람도 감기를 앓고 배탈이 나곤 하듯이 그들도 그런 굴곡을 밟긴 하지만 어쨌거나 자신을 잃지 않는다.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 환경에 노출되는 게 중요하다. 어느 정도의 바이러스를 접하고 조금은 앓은 뒤 우리 몸 면역체계는 더 강해진다. 무균실에서 사는 것은 어찌 보면 안전을 가장한 위협 인지도 모른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다. 취미가 되었든, 다른 직장/ 직업/ 세상에 살고 있는 친구가 되었든 바깥과의 만남을 지속해야 한다. 그래야 내 직업관이 건강해지고 앓지 않는다.




내가 거쳐간 직업들은 내 DNA에 흔적을 남긴다. 크든 작든 어떻게든 남긴다. 조직에 더 깊이 집중할수록 그 흔적은 더욱 선명해진다. 빠르게 달릴수록 시야가 좁아지는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얼마 전 내가 가입한 인터넷 카페에 불만 글이 올라왔었다. 가격이 높은 어떤 제품을 사러 매장에 들렀다가 직원의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 화가 난 회원이 올린 글이었다. 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 는 '명품 매장에 있으면 자기가 명품인 줄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국제기구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본다. 기관에 상관없이 국제 기구 업의 본질은 개발이 덜 된 국가를 돕는 데 있다. 이것을 금융/ 의료/ 식량/ 외교 중 어떤 수단으로 행하느냐의 차이일 뿐, 핵심은 대동소이하다. 그러다 보니 자기 스스로 선민의식에 빠진 직원을 볼 때가 있다. 늘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상대국의 반응만 봐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감사가 '개인'이 아니라 '조직 전체'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모른다. 그런 직원은 대체로 파견직이나 단기 계약직을 낮춰보는 경향도 있다. 당연한 귀결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케이스를 곰곰 생각해 보자. 그들은 해당 직업에 깊이 빠진 사람들이다. 좋게 얘기하자면 직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끝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그 길에만 매몰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아가 감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직장을 관둬야 할 경우 그토록 사랑했던 직업은 증오의 대상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 전 직장에 대한 욕도 엄연히 흔적의 한 형태다.


내 삶에 기록되는 직업의 흔적들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정도가 사회에서 용인 가능한 정도로 머물게끔 조절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주변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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