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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최집사 Jun 28. 2023

2. 눈물

유자는 세상에 너 하나 뿐이라

유자가 떠나고 난 후, 나의 슬픔을 아는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건넨 위로의 말은 "유자는 천국으로 가서 이제 아프지 않을 거야."였다. 그리고 종종 그 뒤에는 이런 말이 붙었다. "라떼랑 율무가 있잖아."

맞다. 우리에겐 아직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고, 그 사실이 위안이 된 건 맞다. 울다가도 남은 두 녀석의 귀여운 몸짓에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라떼는 라떼고 율무는 율무다. 유자는 그 어떤 고양이로도 대신할 수 없다.




사람도 한 배에서 나온 형제가 성격이 제각각인 걸 볼 때 신기함을 느끼듯,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똑같이 라떼의 배에서 나온 율무와 유자는 성격이 극단적으로 반대다. 율무는 이름처럼 둥글둥글, 겁은 많지만 공격성은 제로다. 덩치는 산만한 게 벌써 7년을 같이 산 아빠 앞에서는 여전히 쭈구리가 된다. 안고 발톱을 깎을 때도 세상 얌전하고, 빗질을 좋아하며, 맹-한 매력이 있는 고양이. 

이에 비해 유자는 새침떼기 고양이의 표본이다. 사실 투병을 하기 전까지는 집사들도 범접 불가 한 까칠 도도 고양이었는데, 투병을 하면서 집사에게 많이 의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면 집사에게도 발톱을 세우고 하악질을 하는 등 (율무에게는 거의 습관처럼 하악질을 했다ㅋ) 호불호가 확실한 고양이다. 겁이 많고 경계심이 강한 편이지만 율무와 비교했을 때 호기심도 훨씬 많고 전투적이다. (아마 유자는 스스로를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런 유자였기에, 유자가 내 손길에 골골송을 부르고 배를 까뒤집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유자는 밀당의 고수였다고나 할까. 집사를 쥐락펴락 할 줄 아는 고양이었다.


남매가 어쩜 그리 다른지


유자는 세 고양이 중 가장 덩치가 작았다. 회복하고 잘 먹을 때는 5키로그램이 넘었지만, 타고 나기를 얼굴이 작고 늘씬해서 7살이 다 되어가는 와중에도 아기고양이 같은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행동 하나하나가 앙증맞고 귀여웠다. 그 작은 녀석 하나 사라진 자리는 온 우주가 텅 빈 것 처럼 컸다. 덩치가 큰 고양이 둘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지만 유자의 빈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라떼는 유자가 아니다. 율무도 유자가 아니다. 우리가 라떼와 율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라떼와 율무가 얼마나 예쁜지와 별개로, 유자는 세상에 하나뿐인 고양이라. 오히려 때로는 라떼를 보면서 꼭 닮은 유자 얼굴을 떠올리고 눈물이 났고, 율무를 보면서 냥냥펀치를 날리던 유자의 앙증맞은 손방망이가 생각나 눈물이 났다.


다 커도 아가같았던 유자 :)


유자를 떠나보내기 전에는 막연하게 이런 생각도 했었다. 언젠가 유자가 라떼와 율무보다 먼저 떠날거라는 걸 알기에, 라떼와 율무와의 이별은 조금 더 쉽지 않을까. 한번 경험 하고 나면 그 다음은 더 쉬울거라 생각한 것이다.

우스운 생각이었다. 이별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아 내는 일인지 경험하고 난 후, 언젠가 다가올 라떼, 율무와의 이별이 더욱 두려워졌다. 이 아픔을 두 번 더 겪어야 하다니. 닥치지도 않은 이별이 두려워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이 아픔을 미리 알았더라면,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을거라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사랑해 우리 라떼 율무 :)


하지만 오늘도 나에게 애교섞인 목소리로 대답해주는 라떼를 보고 있자면, 내 빗질에 배를 까뒤집으며 좋아하는 율무를 보고 있자면, 너희들을 만난 건 세상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말하는 나를 발견한다. 라떼는 유자가 아니만. 율무도 유자가 아니지만. 라떼는 라떼라서, 율무는 율무라서 나는 여전히 행복하다. 

 




유자와의 추억, 펫로스에 대한 이야기. <떠난 자리에 남은 것>

매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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