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영어 관련 글들은 "미국에서 한국어로 쓰는 잡상"이란 매거진에 썼다. 그런데 나는 그 사이 귀국을 했고 본사 업무에 매달린 지도 5개월 차가 되었으며 심지어 그 사이 TF도 하나 완료했다. 그야말로 Time flies!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학군지로의 이사였다. 거기서 느낀 바도 무척 컸지만 그만큼 늘어난 통근 시간 동안 겪은 변화로 좀 더 가벼운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나는 그 늘어난 시간을 고스란히 원서 탐독에 할애했던 것이다.
1. 시작은 단순했다.
원서를 읽자는 시작은 단순했다. 미국 계좌 잔고가 남았을 뿐이었다. 원래 직구라도 할까 하고 남겨둔 건데 막상 한국산 제품으로 커버가 안 되는 품목은 거의 없었다. 예상의 착오에 약간 벙쪄 있다가 나는 아마존 킨들을 떠 올렸다.
"나 가끔 킨들에서 책 좀 사 봐도 돼?"
처치곤란으로 쌓였던 책들을 주기적으로 비워내기 바빴던 우리 집인지라 와이프는 전자책으로의 전환에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다.
나는 그렇게, 쉬운 책부터 (내 기준엔 경제 경영서) 사기 시작했다.
2. 효과는 상당했다.
1)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하고 난 이후부터 원서 읽는 속도를 꽤나 높여 둔 터였다. 그렇지만 비영어권 환경에서는 읽는다고 한들 감퇴하는 속도나 줄일 뿐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한국 사람만 만나고 한국말을 하고 한글로 보고서를 쓰다가 출퇴근 시간만 원서를 읽었을 뿐인데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장르도 사회, 우주, 수학, 역사 등으로 넓힐 수 있었다. 어휘는 늘었는데 "Apple은 한국어로 사과다."라는 개념이 아니라, "Apple은 Apple인데 Something we can eat이다."라는 이미지로 자리 잡히는 느낌이었다.
2) 정보 접근력이 나아졌다.
번역본이 없어도, 있었지만 절판됐어도, 여전히 팔지만 번역이 엉망이어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일례로 얼마 전 페친 한 명이 칭찬한 "헤지펀드 열전"이란 책도 한국서는 구하기 힘들지만 킨들에서 "More Money Than God"으로 바로 살 수 있었다.
검색도 구글에서, 해외 소식은 다양한 외신을 통해 바로 보니까 하나의 꺼풀을 벗은 정보들의 속내를 바로 보는 셈이었다.
3) 말하기가 퇴보하지 않았다.
첫째 영어학원에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였다. 외국인을 마주쳐도 자연스레 눈인사하고 "How are you?"라고 인사를 건네는 게 어색하지 않았다. 딸이 급히 나오느라 선생님 앞을 지나치면 "Please say good bye to your teacher."이라고 자연스럽게 나왔다. 영국과 화상회의를 하는데 듣기와 말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읽기는 결국 내면의 말하기라던가. 나 스스로도 놀란 효과였다.
* 이건 아직 원인을 찾지 못 한 효과인데, 영화를 보면 영어 자막도 끈다. 그래야 되레 잘 들린다. 영어 자막을 켜면 글만 읽히고 소리가 안 들린다. 예전까진 자막이 필요했는데... 이건 아직 연구 중이다.
이런 효과들이 체감되기 시작해서일까? 요즘은 읽는 책의 90%가 원서다. 한국어 책을 꽤 빠르게 읽는 편인데 조만간 따라잡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선순환을 일으켰다.
요샌 서점엘 가도 원서 코너만 서성인다. 물론 귀국 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의 생각이라 나중엔 또 다를 수 있다. 다만 장담할 수 있는 건, 우리말 역시 잘하는 사람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듯 영어 역시 꾸준히 읽어나가면 최신 유행어는 모를지언정 세련되고 정확한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Opening your book and reading it will make you feel more confident in using 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