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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현경 Jun 09. 2020

잊을 수 없는 첫 다이빙

물을 열다

꼬 따오



픽업 차량을 기다리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들었다.

유럽에서 온 가족과 중국인들, 피부가 짙은 구릿빛으로 그을려 경력 있는 다이버처럼 보이는 일본인 두 명. 중국, 일본 그룹을 먼저 보내고 곧이어 온 사파리 투어버스처럼 생긴 픽업트럭을 타고 다이브 리조트에 도착했다. 리셉션에는 머리를 노랗게 탈색한 까무잡잡한 청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일주일간 내게 다이빙하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도미토리를 배정받고 집을 나와서 한 번도 씻지 못했으므로 급하게 세수와 양치만 하고 내려가 바로 오픈워터 이론 교육을 시작했다. 동영상을 보며 문제집에 답을 적는다. 정신없이 마치고 나니 저녁이다. 강사님은 오늘 몸이 좋지 않다며 먼저 돌아가고 나는 숙소 앞 레스토랑에서 그가 추천한 음식을 먹었다. 속이 깊은 볼에 큼직하게 잘린 야채가 많이 든, 짭짤하고 매콤한 커리였다. 피로가 썰물처럼 몰려들었지만 한동안 식당에 앉아 주변을 둘러봤다. 편의점에서 물과 자물쇠를 사서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샤워를 오랫동안 했다. 끈적한 몸에 적당한 온도의 물이 쏟아질 때의 그 기분이란. 지금 살아있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철제 2 침대에서 아래층을 배정받았다. 위층엔 중국인 여자아이가 먼저 와있었는데 굉장히 활달하고 밝았다. 늘씬한 태닝 피부에 중국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녀는 다이브 마스터를 하기 위해 따오에  번째 방문이란다. 내게 중국식으로 손가락 수를 세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담배를  대씩 권하고 들어와 잠에 들었다.




오픈 워터


새벽 6 15. 알람이 울림과 동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이건 몸과 마음이 어느 정도 긴장하고 있다는 증거. 특히나 오늘은  삶에서 반드시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   번의 처음에 도전하는 날이니 온 신경이 영민하게 번뜩였다. 간밤에 이슬을 맞았는지  마른 래시가드를 챙겨 입고 방수가 되는 가방에 로그북과   병을 챙겨서 밖으로 나오니 여명이 빠르게 걷히고 있다. 따오의 아침은 수많은 다이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깨어난다.


물에 들어가기 전엔 체력 확보를 위해 무엇으로든지  속을 채워둬야 하기 때문에 출발 10  샌드위치와 당근 주스를 한입에 털어 넣고 보트에 올라탔다. 다이빙은 격렬하게 움직일 일이 없지만  땅을 밟고 살던 인간은 물속에서 쉽게 지친다. 사방에서 몸을 누르는 물의 무게가 특별한 장치 없이는 육상 생물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물론, 그전에 장비가 몸을 짓누른다. 가득  공기통을 등에 메고 있으면   가마니를 짊어진  움직이기 거웠다.

부력 재킷과 공기통에 레귤레이터라고 부르는 생명줄을 연결하고 허리에 납 세 덩어리를 묶은 웨이트 벨트를 바짝 묶어 모든 장비를 착용한 채로 일어서면 온몸을 조이는 강력한 압박과 무게에서 해방되고 싶은 욕구가 첫 입수의 공포를 넘어선다. 보트 가장자리에 서서 딱 한 발자국 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어깨가 미치도록 무겁다. 마스크와 호흡기를 한 손으로 꾹 누르고 허공으로 한 발을 내딛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1# 망고 베이


숨을 들이쉴 때마다 쉬익 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물속에서는 절대 숨을 참으면  된다고 한다. 반드시 숨을 들이쉬거나 내쉬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숨을 오래 참고 있으면 폐가 과팽창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있기 때문이다. 폐가 찢어진다는 생각은 하기만 해도 섬뜩하지만 어쨌든 사람은 숨을 쉬어야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의식적인 수동 숨쉬기가 물속에서 지켜야   번째 철칙이었다.

로프를 잡고 천천히 내려가서 깊지 않은 바닥에 닿았다.  가지 응급 대처 기술을 연습하고 무중력 같은 물속에서의 움직이는 방법을 혔다. 발을 저을 때마다 물이 무겁다. 몸을 알맞게 가라앉히고 뜨는 일도 처음이라 쉽지 않다.  앞에 무지갯빛 비늘의 물고기가 유유히 지나간다. 고개를 조금 들어보면   수면에서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데 전방에 뭔가  놈이 있다. 시야가 맑지 않아 어렴풋하게 보이는 와중에 번뜩이는 하얀 . 수중에서의 위험 요소를 찾아보다가 공격성으로 유명한 물고기  마리가 떠올랐다. 보통 바다에서는 등장 확률이 극히 드문 상어 보다도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는 생선이 있는데, 바로 트리거 피쉬다. 쥐포로 만드는  좋은 쥐치의 사촌쯤 되는 거대한  녀석은 스테이플러 제거기 같은 구조의 두꺼운 이빨로 두꺼운 핀까지 뚫을  있다고 한다. 수중 생물이 위험한 경우는 모든 야생 동물이 그렇듯 자기 영역을 침범하거나 자신에게 위협이  때이다. 녀석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방향을 틀고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산호 위를 천천히 유영하면서 들여다보면 작고 분주한 세상이 있다. 우주에서 온 것 같이 거대한 해삼도 종종 눈에 띈다. 산호초는 두꺼운 아크릴 벽이 없는 수족관이다. 물고기들은 내 바로 근처에서 이 큰 녀석은 무엇인지 멀뚱히 보다가 작은 지느러미를 흔들며 멀어진다. 역동적으로 솟아오른 바위에 가득한 산호의 모습은 장엄해 보이기까지 한다.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물 밖으로 나갈 시간이다. 수면 밖으로 머리를 내밀자 순식간에 세상이 뒤집힌다. 나는 이제 수면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의 청록빛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2# 트윈스 


올라와서  한잔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첫 다이빙의 성취감이 방금  탄산음료의 기포처럼 짜릿하게 올라온다. 제법 긴장했지만 예상대로 물속은 편안하다. 공기 중에서 보다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쩔  없이 조금은 마시게 되는 바닷물의 짠맛에 입술 언저리가 아릿한  마저 만족스럽다.  다이빙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다음 포인트로 이동했다.


보트는 작고 아름다운 삼각 해변으로 유명한 낭유안 섬의 연안에서 멈췄다. 다시 재빠르게 장비를 장착하고 처음보다 나은 자세로 입수에 성공했다. 그곳엔 처음 간 곳 보다 더 화려한 생태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 웜이라는 알록달록한 생물과 생생한 색감을 빛내는 열대어들. 여기에서도 트리거 피쉬는 열심히 바닥의 무언가를 쪼아 먹고 있다.

바위 사이에서 자기들끼리 투닥이는 큰 녀석들, 그 아래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가오리, 가시가 긴 성게, 그리고 수면으로 올라오기 전 체내의 질소량을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3분간 멈춰있는 안전 정지 중에 산호 너머로 멀어지는 바다거북의 뒷모습을 보았다. 어떤 이들은 첫 다이빙에서 고래상어를 만나는 굉장한 행운을 얻기도 한다지만 지금은 다른 다이버들이 내쉬는 공기 방울로 만들어진 기둥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황홀하다. 이 교육 과정을 무사히 마치면 앞으로 살면서 다이빙할 시간은 많고, 더 능숙해질수록 기적 같은 순간은 계속 이어질 테니.



다시 대기권으로 돌아오는 수면의 경계 직전, 물속에  머물고 싶은 간절함이 다시 한번 깊은 바다 밑을 바라보게 했다. 다이버들이 뿜어내는 공기의 기둥이 수면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과 만나 찬란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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