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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현경 Jun 09. 2020

섬으로 가는 먼 길

물을 열다

춤폰으로 가는 장거리 야간 버스를 타고 약 500km를 이동한다. 롬프라야 카타마란, 줄여서 롬프라야라고 부르는 이 여행자 버스는 버스와 페리를 한 번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남부의 휴양섬으로 가기 위한 대표적인 이동 수단이다. 기차나 항공편도 있지만 버스는 선착장에서 바로 하차하기 때문에 환승의 번거로움이 없다. 운임도 저렴하다.




롬프라야 버스


이 버스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출발할 때부터 휴대용 스피커로 밥 말리 분위기의 레게 음악을 틀어놓고 흥에 취해서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는 맨 뒷자리 놈들이었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잠을 청하는 야심한 시각 어두운 버스 안에서 자기들끼리 쉼 없이 떠들고 발을 쿵쿵 구르면서 소리를 지른다. 그 소음을 견디다 못해 화가 폭발한 맨 앞자리의 여자가 그놈을 한대 칠 기세로 다가와 속사포로 항의 혹은 욕설을 쏟아냈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큰소리치며 입을 다물지 않았다. 다른 승객들 사이에서도 닥치라는 고성이 터져 나왔지만 끄떡없었다. 그 남자는 약이든 술이든 뭔가에 취해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이었으면 진작에 사달이 났을 테고 일본이었더라면. 글쎄, 남에게 민폐 끼치는 일에 예민한 것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들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을까. 집 밖으로 나오면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은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소동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놈들은 뒷좌석에 드러누워 버스 안의 누구보다도 조용하게 죽은 듯이 잠들었다. 마이 페이스라는 건 바로 저런 걸 두고 하는 말이겠다.



한참을 짙은 어둠 속에서 달리던 버스에 불이 켜지고 꽤 규모가 큰 휴게소 앞에서 멈췄다. 앞쪽의 빨간 디지털시계가 오전 3시를 가리키고 있다. 밖으로 나와 여기저기 뻐근하게 굳은 관절을 움직여본다. 습도 높은 밤공기가 얼굴에 진득하게 달라붙는다. 이런 축축한 공기 속에선 온몸이 미끈거리는 점액으로 뒤덮인 양서류라도 된 것 같다. 잠에서 덜 깬 머릿속은 몽롱하고 머리카락은 사정없이 떡져있지만 매무새를 엄격하게 신경 쓸 여유는 없다. 그럴 이유도 없다. 물기 묻은 손으로 머리를 두어 번 쓸어 올리고 담배를 물었다.

지도를 보니 아직 두 시간은 더 가야 한다. 버스는 미끄러지듯 휴게소를 빠져나왔다. 다시 차내의 조명도 꺼졌다. 나는 아이폰의 불빛이 새어나가는 걸 막으려 탑승할 때 나누어준 담요를 머리에 뒤집어썼다.




춤폰 선착장


춤폰에 도착한 지 세 시간이 지났다. 선착장에 정박해있는 스피드 보트를 향해 배낭을 멘 여행자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따오로 가기 위해선 나도 배에 타야 하지만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선착장이었다. 어찌하여 절망의 순간에도 풍경은 그토록 빛나는 걸까.



휴게소에서 잠이 깬 나는 턱을 괴고 캄캄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카오산의 롬프라야 사무실 앞에 가득 쌓여있던 가방의 모습이 떠올랐다.

버스 체크인을 마치고 나온 사무실 앞에는 가방들이 잔뜩 그물망으로 엮여있었다. 그것만 보고 항공편처럼 수하물을 맡기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행선지를 말하자 Koh Tao가 인쇄된 분홍색 짐 표를 주기에 손잡이 부분에 메어두고 그냥 온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걸 어떻게 옮기지?' 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가슴이 옥죄어 들었다. 불길한 예감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니 버스를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가방을 갖고 있었다. 팟타이와 망고를 먹으면서 빈 손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가기 전에 한 번만 짐을 확인했더라면, 버스에 오르는 순간에라도 위화감을 느꼈더라면!


시간을 되돌릴 방법은 없다. 안타깝게도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롬프라야 버스 세대가 도착했지만 내 가방은 없었다. 버스에서 내린 여행자들은 하나 둘 자신의 배낭을 찾아 메고 선착장 안쪽으로 사라지고 주차장엔 나와 두 명의 청년만 남았다. 혀가 바싹 말라 기도를 틀어막는 것 같았다. 허탈하게 서있을 수만은 없어서 말을 붙여보니 놀랍게도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 팔과 종아리에 문신을 가득 새긴 청년들은 자기들끼리 낮은 목소리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했다. 나는 숨을 고르고 그들 뒤에 따라붙었다. 내가 서툰 영어로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말할 땐 달랑 사무실 번호 하나 적어주고 비키라는 식으로 응대하던 카운터의 직원은 그들이 상황을 설명하자 여전히 떫은 표정이었지만 뭔가 상황을 정리해주는 것 같았다. 결론은 6시간을 기다릴 것. 다음 버스가 정오에 도착하니 거기서 짐을 찾으라는 얘기였다.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진 몰라도 지금으로썬 그 가능성에 걸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어스름한 새벽이 밝아온다. 동쪽 곶 너머에서 해가 모습을 드러내자 이내 지면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다. 이로써 운송 수단 놓치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일본에서 귀국행 항공편과 기차, 미국에서 장거리 버스, 오늘 여기 태국에서 배까지 놓쳤으니. 자조의 입맛이 쓰다. 선착장엔 날이 밝고 있었다.


웃기는 소리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초연해진다. 울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어쨌든 나는 이곳에서 발이 묶였고, 6시간 뒤에 도착하는 다음 롬프라야 버스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담배는 네 개비 남았다. 나와 똑같은 상황에 처한 청년 둘이 이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어야 할까.



해가 완전히 머리 위로 올라왔다. 한 곳에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던 적이 있었나. 카페 안은 습하지 않지만 계속 주변을 맴도는 모기가 성가셔 밖으로 나왔다. 처음 듣는 새소리가 열대 기후 특유의 경쾌한 리듬으로 지저귄다. 햇빛은 밝게 빛나다가 옅어지고 그림자가 희미해지다가 다시 강하게 내리쬔다. 멍하니 눈 앞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주시한다. 죽은 모기 시체를 옮기는 작은 불개미들. 천장에 난 작은 구멍으로 그보다 더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쏙 들어가면서 내밀어진 꼬리를 보았다. 젖꼭지가 검게 늘어진, 마른 갈색 개는 하릴없이 길을 오간다. 시간이 방울방울 맺혀서 떨어진다. 더없이 조용한 시간이다. 역설적이게도 아마 이번 여정 중 가장 늘어지게 평화로운 시간이 아닐까. 높게 매달린 밧줄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기분이다. 얼굴의 기름기가 얼굴 전체를 뒤덮어 답답했다. 그 순간에는 무엇보다도 샤워가 간절했다.



여행 중에 갑자기 닥치는 사고는 핀볼 게임을 닮았다. 쇠구슬이 홈에 빠져 게임이 끝나지 않으려면 양 옆의 막대를 계속해서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 막대에 튕겨져 공중으로 떠오른 쇠구슬은 어디로 움직일지 알 수 없다. 쇠구슬을 직접 조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게임판이라는 공간 안에 들어있다는 것뿐이다. 집에서 나온 지 24시간. 나는 아직도 이동 중이다. 공중으로 떠오른 핀볼처럼. 부디 지금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버스 안에 나의 가방도 실려있기를 바랐다. 다시 내 손에 돌아온다면 그 모든 기다림의 시간도,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고 만 자책도 그만둘 수 있을 텐데. 공은 다시 한번 위로 떠올랐다.


12시가 지난 지 30분이 넘어도 버스가 오질 않는다. 돌아온 배에서 내린 한 무더기의 여행자들이 분주하게 오고 가는 중에 나는 계속 천천히 녹고 있다. 얼마나 기다려야 이 지독한 기다림이 끝날까. 나는 오늘 뭘 하게 될까? 뭘 할 수 있을까? 무엇하나 알 수가 없다. 이제는 나른하게 내리쬐는 정오의 태양도 배경 음악처럼 들리는 태국어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돌이 되어버린 망부석처럼 나는 버스가 오는 방향을 목이 빠져라 바라보고 있다. 수영하고 싶다. 민물에 몸을 푹 담그고 바닥 위에서 미끄러지듯 유영하고 싶다. 이렇게 기다렸는데도 내 가방이 끝끝내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깊은 실망과 무력감에 완전히 용해될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에 아주 천천히 질식하고 있었다.


팡안, 사무이, 따오를 거쳐 돌아온 보트는 한 무더기의 여행자들을 쏟아냈다. 나는 버스가 들어오는 방향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어디보다도 조용하고 평화롭던 선착장은 이내 온갖 언어의 저수지가 되어 웅성거린다. 이대로 가다간 자라처럼 목이 길어지겠다고 생각할 무렵 드디어 버스가 들어왔다. 나는 청년들과 함께 하차하는 가방들을 초조하게 지켜봤다. 먼저 그들의 군용 배낭이 내려지고 거의 마지막에 내 가방이 나타났다. 7시간이 연기처럼 흩어진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가방을 부둥켜안고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길로 보트에 올랐다. 그제야 마음의 여유를 찾은  그들에게 말을 붙였다. 그들은 호주에서 온 형제였고 페리를 타고 갈 수 있는 주변의  섬을 모두 여행할 것이라고 한다. 그들도 나만큼이나 많이 지쳐 보였지만 입가에 띤 미소를 스치듯 보았다. 마침내 쾌속선에 앉자 긴장이  풀린다. 그것도 잠시, 움직이기 시작한 배는 위아래로 넘실거리며 온종일, 아니 30시간 가까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혹사당한 속을 뒤집어놓는다. 손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가방끈을 부여잡고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중간중간 몸을 뒤척이며 멀미를 의식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썼다. 옆을 보니 형제 중의  명도 고개를 앞좌석에 파묻고 움직이질 않았다. 페퍼민트 껌을 건네니 수척한 얼굴로 받아 든다. 토기가 올라오지 않게 하려고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다 보니 배가 멈췄다.  낭유안, 따오에 붙어있는 아주 작은 섬이다. 거의  왔다. 하지만 이내 용마병처럼 몰려드는 중국인 관광객의 행렬을 기다려야 했다. 뱃멀미가 이렇게 끔찍할 줄은 몰랐다. 눈을 질끈 감고 마지막 남은 인내심을 쥐어짰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과 예상보다 훨씬 만만치 않았던 긴 이동도 결국엔 끝이 난다. 집에서 나온 지 33시간 만에 마침내 꼬 따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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