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에게 아도이가 전하는 따뜻한 기도
나는 종종 마법 세계로 떠날 준비를 한다. 킹스크로스 역 9와 4분의 3 승강장 앞을 서성이다 발걸음을 돌린다. 호그와트 보다도 자유로이 시공간을 유영하는 세계가 있다. 바로 '아도이(ADOY)'의 음악이다. 아도이는 인디 씬에서 가지각색의 커리어를 거쳐 온 네 명의 멤버가 모여 2016년에 결성한 '신스 팝' 밴드이다. 팀을 결성할 당시 그들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적지 않은 나이였다. 하지만 젊음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청춘을 가장 잘 이해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그들의 연륜은 '청춘'에 대한 세련된 재해석을 돋보이게 했다. 아도이의 음악은 우리의 손에 잡히지 않지만 닿고 싶었던 어딘가로 이끈다. 마법사가 지팡이를 휘두르듯 재생이 시작되는 한순간이면 충분하다.
나 또한 한순간에 그들에게 매료되었다. 몇 년 전의 여름밤 아도이의 'Grace'에 잠에서 깨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베이시스트이자 보컬인 정다영의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작게 울렸고 나른한 기타 라인이 하얀 커튼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렴풋한 멜로디 속에서 꿈같은 기상을 했다. 그 후 꽤나 또렷했던 잔상에 홀려 아도이의 음악을 무한 반복했다. 그 중심에는 곡의 정체성을 잡아주는 비트들이 있었다. 아도이에게 숨겨진 첫 번째 마법이었다. 스네어의 톤을 타이트하게 잡아 밴드다운 사운드를 이끌어나가기도 하고 과감히 밴드의 색을 버리고 찰랑거리는 전자 비트로 도시적인 느낌을 끌고 가기도 했다. 모호한 분위기 속에서도 각각의 곡이 특별하게 기억될 수 있는 이유였다.
그 여름밤의 잔상처럼 음악은 개인적인 경험 그 자체이기도 하다. 나만의 상황과 우연하게 어우러져야 오래도록 좋은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그리 로맨틱하지 않더라도 아도이의 음악은 반드시 무언가를 남겨준다.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여러 겹의 레이어로 만들어낸 '리버브(Reverb)' 사운드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감성을 더한다. 그것이 아도이에게 숨겨진 두 번째 마법이었다. 리버브는 무수한 반사음으로 만들어낸 공간감 있는 음향을 말한다. 이러한 효과를 잘 사용했을 때 음향의 질감은 촉촉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도이의 음악을 듣고 바다와 우주를 유영하는 상상을 한다. 나는 여름 비 냄새를 떠올린다. 나는 그럴 때 귓가를 간지럽히고 도망가는 반딧불이를 상상한다. 아도이의 음악 속에서 어른들은 엉뚱한 상상에 빠지는 마법에 걸린다.
아도이가 만들어내는 아련한 분위기는 가사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발매한 총 3개의 앨범에서 대부분의 곡이 영문 가사로 되어있다. 보컬 오주환은 의도적으로 발음이나 창법의 형태를 흐린다. 또한 대부분의 가사는 뚜렷한 서사를 이야기 하기보다는 추상적인 이미지나 은유를 묘사하는 형식에 가깝다. 이것이 아도이의 세 번째 마법이다. 'You lemonade. Such a beauty on the TV. You lemonade. Can you see me. (Lemon, 정규 1집 앨범 'VIVID')'라는 가사를 보면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하지만 장난감 같은 신시사이저의 소리가 시작되면 어느새 회상에 잠긴다. TV 속 연예인처럼 내 손에 결코 닿을 수 없었던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아도이의 가사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때 우리는 사운드와 분위기가 전하는 서사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어렴풋한 가사가 지닌 힘이다.
아도이의 음악은 떠올림의 연속이다. 예쁜 거북이와 바다를 헤엄치는 비현실적인 상상에 빠지거나 어릴 적 뛰어놀았던 놀이터를 회상하게 한다. 그래서 아도이의 음악과 함께 할 때는 그들의 마법에 풍덩 빠질 각오가 필요하다. 그들의 음악이 끝나면 분위기와 감성을 털어내고 현실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강력한 마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사람을 헛되이 현혹시키는 마력이 아니다. 어른들을 향한 아도이의 따뜻한 기도이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빛나던 것들을 잃어갈 때 아도이는 어른들이 행복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는 이루어진다. 어느새 마음 한 켠에만 남겨진 청춘과 첫사랑, 어리숙했던 고민들과 함께 했던 밤 그리고 맥주 한 캔. 손에 잡히지 않지만 닿고 싶었던 무언가를 생각할 때 오히려 미소 짓는 것 처럼 말이다. 오래도록 상상해오던 그곳에 우리는 분명 닿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