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akfast, Lunch & Dinner> 리뷰
먹방을 좋아하는가? 먹방에도 나름에 장르가 있는 듯하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먹방은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여행하면서 음식과 다양한 그 지역 이야기를 하는 먹방(맛 기행)이다.
몇 달 전에 넷플릭스를 구독하고 뭐하나 진득하니 완결 내는 것이 없고 중간에 보다 말다 결국 아무것도 안 보게 되어 구독취소를 했었다. 하지만 최근에 흥미가 가는 몇 개의 드라마가 나왔다 하여 다시 구독을 시작하고 본건 다름 아닌 이 TV Show다. 어쩌면 지금 같은 COVID 상황에 여행과 음식이 가장 관심 가는 테마여서 싶기도 하고 사실 구독을 취소했었을 때도 보다만 이 프로가 생각이 났었다.
4편으로 구성된 짧은 쇼지만 David Chang이라는 한국계 미국인 셰프가 네 명의 다른 미국 셀럽과 함께 전혀 다른 장소로 여행을 가서 밥을 먹고 대본 없이 이야기 나누는 TV 쇼다.
여행지를 고르고 그 고르는 방식과 그 장소를 좋아하는 이유, 호스트와 게스트와의 관계 그리고 지역 사람들과의 교류 그리고 지루하지 않은 편집 때문일까 매화가 맛이 다르고 간이 맞았다.
여행
모든 시작은 같이 여행하는 순간부터다. 1화처럼 누군가의 고향을 함께 방문해 한 사람을 더 알아가며 도시를 여행하고. 2화처럼 여러 번 여행 와본 곳이지만 한 번도 깊이 있게 여행해보지 못한 곳. 흔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도 내 safety zone을 벗어나면 전혀 낯설고 신선함이 가득한 도시가 된다. 3화가 그렇다. 마지막화는 우리의 편견이 서있지 않는, 게스트에게 편견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곳,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다. 매화가 이렇듯 다른 이유로 정해진 여행지여서 그런지 색깔, 감성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고 느꼈다. 집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이걸 보고 있자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도 내가 가보지 못한 식당이나 동네를 가게 된다면 그것도 해외로 떠나는 여행만큼이나 설레고 두려운 여행을 해야겠구나 싶었다. 아 물론 다시 자유롭게 세계를 여행하게 된다면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노트 한편에 적으면서 말이다. 지금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연결되어 있어서 이런 펜데믹에 취약하지만, 과거 이런 영상이나 경험들을 돌이켜 볼 때 그만큼 우리는 꽤나 풍족한 여행 옵션을 가진 시기에 살아가고 있었구나를 새삼 느꼈다.
음식
음식은 때로 그곳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맛보게 해 준다. 첫 번째 화에서 나오는 밴쿠버는 많은 아시아인들의 이주로 서양과 동양의 음식들이 공존하고, 2화에 모로코의 마라카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문화에 스며든 음식들이 있고, 3화의 캘리포니아는 파면 팔수록 계속 나오는 맛집의 보물창고처럼 말한다 ㅎㅎ. 마지막화의 캄보디아 폼펜은 음식의 역사가 전쟁 전, 전쟁 중과 전쟁 후로 나뉜다고 한다. 이 쇼에 음식의 비중이 비교적 작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들이 하는 대화와 행선지는 모두 음식에서 출발하고 대부분의 대화는 밥상에서 혹은 음식을 앞에 두고 이루어진다. 음식이 곧 여행의 원동력이며 누군가에게는 여행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음식으로 시작한 대화 주제는 음식과 그 지역의 과거, 현재를 보여주고 보이지 않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지 기대하도록 맛보게도 해준다.
대화
이 쇼에 나오는 호스트와 게스트들은 나도 사실 잘 모르는 연예인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꼭 관심이 없어도 편안한 분위기에 게스트와 호스트 사이에 깊은 친분과 유머, 존중, 그리고 배려 그 어디쯤에서인가 계속 흘러나오는 대화는 그들이 누구인지 딱히 궁금하지 않게 만들었다.
가장 재미있는 편을 뽑으라고 한다면 마지막 Kate Mckinnon이 나오는 화다. 이유는 단순히 게스트가 너무 매력적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개그우먼 장도연 혹은 안영미 같이 '뼈그맨'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이 리뷰를 쓰는데 결정적으로 많은 영감을 주게 만들었다. 그녀는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음식이 아닌 대화라고 말한다. 매화마다 지역 사람들과의 대화에 편견이 깨지고 자신들이 먹는 음식 그리고 그 여행 자체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단순히 스튜디오에서 할 수 있는 토크쇼를 굳이 여행해서 하는 이유, 그건 어쩌면 조금은 낯선 곳에서 편한 사람과 있는 시간에 비로소 발생하는 대화를 우리가 들여다볼 수 있어서 그 안에서 우리는 공감 또는 이질적이고 신선함을 때로 발견한다 우리가 여행할 때 느끼는 감정들을. 이 쇼는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인류가 총, 균, 쇠로 인해 문명의 차이가 생기고 발전의 불평등이 생겨 인류를 이끌었다면 반대로 여행, 음식, 대화는 그런 서로 다른 문명을 이어주고 더욱 풍성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음식이란 건 지리학적인 영향을 많이 받기에 여행을 통해 새로운 음식을 접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낯선 이들과 대화하며 그곳을 알아가고 새로운 것들을 맛본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 안에 작은 문명을 담는다. 그리고 자신이 떠난 자리로 다시 갔을 때 그것들을 우리는 조금씩 흘리고 섞어가며 문명은 그렇게 진화한다.
4부짜리 TV Show에 꽤나 거창한 리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지금 상황에 저런 여행, 음식, 그리고 대화가 가장 그리워서 생각이 많아진 것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