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오는 공앞에서 겸손해야
겸손이 힘든 건, 사실의 주장이나 정치 평론의 영역뿐이 아니다. 돈이 많으면 돈 자랑을 하고 자식이 잘되면 자식 자랑을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고매한 인격을 지닌 분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동호인 테니스 세계에서도 겸손은 힘들다. 네트 너머로 공을 몇 번 쳐보면 직감적으로 안다. 상대가 나보다 고수인지, 하수인지. 보통은 그 느낌이 일치한다. 내가 하수라고 느끼면, 상대는 자신이 고수라고 느낀다. 그러면 보이지 않지만 명확한 계급이 생긴다. 이때 고수는 하수를 대체로 다음 몇 가지 방법으로 대한다.
첫 번째는 무시. 분명 코트에 사람은 여럿 와있는데, 함께 운동할 사람이 없다며 딴청을 피우는 고수들, 정말 있다. 아무렇지 않게 이런 대화도 오간다. “(하수) 잠깐 같이 몸이라도 푸실까요?” “(고수) 아, 사람이 아직 안 와서요.” 두 번째는 지적. 특히 같이 파트너로 함께 뛰기라도 하면, 지적은 비난으로 변하기도 한다. 나이나 사회적 지위 따위도 필요 없다. 잘 못치는 게 죄다. 세 번째는 레슨. 어느 정도 하수에 대한 애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도 하수는 마음이 상하기 쉽다. 가르치려 할 때도 상대에게 동의를 구하고, 마음까지 배려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경기 중에 조언은 최대한 단순하고 짧게 해야 한다. 때로는 그냥 마음 편하게 치라는 얘기가 가장 훌륭한 레슨일 수 있다.
테니스 코트에서 겸손이 힘든 건, 나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엄연히 승패가 엇갈리는 코트에서 승률이 높게 나올 때가 있다. ‘이 정도면 포핸드 스트로크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거 아닌가?’ ‘오늘 A와 편을 먹고, C, D조를 이겼으니 내가 C, D보다는 나은 거 아닌가?’ ‘슬라이스 서브만큼은 완성 단계라고 봐도 되겠지’ 내 실력이 좋아졌다고 자각했을 때, 그런데 그다음 날의 성적과 경기력은 어떨까? 난 엉망이었다. 평소보다 몸에 힘이 들어가고, 더 무리한 샷을 구사하려 하고, 파트너의 공까지 책임지려 했을 게 분명하다.
난 이렇게 한 번 무너지고 나면 다시 ‘요즘에 공이 좀 잘 맞는데’ 이런 느낌이 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낙담과 반성, 무념과 자신감, 경솔로 이어지는 의식의 흐름이다. 이 사이클은 두세 달 정도로 반복된다.
그 의식의 수레바퀴가 코트를 이리저리 뒹굴 때, 자신감이 경솔로 넘어가지 않게 붙잡아주는 게 겸손이다. 동호인 테니스에서 한 번에 승부를 결정짓는 '위닝샷’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경기를 하면서 안정된 샷이 축적돼 스윙과 몸의 밸런스가 맞아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기회가 온다. 그 위닝샷의 경험이 쌓여 실력이 된다. 실력을 키우는 것도 어쩌면 날아오는 공 앞에서의 겸손이다. 겸손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