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risBoucher Aug 17. 2017

메르시의 탄생, 그리고 마레 지구의 변화

파리 메르시 건축가 발레리 마제라를 만나다 - 2

1편에서는 발레리의 건축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녀의 입을 통해서 생생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편에는 건축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메르시의 탄생과 그 영향에 대해서 발레리 마제라가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좋은 건축이라는 것은 결코 건축가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다시 깨닫게 됐습니다. 

메르시라는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컬렉트샵은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그런 프로젝트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그 성공요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발레리 마제라가 생각하는 메르시의 성공 이유에 대해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1편에서 계속)


(1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발레리 마제라는 메르시의 공사 막판에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모든 사람들과 나누었던 교감, 그리고 그들이 메르시라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공감했던 감정들이 오늘날까지도 메르시에 그대로 녹아있다고 했다.) 

그 느낌이 지금까지 계속된다는 것이지요.


네. 저는 그것에 대해선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떤 연결되는 것들이 있었고 그것도 굉장히 특별한 점 중 하나였어요. 이 즐거운 경험은 매우 비정형적인 것이었습니다. 저도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을 잘 짜 맞춰서 해야 하고 일하는 방식을 스탠더드 화 해야 하고 뭐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마법 같은 일들은 그런 방식의 작업에서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오직 비정형적인 일에서만 마법 같은 일들이 일어나죠. 

비정형적인 일은, 예를 들면 지금 저와 함께 아르헨티나의 패션 브랜드 uma 의 컨셉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는 알베르토 같은 사람과 일을 할 때 나타납니다. 그는 3주 간의 디자인 시간을 칼같이 지켜야 한다거나 하는 테크니컬한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를 아주 차갑게 대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항상 우리의 작업에 대한 큰 존중을 보여줬죠. 그의 그런 의도, 그리고 그것과 맺어가는 어떤 관계,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겁니다. 알베르토는 우리의 작업에 집중해 줬고 많은 것들을 공유했으며 그것을 통해서 좋은 프로젝트를 하고자 하는 의도와 노력을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우리의 작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고 그것이 지금과 같은 결과를 가져다줬죠. 이런 경험은 매우 특별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는 것은 아니죠. 어떤 프로젝트들은 살아있지 못합니다. 이런 특별한 경험 속에서만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고 좋은 프로젝트를 할 수 있죠. 저는 이런 것이 신체의 뉴런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한한, 아주 작은 커넥션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에너지가 그 프로젝트를 엄청나게 좋은 방향으로 이끌 때가 있습니다. 만약 건축주가 이런 특별한 경험에 열려 있지 않고 자신의 이익과 안전만을 생각한다면 건축가도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없죠.


마침 저도 메르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는데요, 메르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요. 메르시에서는 그 마법 같은 교류들이 어떻게 건축주와 건축가, 그리고 장인과 제작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졌었나요?


그건 정말 여러 사람들의 만남을 통한 것이었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었어요. 어쨌건 메르시의 부모 역할을 한 것은 마르-프랑스와 베르나르였는데요, 이들도 정말 비정형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때까지 많은 성공을 거뒀었지만 여전히 두려움이 없었죠.


새로운 분야에 자신을 투자하는데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이었군요.


두려움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프로젝트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일을 벌이든 그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었고, 우리의 작업에 함께 했으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죠. 그리고 베르나르는 그 현장에 투자를 했고 마리 프랑스는 컨셉에 자신을 투자했죠. 메르시 프로젝트의 작업 방식은 정말 특이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메르시를 만들 장소를 찾기 전에 먼저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건축가인 저를 찾아왔을 때는 이미 장소가 정해진 이후였지만 그때도 정확하게 규정되어 있는 것은 없었어요. 그들은 하나의 팀을 만들었고 그 장소에서 직접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그들은 그 팀을 신뢰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지불한 투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것은 굉장히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해보지 않은 방식이었죠. 


공사를 하는 업체들에게 견적서도 받지 않고 일을 진행했습니다. 그들은 하루에 몇 명의 인부가 필요한지, 얼마나 일을 할 건지 정도에 대해서만 알고 일을 했죠. 보통 건축주들은 이런 위험을 갖고 현장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베르나르와 마리-프랑스는 우리에게 강한 신뢰를 보였고 우리 팀은 거의 모두가 그곳에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들이 계약을 마친 후 9월부터 작업을 시작했었는데요, 9년 전 일입니다. 우리는 그 장소에 함께 모였고 공간에 대한 어떤 스터디도 진행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작업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제가 현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거기에 모든 장인, 제작자 팀들이 모여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옆에는 주거 소품과 가구 판매를 맡은 다니엘 같은 전혀 다른 주제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의류 판매 팀은 그 와중에 다양한 컬렉션을 만들기 시작했었죠. 우리는 모두 함께 매일 같이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 현장은 마치 우리 모두의 집 같았죠. 저는 거기서 직접 설계를 해서 도면을 그렸고, 베르나르와 마리-프랑스도 거기에 함께 있었으며 건설 인부들도 함께 있었죠. 어떤 때는 갑자기 좀 큰 규모의 작업을 해야 할 상황이 있었고 그럴 땐 건설 기사가 호출되어서 즉석에서 구조 계산을 했죠. 

그러니까 우리는 100% ‘만듦’에 있었던 겁니다. 리스크로부터 자신들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견적서나 견적서에 대한 답변서 같은 과정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이 프로젝트를 완성할 생각만 했었습니다. 이런 작업은 하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한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었죠. 우리는 모두 메르시에 관한 일에만 집중했었고 그렇게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일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까 말한 것처럼 그곳에는 작업자들과 제작자들이 건축가와 상존했고, 현장 진행 과정 내내 많은 교류를 이루어 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업지시를 주먹구구 식으로 내린 적은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도면을 갖고 작업을 했고, 도면을 통한 교류를 통해 필요한 주제에 대해서만 대화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메르시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이런 경험이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과의 대화, 그리고 거기서 생긴 교류들… 우리는 서로에게 있어서 반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일에 책임을 갖고 일을 했죠.


이 프로젝트는 정말, 저에게 있어서는 마치 제 집을 만들 듯이 일했던 프로젝트입니다. 그리고 그 교류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메르시는 생활용품, 가구, 옷, 책 등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제품들을 파는 장소입니다. 여기에는 각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일을 하고 있지요. 발레리는 이들이 메르시라는 장소를 만드는 공사현장에서부터, 그 장소가 만들어지는 그 순간에서부터 함께 일을 해왔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과의 교감에서부터 메르시라는 멋진 공간이 탄생했다고요. 사진 출처 : Valerie Mazerat 웹사이트



정말 그래요. 모두가 이 역사에 완전히 들어와 있었죠. 오픈일 전날 밤 작업을 마쳤을 때, 물론 아직도 수만 가지 작업이 남아 있었지만, 그날 저는 직접 램프를 설치하고 있었고, 판매직 직원들도 모두 와서 설치 작업들을 도와주고 있었어요. 그들은 오픈일 이틀 전부터 밤낮없이 돕고 있었죠. 예를 들면 지금은 메죵 카테고리의 책임자인 헤지스 같은 경우에는, 당시에는 지하의 공구 잡화를 다루고 있었는데요, 그도 당시에 거기서 어떤 특별한 모험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느꼈고 거기에 참여했었죠. 거기에는 인테리어 잡지 마리 클레르 메죵 Marie Claire Maison 의 기자처럼 외부 사람도 와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 모험에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마리-프랑스와 베르나르는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에너지를 배출시키도록 하죠. 어떤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고, 모두와 잘 지내지만 일을 할 때 항상 겁을 먹고 보수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전혀 다르죠. 이건 그들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에너지를 배출시키도록 하는 능력이죠. 그들은 우리가 이런 작업에서 우리의 에너지를 모두 개방시켜서 모두 함께 그 작업에 힘을 쏟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함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죠. 

우리는 이 장소를 이렇게 만들려고 계획을 세워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지금 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메르시 입구 안뜰의 자동차 앞에서 사진을 찍잖아요. 저는 그걸 보면 정말 재미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정말 그렇게 될 거란 상상도 못 하였거든요. 그건 정말 개인적인 것이었는데요, 처음에는 제 자동차(발레리는 르노가 1940년대에 처음으로 백만 대 이상 생산한 자동차인 4CV를 타고 다닙니다.)가 거기에 항상 서 있었죠. 그리고 아를 Arles에서 있었던 어떤 전시회에서 피아트 500이 있는 걸 봤었어요. 그런데 메르시 오픈일 전에 언론사에 사진을 보내야 하는데 우리는 정말 준비가 안 돼있었어요. 작업을 오픈일 당일 새벽에 되서나 맞췄으니까 당연한 일이었죠. 오픈 일주일 전만 해도 매장 오픈은 불가능한 것 같았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사진 대신 그림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아를의 피아트 500 설치 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요. 클레망 Clément이 그림을 잘 그리니까 그가 그걸 그림을 그렸고, 메르시 입구에 피아트 500을 그려 보낸 거죠. 그전까지는 거기다 자동차를 전시할 생각엔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자동차가 메르시의 심볼이 되어버렸죠.


자동차 아이디어가 그렇게 탄생한 거군요!


네 우리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이죠. 처음에는 제 자동차가 그 안뜰에 있었고, 아를의 전시회 사진을 보고, 아 이 아를의 피아트 지붕에 이삿짐들이 마구 매달려 있었어요. 우리는 거기서 갑작스레 영감을 얻어서 언론에 보낼 이미지를 만들어 낸 거죠.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전 지금은 그 당시 누가 이 아이디어를 냈는지도 사실 기억이 안 나요. 우리는 사진 대신 그림을 보내기로 했고, 그냥 공간 그림만 보내기 좀 그러니까 거기다 자동차를 함께 그린 거죠. 그리고 우리는 그 그림을 따라서 자동차를 설치했고, 정말 그림처럼요. 그리고 이제는 그 자동차가 메르시의 마스코트가 되었죠.


제 생각엔 그건 메르시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인 것 같아요. 메르시 실내 디자인 그 자체도 물론 흥미롭지만, 바로 이 이미지, 세계를 돌아다니고 이 자동차 이미지를 통해서 메르시가 마레 지구의 한 콜렉트샵이 아닌 전 세계적인 공간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마법이라고 부르는 부분은, ‘세렌디피티 Serendipity’라는 개념 있죠. 세렌디피티. 무언가를 하려고 했는데,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 뭐 그런 거죠. 하지만 건축가가 그 공간을 통해서 다시 그 세렌디피티를 구체화시키지 않으면, 뭐 그건 그냥 그렇게 날아가는 거죠. 

이 자동차가 저에겐 그런 것 같아요. 자동차가 있기까지 다양한 일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마케팅 회의를 통해서 어떤 차를 설치할까, 어떻게 놓을까, 이런 걸 정한 게 아니에요. '자 우리 메르시의 마케팅을 위해 피아트 500을 거기다 설치해서 메르시의 심볼로 만들자', 이런 생각을 한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건 그저 이런 우연들이, 다양한 사람들 사이의 연결과 관계 맺음을 통해서 이렇게 나타난 거고, 우리는 그걸 구현시켰고 그게 메르시의 심볼이 된 거죠.


자동차의 이미지는 전 세계에 메르시를 알렸지만, 메르시는 동시에 마레지구에 잘 자리 잡고 있는 하나의 상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메르시와 함께 마레지구가 변화하기도 했을 텐데요, 메르시가 생기기 전에 비해서 말이죠. 이것에 관해서도 듣고 싶네요.


우리가 여기에 처음 도착했을 때, 그러니까 처음으로 이 장소를 방문했을 때, 지금과는 정말 달랐어요. 우리는 보막쉐 대로 Boulevard Beaumarchais가 마레지구에 속해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었죠. 당시에 마레지구는 보막쉐 대로 뒤쪽을 뜻했어요. 


브르타뉴 길 Rue de Bretagne 튜렌 길 Rue de Turenne, 그쪽이 마레지구였죠. 그게 다였어요. 그리고 대로는, 이 대로도 특이한 점이 있는데요,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는 상점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했었죠. 절대로요. 왜냐면 보막쉐 대로는 차가 많은 거리고, 대로 양단으로 주차장이 있으니까요. 그곳에 있는 대부분의 상점들은 카메라 용품점이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대로는 바스티유 광장과 레퓨블리크 광장을 잇는 거리인데요, 집회 시위가 끊이지 않는 곳이죠. 그래서 이 대로에는 정말 생기가 없었어요. 우리가 여기에 상점을 여는 것은 엄청난 도박이었죠. 이 장소가 시장에 나왔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방문했어요. 아마 큰 브랜드나 큰 회사들은 대부분 한 번씩 들렸을 거예요. 하지만 아무도 이 곳을 계약하지 않았죠. 왜냐면 일단 이 동네와 이 장소가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고, 그 장소 자체도 굉장히 닫혀있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죠. 내부에 차고가 있었고 뒤쪽 공간은 열려 있지 않고 지금처럼 창문도 없어 꽉 막힌 공간이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막쉐 대로에 상점을 열지 말라는 관념이 있었죠. 모두가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이런 고정관념들에게서 자유롭게 이 장소를 바라봤고, 우리 팀은 모두 이 곳에는 무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좀 이상했던 거 같아요. 그 누구도 ‘여기서 어떻게 상점을 하지’, ‘어떻게 허가를 받아야 하지’ 이런 걱정은 아무도 안 했었어요. 그리고 보막쉐 대로에 관해서는, 우리는 괜찮다고 생각했죠. 마레 지구가 근처에 있었고, 우리가 좋은 장소를 만든다면 충분히 마레 지구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죠. 마레 지구에 포함된 무언가를 한다기보다는, 메르시 그 자체로 독립적인 상점을 만들려고 생각했었죠. 주차에 대해서는, 이 상점이 흥미롭다면 사람들이 어딘가에 주차를 하고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죠. 파리에서는 어디서든 그러니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이 장소를 만들었을 때, 이 동네 전체가 변했어요.

메르시 파사드. 왼쪽 111 boulevard Beaumarchais라고 써져 있는 곳은 시네마 카페, 오른쪽의 Merci라고 쓰여 있는 곳은 Used book café다. 매장 입구는 111이라고 쓰여 있는 작은 건물 입구를 지나 안뜰에 도달해서야 찾을 수 있다. Boulevard Beaumarchais의 다양한 문제점뿐 아니라 이 장소의 공간적 복잡성 때문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싼 값을 치르고 계약하기를 꺼렸다. 사진 : Merci


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구청장의 관심사이기도 했어요. 그는 즉각적으로 이 변화를 알아차렸죠. 마레지구는 금세 이쪽까지 확장되었고 보막쉐 대로에는 집중적으로 개발이 이러나기 시작했어요. 자동차가 많고 뭐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어요. 파리지앵들은 사실 그렇게 많이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5구사람은 5구에서, 6구사람은 6구에서, 대부분 자기 동네에서 활동을 하죠. 마레지구 사람들도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 않아요. 그런데 메르시가 생기고 이 동네에 파리 곳곳의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차로 왔고, 어떤 사람은 기사를 대동하고 왔어요. 이 장소가 하나의 목적지가 된 거죠. 파리가 런던처럼 큰 도시는 아니지만, 파리 사람들이 그만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눈에 보였던 거예요. 그 점이 이 동네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놨죠. 그리고 구청도 거기에 따라 움직였어요. 예를 들면 메르시 앞은 이전에는 주차장이 있었어요. 지금은 자전거 거치대로 바뀌었죠. 우리의 요구사항을 구청이 들어준 거죠. 자동차 주차공간보다는 훨씬 낫죠. 구청장은 이 프로젝트가 이 동네에 가져올 변화를 캐치한 거죠. 

그리고 그 이후에는 완전히 바뀌었죠. 지금은 보세요. 메죵 플리쏭 Maison Plisson같은 멋진 식료품점도 생겼죠. 이제는 여기가 마레 지구의 중심축이 되었어요. 마레의 시작점이 되었죠. 그 이전에도 마레지구 사람들은 이 쪽을 아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창조적 에너지가 넘치는 곳은 아니었어요. 완전히 다른 곳이었죠.


3편에서 계속됩니다.






이번 편은 제가 해설 주석을 달고 싶은 욕구가 있었지만 인터뷰 그대로를 읽기 쉽게만 조금 편집해서 싣습니다. 처음에는 잘 이해 안 되는 부분을 발레리가 계속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건축관과 메르시 같은 상점이 하나의 동네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파고들어볼 만한 주제입니다. 3편에서는 제가 직접 이 지점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다루어 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커버 사진 : 인스타그램 캡처


작가 메일 주소 : ddesiree6779@gmail.com


P.S. 이번 편에 쓰인 사진 중 발레리 마제라의 홈페이지 http://www.valeriemazerat.com/  에서 가져온 것은 작가가 확실치 않습니다. 이에 발레리와 작업하는 모든 사진작가의 이름을 첨부합니다.

Emmanuel Barbe / Ricardo Labougle / Mad Morgensen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 메르시 건축가, 발레리 마제라를 만나다 -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