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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최집사 Apr 12. 2024

떠나요, 홀로

나홀로 교토여행기 01

갑자기 교토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한건 2월의 어느날이었다. 일본행 항공권이 특가로 떴고, 이전에 오사카에 갔을 때 교토를 돌아보지 못 했던게 아쉬웠으며, 작업에 매몰되어 하루도 편할 날이 없던 순간에 충동적으로(라고 썼지만 사실 한 이틀간 고민했다. 가야겠다, 아니다, 역시 가야겠다. 수백 번을 왔다갔다 했다. 그러나 어쨌든 내 기준 이틀 고민하고 무려 항공권을 예매한 건 충동이라고 말할 수 밖에.) 항공권을 예매해버렸다.


이쯤이면 쇼케이스 준비중인 작업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됐을 테고(끝이란 없지만), 6월에 본격적으로 연습 들어가기 전에 한 번 쉬어가야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거의 살고자하는 의지가 피어올랐기에 항공권을 예매해버렸다. 충동적으로 저지르긴 했지만 며칠이 지나면 ‘역시나 안 가는 게 좋겠어’같은 소리를 할 나를 너무 잘 알았다. 그러나 고맙게도, 항공권을 예매할 당시 이미 여행일이 2개월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이라 취소하려면 7만원 정도의 위약금을 내야 했다. 이제 7만원이 아까워서라도 여행을 가야만 하는 것이다. 예상대로 항공권을 예약하고 일주일 쯤 지나니까 ‘역시 굳이 혼자서 일본까지 가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의 항공권의 1/3 가격에 해당하는 위약금 때문에 나는 포기하고 말았다. 이렇게 강제로라도 나는 떠나야했다.


나는 떠나야 했다. 여행을 위한 핑계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살기 위한 선택이라고 말 할 만큼 간절했다. 1년 6개월 짜리 프로젝트에 매몰되어있었고, 지난 겨울부터 제대로 쉬어본 기억이 없다. 물론 그러한 몰입의 시간 또한 창작의 즐거움이지만, 잠깐이라도 벗어나는 것 역시 지속 가능한 작업을 위한 결정이었다. 9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기나긴 신혼여행을 끝으로, 4월 벚꽃이 져가는 지금 이 순간까지 나는 단 하루도 작품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책상 앞에 앉아있지 않는 날에도, 누군가와 수다를 떠는 날에도, 심지어 잠을 자면서 까지도 내 머리는 온통 작품 생각으로 가득했다. 


외로움은 내가 정말 싫어하는 부정적인 감정 중 하나이지만, 애석하게도 창작자에게는 때론 이 부정적인 감정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듯 한, 그 괴로우면서도 자유로운, 좋으면서 긴장되는 기분 속에서만 오롯이 나와 대면할 수 있기 때문에. 물론 교토는 한국인에게 유명한 관광지고, 가면 한국인들이 넘쳐나겠지만, 나는 그 누구와도 동행하지 않고 낯선 땅에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교토에서 보낼 일주일간 몇가지 규칙도 정했다.

쓰고싶을 때 쓰고, 놀고 싶을 때 놀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정해진 관광지를 돌기보다 가고 싶은 곳을 가리라고. 단, 생계를 위한 작업은 일체 하지 않겠다고. 지금 준비중인 작품 수정은 하지 않겠다고.


그리하여 앞으로 일주일간은, 교토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적어 올릴 예정이다.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후기글처럼 쓰기도 하고, 가끔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 일기도 쓰며.


나 홀로 교토여행 시작!


**<아내라서 불행하지 않도록>은 교토여행기와 무관하게  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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