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너를 기억해
인간 넷과 고양이 셋. 7년에 가까운 긴 시간동안 우린 일곱 식구였다. 나와 동생이 서울로 올라가 생활하면서, 인간 둘과 고양이 셋. 다섯 식구가 주로 살게 되면서, 인간보다 고양이가 많은, 인간의 물건보다 고양이의 물건이 더 많은 그런 가족이었다. 유자가 떠나면서 인간 둘과 고양이 둘. 균형이 맞춰졌다. 두 명의 인간과 두 마리의 고양이, 그리고 타지에 살고 있지만 가족인 두 명의 인간까지, 유자를 그리워하는 가족들이다.
가족이란 무얼까. 고양이를 키우면서 정말 많이 생각하게 되는 질문 중 하나다. 예전엔 자연스럽게 "고양이를 키워요"라고 말했는데, 요새는 그 말이 세상 어색하고 이상하다. 키운다고? 물론 우리가 라떼 율무 유자의 밥을 주고 화장실을 치워주고 놀아주고 하지만, 정말 우리가 고양이들을 키우는 걸까. 오히려 고양이들이 우리를 키운 순간들이 더 많았다. 지금은 "저희 집엔 고양이가 둘이나 있어요. 원래는 셋이었어요." 혹은 "고양이랑 같이 살아요."라는 말이 더 편하다. 고양이와 같이 산다. 같이 살면 그게 가족일까.
사람마다 가족의 정의는 생각하기 나름일 수도 있다. 네이버에 '가족'을 쳐보면,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라는 엄청난 정의가 등장한다. 변화하는 사회에 정말 맞지 않는 정의랄까. 남보다도 못한 부부가 얼마나 많고, 부모 자식간에도 연을 끊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남편보다 가까운 반려동물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정의가 어떻든 간에 우리 사람 넷과 고양이 셋은 누가 뭐래도 가족이다. 혹자는 고양이가 무슨 가족이냐고 말 했지만, 고양이가 죽었다고 출근을 못 하는 게 말이 되냐고 했지만. 누가 뭐래도 우린 가족이었다. 어느 아름다운 하루를 함께 나누고 기억하는 사이는 가족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생활의 추억을 함께 나눈 관계는 가까운 사이 그 이상이다. 같이 숨을 쉬며 시간을 보낸 생명체들 사이에는 같은 호흡과 같은 추억, 같은 삶이 새겨진다. 나는 그걸 가족이라고 믿기 때문에, 고양이인 라떼 율무 유자는 우리의 가족이다.
그래서 유자가 떠난 아픔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일곱에서 여섯이 된 기분은 형용할 수 없는 상실감이었다. 고양이들과 우리가 가족이라고 오랜시간 생각해 오기는 했지만, 유자를 잃으면서 그 사실을 제대로 확인 한 것 같다.
유자가 떠나고, 가족을 잃은 여섯의 가족 구성원들은 더 진한 가족이 되었다. 유자라는, 공통의 추억이 더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자를 그리워하고 유자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웃고 함께 운다. 사람 뿐 아니라 고양이들도 마찬가지다. 네 명의 사람과 두 마리의 고양이. 우리는 모두, 유자를 가슴에 묻고 살아가고 있다.
유자가 떠나고 남은 이 가족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며 살아갈까. 두렵고 겁나지만, 기대와 환의도 가득하다.
유자와의 추억, 펫로스에 대한 이야기. <떠난 자리에 남은 것>
매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