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risBoucher Jul 31. 2017

부르고뉴 여행에서 찾은 한옥의 미래

지역 건축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본 한옥의 발전 가능성

한국에 무더위가 찾아왔다고 유튜브를 통해 본 뉴스룸에서 전해 오더군요. 파리는 6월에 반짝 덥더니 7월에 들어서는 서늘함이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 여름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날씨와는 상관없이 휴가철은 돌아왔고, 저는 지난 주말 8월에 시작되는 4주짜리 휴가가 시작되기도 전에 부르고뉴 지방의 작은, 정말 작은 소도시 Couches라는 곳에 속해 있는 Eguilly라는 조그만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이 작은 마을과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3년 전인데 오랜만에 다시 가보니 변한 것 하나 없고 제가 머문 집의 정원에서 보이는 절경은 여전히 부르고뉴의 맛있는 와인을 품고 있어서 정말 행복한 주말이었습니다. 만일 프랑스를 여행하실 일이 있으신 분들은 파리나 니스 같은 관광지, 휴양지뿐 아니라 이런 작은 시골마을을 한번 들려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술을 좋아하신다면 각 마을에 숨어있는 와인 생산자들의 와인 창고 Cave에서 살 수 있는 소생산 와인들을 찾아서 싼값에 좋은 술을 즐기는 것도 이런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큰 즐거움일 겁니다. 


물론 이 사진에 있는 Couches럭비팀의 2006/2007 시즌 2부 리그 진출 기념 와인 같은 것은 보통의 와인 판매처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긴 합니다. 참 맛있었습니다. 사진 : ParisBoucher


프랑스의 이런 작은 마을들을 여행하시는 분들이 많이 느끼는 것은 마을이 '예쁘다'라는 것일 겁니다. 초록의 숲과 밭, 그리고 느릿하게 지나가는 소 몇 마리를 담고 있는 초원이 보내주는 자연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마을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어떤 아기자기한 예쁜 맛, 그런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 프랑스의 시골 마을들입니다. 저도 이번에 Eguilly에 며칠 머물며 이런 예쁨을 다시 만끽하고 왔습니다. 적어도 몇십 년 전부터는 그곳에 있었을 낡은 건물들 겨우 10-20채가 모여있는 이 마을은 무엇을 갖고 있기에 이렇게 예쁠까요? 저는 그 몇 안 되는 건물들의 군집과 그것을 가꾸는 마을 사람들이 이 마을의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이 마을은 거의 모든 건물은 이 지방의 몇몇 핵심적인 건축요소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밑의 사진에 있는 건물도 이 마을의 건물 중의 하나인데요, 일단 지붕의 기와가 특이합니다. 적황색의 작은 기왓장들을 마구잡이로 얹어 놓은 듯한 모습이 특이한데요, 부르고뉴 지방에서 11세기경부터 쓰여왔다고 하는 이 기왓장은 흙을 구워서 만든 후 유약을 발라서 마감한 것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암기와와 숫기와가 서로 맞물려 놓여있는 한옥의 그것과는 달리 편편한 한 가지 모양의 기왓장들이 엇갈려서 지붕을 덮은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일반 집들이 아닌 성 건축에서는 이 지붕에 색색깔로 물을 들여 꾸미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지역별로 다양한 지붕재를 찾아볼 수 있는데요, 파리에서는 19세기경부터 주로 아연판으로 만든 지붕을 사용했고 다른 지방에서는 청석돌을 쪼개 만든 슬레이트로 지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왼쪽은 마을의 건물 사진이고 오른쪽은 쿠슈 성 Château de Couches의 지붕 사진입니다. 쿠슈 성의 지붕에는 곳곳에 노란색과 초록색으로 칠을 한 기와가 박혀있습니다. 사진 : ParisBoucher


좀 더 자세히 건물들을 뜯어보면 또 다른 특징을 하나 발견할 수 있는데요, 바로 대부분의 집들이 계단을 올라가야 집 현관문에 다다른 다는 것입니다. 이런 건축방식은 이 지방의 지리적 특성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부르고뉴 지방뿐 아니라 땅이 습한 대부분의 지방에서 이렇게 생활공간을 땅과 분리시켜 바닥에 습기가 차는 것을 막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공간은 주로 와인이나 농작물을 저장하는 창고로 사용하죠. 제가 머문 Eguilly의 경우에는 이렇게 해도 지상 2층까지 습기가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사람이 사는 바닥과 건물이 얹어진 땅 사이에 공간을 두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건축방식이었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공통된 건축 언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각각의 필지의 모양과 그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변형되고 만들어진 건축물들이 모여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아기자기하고 이쁘다고 느낍니다. 특히 동네를 모두 둘러보는데 10여분이 채 걸리지 않는 이런 작은 마을에서는 그런 느낌을 더 강하게 받습니다. 

그런데 위에 설명한 건축 요소들, 즉 흙을 구워서 만든 기와나 반지하를 밑에 두고 건물을 짓는 방식은 사실 현대 건축에서 개발한 다양한 기술들로 더 손쉽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플라스틱 기와는 흙을 굽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색깔과 비슷한 강도로 만들 수 있고, 건물을 짓기 전 땅을 다질 때 땅 자체에 방수를 한다면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건물주는 거의 한 층의 넓이만큼 큰 건물을 지을 수 있죠. 하지만 프랑스의 작은 마을들을 조금 돌아다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곳에는 그렇게 현대적인 방식으로 건물을 짓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옛날 방식을 유지하며 그것을 현대의 기술을 이용해 발전시키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지요. 저는 이런 노력이 모여서 이 작은 마을들이 갖고 있는 아이덴티티를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이런 것들이 오늘날 프랑스가 갖고 있는 문화적인 위상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이야기할 '지속 가능한 성장'의 건축, 좀 더 쉽게 말해 '환경 건축'의 시대에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에 크나큰 어드벤테이지를 주기도 합니다.



오른쪽 집은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왼쪽 집을 신축 확장한 것입니다. 지붕은 현대의 기술로 만들었지만 여전히 비슷한 색의 흙을 구운 기와를 사용하고 있고 지붕의 각도, 건물의 높이도 비슷하게 맞추어 설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 ParisBoucher




한옥은 우리에게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가꾸어 나가야 할까요? 저의 짧은 부르고뉴 여행기가 제가 생각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우리는 한옥이라고 불리는 한반도의 옛 건축양식을 은연중에 한민족이 만들어내고 지금까지 유지해온 대체적인 건축양식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생길 수 있는 변이의 폭은 궁전 건축에서만 쓸 수 있는 특별한 색상이나 공포양식, 건물의 크기, 그리고 각 용도 별로 달라지는 건물의 배치 방법 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옥은 나무로 골조를 올려 기와로 지붕을 덮은 것이고 그것이 한민족의 건축양식을 능히 대표하는 전통방식의 건축이 이것이라고 여겨왔습니다. 그리고 많은 건축가들은 한옥의 기와지붕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유려한 선의 조형미에 대해서 이야기해왔고, 다양한 열림과 건물 배치의 구성이 만들어내는 시적인 풍경에 집중했습니다. 조형성과 공간 구성, 이 두 가지 건축요소가 오늘의 한옥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키워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때로는 한옥에서 살았던 유학자들이 즐겼던 이런 건축요소들이 한국인의 민족성을 대표하는 건축 방법이라고 소개하며 그 아름다움이 우리 민족의 얼이라 칭송하기도 했죠. 

'한민족의 건축'의 조형미, 그리고 그 공간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된 건축가들은 그 건축요소들을 현대의 건축재료로 자신들의 건축에 녹여내는 데 있어서 큰 성과를 거두어 왔습니다. 김수근의 공간사옥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건축가들과 비평가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들어왔습니다. 공간에서 근무한 후 독립해 오늘날에는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가라 꼽을 수 있는 승효상의 다양한 주택 프로젝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승효상은, 저는 솔직히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습니다만, 한옥의 기와지붕의 선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낸 특이한 지붕모양의 집들로 세계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로재' 건축사무실이 선보이고 있는 이런 프로젝트들은 한옥에 담긴 삶에서 영감을 받았다기보단 그 조형미에 더 집중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 : Archdaily.com 원본 링크


이분들이 이루어낸 미적, 공간적 성과를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저는 이러한 건축이 한옥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에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한반도의 지역 건축을 '한옥'이라는 하나의 건축양식으로 축약시켜 그것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미적 요소에 집중해 그것을 다시 '한옥'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좀 못마땅합니다. 우리는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한민족'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머릿속에 그려지는 한옥이라는 건축양식은 한민족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반도와 옛 고구려 땅 곳곳에서 발전해 온 다양한 지역 건축을 대표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한국인이 살고 있는 한반도 땅에서 발전돼 온 건축양식은 조선의 유교문화가 자리잡기 훨씬 이전부터 그 땅의 지리적, 기후적 특성에 적응하기 위해서 그곳에 살고 있던 인류, 우리의 조상들이 개발해 온 다양한 건축방법들을 축척시켜 온 결과입니다. 제가 이전 글에서 밝혔다시피 사실은 이런 기후적 특성이 우리의 삶의 문화를 특정 짓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온돌의 사용은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이 좌식생활을 하게 만드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물론 성리학이나 불교, 도교 같은 강력한 사상이나 종교가 나라의 작동원리를 구축하는 와중에 그것이 건축양식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 우리가 살아가는 주거공간은 그 건물이 지어진 땅의 특성에 맞춰져 생성되어 왔습니다. 이것이 제가 한옥을 한민족의 건축양식이 아닌 한반도와 옛 고구려 땅의 기후적, 환경적 특성이 주거문화에 서려있는 지역 건축 Vernacular architecture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위에서 소개한 승효상 건축가의 대표작 중 유홍준 교수의 자택인 수졸당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수졸당은 한국 전통가옥의 건축 언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일견 동의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수졸당이 보여주는 다양한 위치에서 만들어지는 특별한 풍경들은 한옥에서 여러 채의 건축물과 창문들의 열리고 닫힘, 그리고 지붕의 처맛자락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그 특유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보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직접 보고 싶은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집을 과연 '한옥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는 점에서는 저는 회의적입니다. 이 건축이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지역 건축으로써의 한옥의 모습은 이 건물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자꾸 승효상 건축가를 안 좋은 예로 드는 것 같다 안타까운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 정확히 반대되는 예시입니다. 그리고 지역 건축의 예시로 들고 싶은 '휴휴당'의 건축주인 유홍준 교수의 서울 자택 건축가이기도 하고요. 유홍준 교수는 수졸당 이외에 충남 부여군에 있는 반교마을이라는 곳에 자신이 직접 이름 붙인 '휴휴당'이라는 집을 또 한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휴휴당이라는 집은 서울의 집과는 달리 지역의 재료로 그 지역의 방식으로 만든 지역 건축입니다. 두 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한옥의 특출 난 조형미나 공간적 아름다움이 덜하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벽채가 목재 골조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법적으로 봤을 때 한옥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지역 건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건축물은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수졸당보다 훨씬 한옥다운 건축물입니다.  



배포가 자유로운 휴휴당 사진은 구할 수가 없어서 일단 '알쓸신잡'캡쳐 사진으로 대체합니다.
그런 중 우리 집이 일반 한옥과 다른 점은 나무기둥을 쓰지 않고 돌담으로 뼈대를 올린 것이다. 그것은 이 동네 자연조건에 맞춘 것이었다. 에게해 산토리니섬에서는 그 섬에서 나오는 자재 외에는 집을 짓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처럼 향토적이며 아름다운 풍광을 갖게 되었다. 반교리는 땅 밑이 모두 돌이다. 그래서 이 동네 집이 다 돌담인 것이다. 집터를 고르면서 나온 돌로 집을 지었고 돌담을 둘렀다.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휴휴당을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 반교리의 집들이 돌로 지어졌다는 말은 없습니다만 그 동네에서 나오는 재료를 가지고 그 동네의 다른 건축요소와 어울리는 집을 지었다는 유홍준 교수의 설명은 제가 말하고자 하는 우리가 한옥을 보아야 할 시각, 그리고 한옥이 나아갈 방향을 거의 정확히 집고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는 여기서 '일반 한옥'이라는 말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한옥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유홍준 교수가 지칭하는 '일반 한옥'은 우리가 답사를 가면 보통 볼 수 있는 사찰이나 향교, 유명한 대감의 자택 같은 건축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건축은 오히려 일반적이지 않은 한옥입니다. 진짜 일반적인 한옥은 각 지역에 흩어져 각자 그 지역만의 방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들입니다. 

"한국 주거와 삶"이라는 책을 보면 강원도 산간에서는 너와집이라고 해서 소나무를 얇게 쪼갠 것을 이용해서 집을 지었습니다. 나무가 많은 이 지방에서는 그냥 나무를 얇게 잘라 쌓아 올려 벽채를 만든 형태의 집도 있습니다. 평창에서는,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고 하나, 이 지역에서 흔한 점판암을 잘라서 지붕을 만들었습니다. 지역의 재료를 이용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지역의 기후특성상 단열을 강화하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각 지역별로 설령 재료는 비슷한 것을 썼더라고 집의 구성은 지역마다 다른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추운 지방에서는 최대한 많은 방을 구들 쪽으로 모아서 열효율성을 높인 반면 더운 지방에서는 집을 일자로 지어 통풍에 더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이 지방이나 저 지방이나 모두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 위주로 건축을 했던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궁궐 건축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지방에서 재료를 가져다가 집을 짓는 일은 산업시대 이전에는 거의 없었습니다. 따라서, 안타깝게도 지금은 많이 사라져 가고 있지만, 지역에 가서 그 지방의 오래된 건축물들을 여럿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브루고뉴 여행에서 본 그런 아기자기한 동네 같은 지역 건축의 언어로 만들어진 건축물들의 군집이 한국에도 당연히 이곳저곳에서 각각의 특징을 뽐내면서 산재해 있었다는 겁니다.


소나무를 쪼갠 재료로 지붕을 얹고 황토의 색이 보통의 한옥보다는 좀 더 붉은 이 너와집은, 이 지역에서는 그 '일반 한옥'보다 훨씬 더 일반적인 건축양식입니다. 
삼척 신리 너와집 민속유물 김진호 가옥 / 사진출처 : 문화재청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땅에 있었던 모든 건축을 '한옥'이라는 하나의 양식에 몰아넣고 그 명맥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저 겉모습만 비슷하게 짓고 거기 들어가는 기술들 중 유명한 것 몇몇만 지켜나가는 것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한옥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제가 지난 두 편의 글에서 알려드리려 했던 바와 같이, 단순한 그 건축양식 혹은 건축 구조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각각의 지역에서 그곳의 지리적 기후적 환경적 특성에 따라 때로는 독립적으로 발전되어 온 건축물입니다. 그리고 이런 건축물들은 꼭 '한민족' 전체에게가 아니더라도 그 지역민들에게 삶의 문화로서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아파트와 한옥을 비교한 이전 글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 지역에서의 삶은 그 지역의 현대건축에도 어떤 방식으로 녹아들어 가 있을 거라는 겁니다. 창문을 만드는 법이나 지붕을 얹는 법, 대청마루의 크기 등등 기후와 환경에 따라 생기는 변이 Variation은 각 지역의 지역 건축에 특성을 부여합니다.





전기의 공급이 순탄치 않고 산업발전의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빨랐던 시절, 우리는 경제적인 이유로 습관적인 에너지 절약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들이 살아갈 터전을 위해, 이 땅의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 절약을 해야 하는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환경 문제는 우리의 주거 환경에도 적잖은 충격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어떤 건축을 해야 할까요? 저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한옥을 다시 보자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라는 땅은 사계절이 뚜렷한 것 이상으로 각 지역마다 기후적 특성이 차이점이 있습니다. 남한만 보더라도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은 여름은 덥고 겨울에는 엄청난 한파가 몰아칩니다. 강원도 지방은 여름은 시원하고 겨울에는 서울보다도 더 춥습니다. 반대로 경상도는 대체적으로 여름에는 긴 무더위가 지속되지만 겨울에는 그리 춥지 않습니다. 제주도는 사계절의 문제와는 별개로 강한 바람이 일 년 내내 지속됩니다. 이런 다양한 기후적 특성을 갖은 땅에서 획일한 건축양식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제가 첫 글에서 서울의 한옥양식이 전라도 향교에서도 똑같이 보인다고 했던 것은 우리의 인식이 이런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담은 것입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각 지방에서 그 지역적 특성에 맞춰서 자신들만의 건축양식을 모두 개발해 왔습니다. 저는 앞으로 우리가 한옥 연구, 한옥건축을 할 때 서울에서 만들어진 한옥양식을 그대로 갖다가 전국에서 복붙 할 것이 아니라, 각 지역마다 그 땅에서 지어진 한옥들을 연구해서 그것들을 현대의 기술로 재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한옥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한옥이 지어질 때 쓰던 냉방 방식과 온돌을 이용한 난방 방식을 현대건축에 적용한다면 그렇게 지어진 집에서의 삶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우리의 손에는 200년 전에 비교해 눈부시게 발전한 기술이 있습니다. 그것을 각 지역의 한옥에 맞게 조금만 이용한다면 그 지역에서 만들어진 재료로, 그 지역의 기후에 맞춰서 지어진 한옥이 현대건축보다 훨씬 더 우리의 삶에 적합한 건축이 되지 않을까요? 

끝으로 부르고뉴의 작은 마을은 어떻게 옛 건축양식을 유지해왔는지 알려드리며 글을 맺겠습니다. 프랑스에는 CAUE (Conseil d'architecture, d'urbanisme, et d'environnement)이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건축, 도시, 환경 자문회'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조직은 프랑스의 각 Département(우리나라의 시, 군정도의 크기의 행정구역입니다.)에 하나씩 있는데 각 지부마다 몇 명의 건축가와 도시건축가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그 지역의 건축적 특성을 연구하고 그것을 현대에 상황에 맞게 보존하는 방법을 지방정부와 시민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부르고뉴에서 보았던 마을의 주민들이 옛날에 지은 추운 건물 그대로가 아닌, 기후적 환경적 특성을 담은 지역 건축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집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조직입니다. 1977년에 만들어진 기관인데 최근에 이들의 가장 큰 중점사안은 지역 건축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으로 적은 에너지를 쓰는 건축물로 전환시키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외관이나 주로 사용되는 재료들은 지켜 나가면서 말이죠. 이런 조직의 존재는 개인적으로 프랑스에게 가장 부러운 것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한국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에 가보면 관리는 안 돼있지만 완전히 쓸모없다고는 할 수 없는 전통건축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이 건축물들을 각각의 지역에서 연구해서 그 지방의 주거문화를 독립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건축물 그 자체뿐만이 아닙니다. 현재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도 그 지역의 건축문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지난 글에서 시도했던 것도 그런 방법론의 일환입니다. 저는 이런 방식으로 한옥문화를 되돌아보는 것이 한옥을 겉모습의 아름다움이 아닌 삶의 예술이 숨 쉬는 건축으로 되살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현재 한국에서도 이런 지역 건축과 한옥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이전보다는 더 주목받고 있고 2010년대 들어서는 그와 관련된 법들, 예를 들면 '한옥 등 건축 자산 법'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이와 연관되어 '지역 건축 기본계획'을 각 지자체마다 설립하여 운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2017년 새로 들어온 문재인 정부가 각 지자체에 좀 더 적극적인 지원을 할 수 있다면 이런 지역 건축의 발굴에 성과가 있기를 기대할 만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지역기반 건축문화의 발전과 옛 건축을 지키며 만들어 나가는 도시문화에 이제 첫발을 내디딘 셈이므로 인내심을 갖고 건축에 관심이 있는 여러분이 잘 지켜봐 주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특히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건축자산 진흥구역'의 설정과 관리는 꼭 해당 지역 주민이 아니더라도 이런 지역 건축문화의 발전을 위해 주시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건축자산 진흥구역'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도시의 한 구역이 공공적 가치가 있어 지켜져야 할 때 해당되는 건물 한 두 채를 문화재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지역을 함께 묶어서 그 공공적 가치를 극대화, 보편화시킬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의 제도입니다. 이것은 지역 건축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그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지역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현시키는 건축요소들을 찾게 되는 것이니 부분적으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하겠습니다. 혹시 본인의 거주지역이나 그 근처가 '건축자산 진흥구역'으로 설정되고 있다면 해당되는 건물이나 도시 지역을 한 번씩 눈여겨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 편에 걸친 한옥에 관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을 모두 읽으셨다면 느끼셨을 수도 있지만 제가 파리와 서울, 그리고 한국을 오가며 그곳의 건축들에 녹아있는 삶을 분석하는 일은 결국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 그리고 서서히 망가져 온 우리의 환경을 지속 가능한 건축을 통해 지켜 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친환경 건축에 대해 보다 본격적으로 다룰 기회가 있을 테니 이것에 관한 글도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다음 글은 이 주제와는 또 다른 주제를 향해 나아갈 것 같습니다. 아마도 '스마트 시티'에 관한 것이 될 것 같은데요, 그게 아니면 조금 특별한 인터뷰를 갖고 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P.S. 이전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참고 문헌 목록을 작성해서 다른 메거진에 올리고 있습니다. 밑에 링크를 참고해 주시고요, 한옥에 관한 글이 끝났으니 이 글과 함께 목록도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커버 사진 : 쿠슈 시 Commune de Couches / 사진 : ParisBouche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