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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미 Mar 06. 2020

티나 웨이머스와 노이즈 캔슬링

여성 베이시스트 '티나 웨이머스'가 남성 중심적 락 씬을 마주했던 태도

1970년대의 락 씬은 예술적인 전쟁터였다. 1966년 비틀즈가 모든 공연을 중단하고 영국 음악을 모방한 미국 밴드가 대거 등장하면서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은 완전히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롤링스톤즈의 명반 행렬을 시작으로 2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부활을 알렸다. 레드 제플린, 딥 퍼플과 같은 하드락 밴드와 핑크 플로이드, 예스와 같은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들이 치열하게 활동하면서 1970년대를 락의 전성기로 물들였다.
 
하위 장르의 부흥 기반이 견고할수록 그와 관련된 스타일이나 문화는 뿌리 깊게 형성되려 한다. 그것이 락에 있어서는 씬의 문화나 분위기가 남성 중심적으로 흘러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버트 월서는 1993년에 출간한 논문에서 '뮤지션과 청중의 능동적인 참여와 주도면밀한 전략에 의해 락, 특히 하드락이 남성적인 것으로 만들어졌으며 락의 노래, 가사, 음악적인 부호 분석을 통해 여성 혐오나 여성 배제와 같은 전략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롤링스톤즈의 'Stupid girl', 'Under my thumb', 'Satisfaction'의 가사가 그에 대한 극단적인 예이다.


롤링스톤즈의 가사만큼이나 여성에게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락 씬이었다. 그럼에도 그 위협적인 씬에 남성만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남성적인 스타일의 여성 라커만 존재했던 것도 아니었다.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베이시스트 ‘티나 웨이머스(Tina Weymouth)’는 락 씬에서 들리는 차별적인 소음을 상쇄하고 자신만의 락 스타일을 개척한 ‘펑크 정신’, 그 자체였다.


토킹 헤즈의 후기 완전체 (왼쪽부터 티나, 크리스, 데이비드 그리고 메인 기타리스트 제리 해리슨(Jerry Harrison)


영국의 야수 같은 밴드들이 미국에서 활개를 치는 동안, 1975년 뉴욕에서 ‘뉴 웨이브’라는 급진적인 흐름을 타고 탄생한 밴드가 바로 토킹 헤즈다. ‘티나’는 밴드의 창립 과정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산증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창립 멤버라고 단언하기엔 무리가 있다. 정식 창립 멤버는 밴드의 프런트맨이자 보컬인 '데이비드 번(David Byrne)과 드러머이자 '티나'의 남자 친구인 '크리스 프란츠(Chris Frantz)'다. '티나'는 그들이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하러 뉴욕으로 이사할 때 따라와 로드 매니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었다.


두 멤버가 뉴욕에서 베이시스트를  영입하려 했지만 결국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의 위기를 본인의 기회로 삼았다. 그렇게 그녀가 베이시스트를 자처하면서 토킹 헤즈의 초기 완전체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은 더할 나위 없었다. 성공적이었던 데뷔곡 ‘사이코 킬러(Phycho Killer)’의 핵심인 베이스 리프를 들어보면 알 수 있듯 그녀는 본인의 몫 이상을 해내고 있었다. 그녀가 베이스를 처음 잡은 지 5개월 만에 무대를 서야 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데이비드는 ‘티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활동 중에도 데이비드는 베이시스트로서 그녀의 적격성을 의심해 오디션을 세 번이나 더 보게 했다. '여성의 역할이 자리하기엔 락 씬이 너무 위험하다'는 데이비드의 항변을 그녀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시대적인 선입견에 동요되었던 것은 데이비드뿐만이 아니었다. 밴드 초창기 시절 여성이 락 무대에 서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그녀만 쳐다보았다고 한다. 여성이 락을 한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그렇기에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달지 않고 그녀를 아티스트로서 평가하는 평론가는 거의 없었다. 또한 그녀가 받는 질문이 온통 데이비드의 천재성과 관련되었다는 점은 그녀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했다. 락 씬에서 입김 좀 쌔다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남자 친구 따라 운 좋게 대형 밴드에서 연주하는 여성 베이시스트’ 정도이지 않았을까. 이러한 비극적인 시선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인상적인 태도로 이러한 선입견을 마주한다. 일단 여러 인터뷰에서 페미니즘, 여성, 성차별 등과 관련된 질문의 부적절함을 호소해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예술가임을 강조한다. 성별의 관계 없이 아티스트 그 자체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인터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러한 태도는 성차별적 이슈에 무관심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 ‘토킹 헤즈’ 시절에 그녀가 락 씬에서 느끼는 성차별적인 문제에 대해 말을 아꼈다는 사실과 직결되기도 한다. 과연 그녀는 부당한 상황들을 감내했던 것인지, 외면했던 것인지 혹은 오히려 직면하려 했던 것인지, 우리는 이 지점에서 나름의 저울질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Girl in a Band: Tales from the Rock 'n' Roll Front Line(BBC, 2015)'에서 인터뷰 중인 티나 웨이머스


"I don't think it has anything to do with gender and it's the one of the reasons I've always issued answering feminist questions. It's so loaded. If you wanna do something, just do it. Don't talk about it. Don't criticize other women." ['Girl in a Band: Tales from the Rock 'n' Roll Front Line', 2015]

"저는 이것(특정 직업)이 젠더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은 제가 그동안 페미니즘적인 질문들에 문제를 제기해 온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그건 너무 많은 의미를 실으려고 해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하세요. 그것에 대해 논하려 하지 마세요. 여성을 판단하려 하지 마세요."


그녀는 1981년 The Face지에 '여성으로서 겪는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아 온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차별적인 상황 속에서 발걸음을 이어나가는 다른 여성들을 맥 빠지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위에서 인용한 인터뷰와 같이 페미니즘적인 질문, 논의, 평가들과 이에서 비롯될 당사자의 상념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신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부딪히자는 것이 그녀의 메시지다.


그녀는 실제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추구했다. 데이비드가 토킹 헤즈에서의 음악 작업에 흥미를 잃을 즈음 남편 크리스와 '탐탐 클럽(Tom Tom Club)'을 결성해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그중 'Wordy Rappinghood'와 'Genius of Love'는 빌보드 디스코 탑 80에서 최상위를 기록했고 머라이어 캐리를 비롯한 여러 뮤지션들에 의해 재해석되는 등 성공적이면서 독특한 행보를 이어나갔다.


물론 성차별적 상황에 대처하는 그녀의 태도는 현대의 페미니스트들이 취하는 그것과 동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 차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다양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부당함을 대중에게 인지시키자는 것이 21세기 페미니즘의 주된 태도이다. 하지만 '티나'는 차별적인 환경에서 어떤 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 자체로 하나의 강력한 표현이자 주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이것은 결코 소극적이거나 옳지 않은 태도라고 말할 수 없으며 당찬 여성의 독특하고 묵직한 표현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2000년대에 들어서야 토킹 헤즈의 빈틈을 캐치하고 메꾸어 나갔던 밴드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40년이나 걸린 이 평가가 차별적 인식 개선의 속도를 말해준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가 2017년에 'Phycho Killer'의 베이스라인을 샘플링으로 한 'Bad Liar'를 발매했을 때도 가장 주목받았던 멤버는 데이비드였다. 데이비드의 천재적인 음악성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녀와 데이비드를 경쟁 구도라는 프레임 안에 가둬두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가 맞다. 활동 당시 데이비드와의 불화로 끊임없는 가십에 시달려야 했던 그녀가 이제는 사실 관계에서 벗어나 베이시스트이자 독립적인 아티스트로서 재조명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과거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성, 인종, 계급을 넘어서 다양한 차별적인 상황을 마주해야만 한다. 그녀는 음악과 예술이라는 본질을 놓지 않음으로써 주변의 불필요한 소음에 대해 현명한 노이즈 캔슬링을 고수하는 입장었다. 이제는 우리의 입장을 정리해 볼 시점이다.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타인에게 끼칠 영향을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직업정신을 지켜 나갈 것인가.


티나 웨이머스


"I was always a feminist. I just hated to always get that question. It locks you into asking, 'Is that all you think about when you see me? As a woman? You don't see me as an artist? You don't see me as a musician?" [PAPER, '40 Years Later, Talking Heads' Most Valuable Member Is Still Its Most Under-Recognized', 2017]

"저는 항상 페미니스트였습니다. 저는 단지 이러한 질문들이 싫었을 뿐이에요. 그것은 이런 생각에 잠기게 해요. '그게 네가 나를 볼 때 생각하는 전부야? 여자로서? 내가 예술가로 보이지는 않아? 뮤지션으로 보이지는 않아?"

    


참고 영상:

[BBC, 'Girl in a Band: Tales from the Rock 'n' Roll Front Line', 2015]

[Stop Making Sense, 'Genius of Love', 1984]


참고 기사:

[PAPER, '40 Years Later, Talking Heads' Most Valuable Member Is Still Its Most Under-Recognized', 2017]


참고 서적:

[마티, '대중음악이론:문화산업론과 반문화론을 넘어서', 키스 니거스]

[한나래, '대중음악 사전', 로이 셔커]


사진 출처:

Talking Heads의 후기 완전체 - [LA WEEKLY, 'TALKING HEADS WERE WAY MORE INNOVATIVE THAN THE RAMONES, 2012]

'Girl in a Band: Tales from the Rock 'n' Roll Front Line(BBC, 2015)'에서 인터뷰 중인 티나 웨이머스 - [BBC, 'Girl in a Band: Tales from the Rock 'n' Roll Front Line', 2015]

티나 웨이머스 - [Another, 'Talking Heads Bassist Tina Weymouth’s Electrifying Styl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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