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risBoucher Sep 13. 2017

시민, 스마트 시티의 유저가 되다.

스마트 시티 파헤치기 - 프롤로그

지난 대선 때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파파이스에 나와서 4차산업혁명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하면서 "4차산업혁명은 실업자를 양산하는 새로운 구조다."라고 하셨었습니다. 저도 그것이 도올 선생님다운 정리라고 생각했습니다. 4차산업혁명이란 것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무엇을 통해서 언제부터 다가오고 있는지 정확히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인공지능과 정보통신 기술의 향상이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미칠 영향은 우리 일자리를 빼앗어 가는 것이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이제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철수 당시 후보가 이야기했듯이 우리는 이미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요.

물론 인공지능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이 우리 사회에 가져올 영향이 실업자의 양상만 있는 것은 아니겠죠. 저는 이 글에서 그 기술들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보통신 기술이 인간의 삶의 터전을 변화시키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스마트 시티입니다. 스마트 시티는 이미 여러분의 곁에 와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확실히, 아주 보편적으로, 생활에 밀접한 방법으로 말이죠. 학자들이 정확히 개념 정리를 하기 전에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도시와 모든 환경은 스마트 시티로 변화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스마트 시티라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질문을 한다면 아마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확한 답변을 내리지는 못할 겁니다. 저처럼 그것을 연구한 사람들조차도 말이죠.

4차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스마트 시티는 우리 삶에 이미 충분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그것을 한마디로 딱 잘라서 설명해 내기는 어렵습니다. 스마트 시티의 영어 위키피디아 항목을 보면 그 정의 Definition에서 십 수명의 연구자들이 내린 정의를 나열해 놓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기술과 그 영향력이 현재 진행형으로 발전 중이고, 스마트 시티로 인해 생긴 사회현상에 대한 분석이 충분히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저 나름대로 스마트 시티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여러분께 설명을 드리고 이후 이 시리즈에서 각각의 디테일에 대해서 다루어 보겠습니다.




스마트 시티가 무엇인지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는 뭘까요? 아마도 그 단어 자체가 뭔가 깔끔하게 떨어지는 느낌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티라면 도시인데, 도시는 우리가 눈으로 보고 만지고 거기서 생활하는 공간인데, 그럼 스마트 시티는 어떤 공간을 말하는 걸까요? 한국에서는 스마트 시티라는 단어가 송도 국제도시를 건설하면서 많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스마트 시티는 송도 같은 빈 땅에 새로운 기술들을 접목해서 지은 건축물과 도시 기반 시설들을 부르는 이름일까요?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스마트 시티라는 게 정말 도시처럼 우리 눈에 보이는, 정의 내리기도 쉬운 것처럼 보입니다만, 스마트 시티라는 개념은 그런 단순한 건축물이나 건축방식과는 거리가 매우 멉니다. '스마트 + 시티'의 조어에서 방점을 찍어야 할 곳은 뒤의 시티가 아니라 앞의 스마트, 즉 정보, 지능, 기술, 편리 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형용사입니다. 그럼 그냥 인공지능이나 정보통신 기술과 스마트 시티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시티'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쉽게 드는데요, 스마트 시티에 들어있는 시티는 물질적인 도시, 건축물과 도로, 가로수, 지하철 등등의 도시 기반 시설이 얽혀 있는 것만을 상징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 모든 시설과 그것을 사용하는 도시민들이 모여서 작동하고 있는 거대한 사회적 기계를 아울러서 부르는 말이라고 해야 좀 더 정확합니다. 기차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물질적인 의미의 도시가 기차와 기찻길, 그리고 기차역이라면 스마트 시티의 도시는 '철도 네트워크'를 의미합니다. 기본적인 기반시설들을 갖고 전국을 연결해 놓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그에 따라 환승역, 중앙역, 일반역 등의 위계질서가 생기고, 항상 주시하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든 철도의 네트워크. 스마트 시티의 '시티'는 어떤 물질이 아니라 끊임없이 다양한 일들이 발생하는 배경으로서의 도시를 지칭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여기까지 이해하셨다면 스마트 시티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를 넘어갈 수 있으실 겁니다. 스마트 시티는 그 탄생이 정보통신 기술에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건물이나 도시 인프라에 추가적으로 붙어있는 센서나 기계들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송도의 예처럼 말이죠. 하지만 사실 스마트 시티는 그런 기술적인 부분들이 함께 작용해 도시라는 삶의 환경이 바뀌는 상황을 통틀어 칭하는 개념이라 보는 게 더 옳습니다. 


이쯤에서 스마트 시티를 도올 선생님 식으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스마트 시티는 '거주자'였던 시민이 '유저'가 되어 직접 도시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되는 도시입니다. 스마트 시티의 유저는 그 자체로 정치인입니다. 자신의 행동이 도시를 변화시키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유저는 나머지 기술적인 요소들을 숙지하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사거나 어플을 깔면서 배우는 정도만 알면 됩니다. 스마트 시티라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그 기술 그 자체 때문이 아닙니다. 스마트 시티의 유저들, 즉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이미 도시를 조금씩 직접 바꿔 나가고 있습니다. 


스마트 시티는 '거주자'였던 시민이 '유저'가 되어 직접 도시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되는 도시입니다. 스마트 시티의 유저는 그 자체로 정치인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이미 오랜 기간 동안 도시를 변화시켜 왔습니다. 기차의 발명 이후 전 세계에 철도 네트워크가 깔리면서 대부분의 도시들은 기차역을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물류량의 급격한 상승과 공장의 밀집은 도시의 규모를 엄청난 속도로 키웠습니다. 그리고 기차가 지하철이 되어 도시 내부의 곳곳을 연결하기 시작하면서 기초적인 상업지구들이 밀집된 주거 건축물과 섞여 역 근처에서 발전하게 되었죠. 하지만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상황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도시는 기차역 같은 거대한 규모의 교통 인프라에 집중될 필요 없이 꽤 넓은 범위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꼭 자가용의 보급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지만 서울의 신도시들을 생각해 보시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지하철이 들어오기 전 분당과 일산 같은 도시는 자가용의 보급이 없으면 만들어질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서울뿐 아니라 지구상의 대부분의 대도시들은 외곽에 자가용을 주로 이용해야만 하는 주변 도시들을 갖고 있습니다. 여전히 서울 외곽의 도시들에서는 자가용이 없으면 생활이 매우 불편합니다. 이런 현상은 미국 같은 나라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자동차의 전 국민적 보급이 없다면 우리가 미드에서 흔히 보는 잔디밭 딸린 개인주택의 주거문화와 도시문화는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기술의 발전이 도시에 가져온 변화들을 생각해 보면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정보통신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건축과 도시에 끼쳐왔고 끼치게 될 영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스마트 시티, 즉 정보통신 기술이 변화시킨 도시는 아직 즉각적으로 눈에 띄는 변화를 우리에게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마트 시티에는 기차역이 지어지지도 않고, 지하철역이 생겨서 집값이 올라가지도 않으며, 집 앞에 주차공간이 필요해지지도 않습니다. 물질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전혀 없어 보인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안투완 피콩 Antoine Picon이나 카를로 라티 Carlo Ratti 같은 스마트 시티를 연구하는 몇몇 유명한 학자들은 스마트 시티가 도시 경관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고 싶지만 어쨌건 현재로서는 틀리지 않은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도, 저도, 스마트 시티를 연구하는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변화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도시 정치 시스템의 변화입니다. 스마트 시티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스마트 시티가 개개인이 도시 정치에 참여하는 가능성의 문을 매우 크게 열어준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 메커니즘을 정치인들 뿐 아니라 스마트 시티의 유저인 우리 시민들이 파악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의 미래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스마트 시티 시대에서의 도시 건축은 유저의 동의가 없이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글, 아니 이 브런치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동기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전 세대에 비해서 건축과 도시에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꼭 정치인들과 건축가들이 자기들 맘대로 도시를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스마트 시티의 유저들은 도시를 이용함으로써 그 자체로 도시의 형성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격적으로 그 메커니즘을 구석구석 파헤쳐 보기 전에 이번 편에서는 대강의 구성을 알아보겠습니다. 스마트 시티 이전의 보통의 도시들이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톱-다운 방식입니다. 서울의 경우로 예를 들면 옛 사대문 안과 용산, 이촌 정도가 도시화되어 있던 것을 해방 이후 조금씩 개발을 하려고 하다가 한국 전쟁이 터져 도시의 상당 부분이 훼손됩니다. 그것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박정희라는 역사적 독재자를 만났고, 박정희와 그가 임명한 서울시장들은 1960년대에 이미 1990년대까지 발전될 서울의 로드맵을 모두 그려 놓습니다. 이 와중에 시민의 의견 따위는 전혀 반영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기업가들이 토지를 사들여 빌딩을 짓도록 하는 정도입니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며 서울이 어디까지 커질지, 그리고 도심은 어떻게 구획하고 변화시킬지에 대해서 정치인들이 몇몇 도시 건축가들과 함께 결정하고 그대로 쭉 건설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은 2000년대 와서도 그다지 바뀌지 않습니다. 시장과 몇몇 건설사 사장들이 서울 전역에 뉴타운을 만든다고 하면 실제로 이곳저곳에서 공사가 벌어집니다. 도시 개발에 있어 이런 톱다운 방식은 언제나 있어왔고 큰 틀에서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방식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스어로 도시는 폴리스입니다. 이 단어는 경찰 Police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도시라는 것은 구획과 면적, 경계와 소유, 밀집과 방어가 공존하는 본격적인 정치의 무대입니다. 이 무대의 주인공은 시민이 표로써 뽑아 놓은 정치인과 자본으로 무장하고 있는 기업가들입니다. 이 연극에 출연하려면 상당한 자본 혹은 권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스마트 시티에서는 건축과 도시의 경계와 거리의 개념이 이전과 조금 달라집니다. 네비를 이용해 차를 타보시면 이를 쉽게 느낄 수 있으실 텐데요, 이전에는 자동차로 이동을 하면 각 길들 간의 위계를 신경 써서, 여기서 무슨 대로나 고속도로 빠져서 어느 방면으로 나와서 그 동네에서 다시 길을 찾는 방식으로 이동을 했다면, 이제는 그냥 네비가 시키는 데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 문제는 네비는 길의 위계질서는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최단거리와 최소 소요시간을 계산해서 길을 알려준다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도시계획에서 대로의 중요성이 이전에 비해 상당히 낮아질 수 있습니다. 도시 내에서 높은 위계를 갖고 있던 중요한 도로들이 최소 소요시간의 계산법에서는 무시될 가능성이 생기는 거죠. 유저는 자신의 출발지점과 목적지를 네비에 입력해 이동하기만 했는데 대로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효과가 생깁니다. 유저 개개인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도시의 질서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그냥 정치인이 큰길을 내고 근처의 필지를 기업에 팔아 빌딩을 올리면 만들어졌던 대로가 어떤 관점에서는 자신의 위상을 잃게 됩니다. 물론 이 예는 좀 극단적으로 단편적이긴 합니다만 스마트 시티는 대충 이런 메커니즘으로 이미 도시를 조금씩 바꿔 나가고 있습니다. 한 명의 시민이 스마트 시티 유저가 된다는 것은 보다 능동적으로 도시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경우에 따라서 도시의 큰 틀은 이 과정에서 무시되기도 하고 더 중요시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도시를 바꿔 나간다는 것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본격적인 정치의 영역입니다. 각자의 욕망과 필요를 위해 피 터지게 싸우는 정치의 장에 평범한 도시민이 유유히 스마트폰을 들고 한 명의 유저가 되어 나타난 것이죠. 이것이 우리 사회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아직 여기에 답할 수 있을 정도로 도시를 변화시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 시티가 시민을 유저로 만들었고, 유저들은 도시 환경을 바꿀 수 있는 포텐셜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과 기성 건축가들이 갑작스러운 유저의 등장에 놀라거나 아예 그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것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 시티의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데도 상당히 많은 기술의 일상 속으로의 침투가 필요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이 과정에서 유비쿼터스니, 사물 인터넷이니 하는 다양한 어휘와 기술들을 만들어 냈지만 한국의 도시, 예를 들면 서울이 스마트 시티가 된다면 서울 시민의 생활이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도시 자체의 변화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이미 시작되어 버린 이 변화를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야 할까요? 도시민은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미 유저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시리즈를 통해 도시 정치의 무대에서 유저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예정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어디로 흐를지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다음 편에서는 시민이 유저로 변하려면 어떤 기술들이 필요한지, 스마트 시티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도시의 변화를 이끌어 낸 기술들이 뭔지 굵직굵직한 것들 위주로라도 알아보면 그 이후의 사회상의 변화도 좀 더 명확히 보일 것입니다. 스마트 시티를 인지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의 터전인 도시를 직접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를 훑어 본 후에 다른 나라의 도시들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우리는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커버 이미지 : 애플 지도 캡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