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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Jan 08. 2020

Agility 또는 애자일 조직

변화에 살아남기 위한 조건

아마도 재작년 정도부터였지 싶다. '애자일 조직'이라는 개념이 한국 회사에 유행했다. 애자일은 Agile을 한글로 표기한 것으로, 굳이 해석하자면 기민한, 신속한 (조직)이란 뜻 정도로 전달됐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 많은 영어가 한글로 1:1 매칭이 안 되듯이 - 이렇게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러한 1:1 매칭은 영어를 한글로 번역할 때 주로 우리가 행하는 오류인데, '어느 한 나라의 모든 단어가 우리나라의 개별 단어와 매칭 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좀 더 자유로운 해석이 가능해진다.


얼마 전, 지금 파견 와 있는 조직에서 희망자에 한해 선물로 책을 나눠 주었다. "Agility"라는 책인데 초두에 Agiliy, 즉 Agile을 명사화한 것을 정의한 구절이 나온다. 이를 내 식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조직이 몸담고 있는 영역의 저 끝 말미에서 희미하게 일어나는 1) 변화를 '감지'하고 2) 이를 '평가'하여 그 조직에 중요하다고 결정이 날 경우 이를 3) '빠르게' 4) '받아들이고' 그 결과를 끊임없이 5) '피드백'하는 시스템을 6) '체화'하는 것]


보면 알겠지만 애자일을 기민함이나 신속함으로 번역하는 것은 6가지 정도의 조건 중 3)만 다루게 될 뿐이다. 방향을 모르고 빠르게만 움직이는 것은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생각해 보자. 그러므로 누군가 애자일이 뭐냐 묻는다면 1) ~ 6)을 다 아우르는 정의로써 답을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의 구성은 여느 경영 지침서와 다르지 않다. Agility가 뭔지 정의하고 Agile 해 지기 위한 필수 요건을 분석한 뒤 각 요건을 갖춰 혁신이나 생존에 성공한 기업의 사례를 자세히 든다. 물론 결론은 '그러므로 격변하는 글로벌 경쟁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Agility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서점에서 잠시 서서 훌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에서 언급하고 싶은 구절이 있었다. 




Daily Operation에 함몰되지 말아야 한다.


책에서 나열한 예들이 너무 생생하다. 매일 참석해야 하는 회의,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매출 목표, 긴급히 회신해야 하는 고객사의 메일. 이들은 매일 우리의 업무 시간을 갉아먹는 요소다. 그리고 반드시 행해야 하는 필수 항목이기도 하다. 


혁신을 해야 한다는 기치 아래 회의를 모두 없애거나 혹은 회의에 참석하라는 지침에 불만을 표시하는 것. 당장의 매출 달성보다 혁신 방안에만 골똘히 몰두하는 것. 나중에 다른 유형의 사업을 하게 될지 모른다며 지금의 고객사를 괄시하는 것. 모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다. 혁신을 행하기 전에 아마 회사가 먼저 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회사가 변화해야 하는 방향,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고민을 멈춰서는 안 된다. 이 부분을 읽는 순간 내 머리에 떠오른 비유가 있었다.


[우리는 매 끼니를 챙겨 먹기만을 위해 살아가진 않는다. 마찬가지 이유로, 당장 눈 앞에 닥친 중간고사나 기말 고사도 중요하지만, 미래 어떤 사람이 될지 고민하고 꿈꾸는 것을 멈춰서도 안 된다.]




변화는 '예측'이 아니라 '관측'에서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미래를 조금 더 빨리, 정확하게 예측하는 기업'이 성공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늘 이와 다르게 생각해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다른 경영 구루들도 유사한 뉘앙스로 말한 바 있다. 다만,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거나, '때로는 직관을 믿고 따라야 한다.'라고 포장을 했을 뿐이다. 미래를 만든다는 행위 자체가 이미 '예측'을 벗어나 '실행'하고 있는 것이며, '직관' 역시 '어떤 변화를 본 뒤' 그것의 성공 여부에 대한 느낌을 따르는 것에 가깝다. 창조성을 '이미 만들어진 것들을 연결하는 힘'으로 정의한 스티브 잡스의 말도 이와 유사한 맥락이다. 


한 때 이런 사고는 '한국이 Creative하지 못하고 늘 Fast Follower 전략만 써 왔다.'는 비판과 연결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나는 이제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측에 기반한 경영은 Risk에 반하는 위험한 경영이다. Fast Following은 무작정 나쁜 것이 아니며 되레 이에 성공하는 조직이 바로 Agility를 갖춘 조직이다. 아마도 Fast Following이 뭔가 창의력 없는 Copycat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은데 현실은 저작권이나 특허와 같은 법적 테두리 내에서의 활동을 할 수밖에 없으며 단순 copy가 아니라 그에 뭔가 가치를 더한 (Adding values) 활동이 있어야 시장에 살아남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책들이 다루는 꿈같은 이론들을 우리 조직에 어떻게 심을지는 결국 각자의 문제다. 우선 늘 구름 위를 걸으시는 높은 분들이 좀 더 정확한 방향을 잡아 주어야 한다. 그 정당성이 어느 정도 확신될 경우 일부 반감을 이겨낼 수 있는 끈기도 필요하다. 이것이 그분들의 역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과 귀가 모두 열려있어야 한다. 과거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경험들이 미래 변화에는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면 마음도 열려있어야 한다.


실무진은 이를 실현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앞서 언급한 Daily Operation을 놓치지 않으며 주 52시간 한도 내에서 말이다. 이때 나오는 꿈같은 이야기가, 업무 효율화/자동화인데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자 이 리포트를 자동화합시다.'라고 말하는 순간 뚝딱 이를 이뤄낼 도깨비방망이 같은 게 있지도 않거니와, 미리 고민해야 하는 항목도 많다.


우선, 어떤 리포트를 자동화할 것인가? (= 지금 필요한/불필요한 리포트를 구분할 수 있는가?)

다음, 자동화에 문제는 없는가? (= 수기로 조정을 해야 할 필요는 없는가? 내용뿐 아니라 양식에서도?)

위 질문은 간단해 보이지만 각 기업들의 설립 이후로 끊임없이 직원들을 괴롭히던 영원불멸의 문제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필요한 조치는 '업무 재분배'다. 어떤 기업은 아예 '혁신적인 생각을 전담하는 조직'을 꾸리기도 하고, 아니면 한시적인 TF를 만들기도 한다. 혹은 시간을 배분할 수도 있다. 근무 시간의 10%를 혁신 아이디어 고민에 할애한다는 식이다. 


다음으로 필요한 조치는 '방법에 대한 No touch'다. 아이디어는 어디서 어떻게 샘솟을지 모른다. 심지어 누군가는 게임을 하다가, 쇼핑을 하다가, 고전을 읽다가 떠올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연히 반문이 든다. '그건 자유시간을 할당해 주는 것과 다르지 않잖아?'


그렇다. 그리고 이는 기업 입장에서 일종의 손실이다. 그러나 10% 업무시간의 손실이 100%의 미래 이익 증가로 이어질 수만 있다면 일순간 '투자'로 탈바꿈할 수 있다. 물론 상당한 무임승차자가(Free Rider) 생길 것이다. 기업들도 이를 알기에 여러 환경을 만든다. Incentive 체계를 구축하거나, 일쪽으로 생각을 몰아가게끔 넛지(Nudge) 장치를 마련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 모든 종류의 고민이 어떻게든 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다. 예전, 각 직원마다 개인 Room을 주고 정해진 업무 시간도 없으며, 하루 세 끼를 무료도 다 주고, 심지어 애완동물을 데려와도 되는 회사가 이슈가 되었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실적 압박으로 퇴사하는 사람들 역시 높다는 기사도 있었다. 


이러한 몸부림. 기업의 시선과 개인의 행위 간 불일치를 조절해 살아남기 위한 행위가 바로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것을 인지하는 것이 모든 변화의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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