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졸업이라 우기는 MZ 세대의 한 사람
21일. 퇴사 후 이직까지 3주 간이 시간이 주어졌다. 이렇게 길게 쉰 것이 얼마만인가. 방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문득 지난 5년 간의 시간이 마치 하나의 학사과정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새터, MT와 비슷했던 신입사원 연수, 그리고 한창 사원을 많이 뽑을 때 들어간지라 80명의 동기가 있었기에 회사가 캠퍼스로 여겨질 때가 있었다. 그리고 이 시원섭섭한 마음도 마치 몇 년전 대학 졸업식 때 나의 마음과 비슷했다. 생각해보면 고작 대학도 4년 밖에 안다녔는데, 정체성의 하나로 남아있지 않은가. 너무 짧게 회사를 다니고 떠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었는데, 충분했다는 결론으로 황급히 매듭지어본다.
펀펀 페스티벌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인 장류진의 글 중에 <펀펀 페스티벌>이라는 단편이 있다. 한 때 유행한 합숙 면접에서의 경쟁과정을 그리고 있는 글이다. 지원과 찬휘라는 인물이 합숙 면접의 대미인 펀펀 페스티벌에서 밴드로 출전하는 과정이 등장하는데, 내가 그 글을 재밌게 읽었던 것은 내 경험과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춘다. 합숙 면접이 아니라 신입사원 연수였기에 소설에서 보여주는 경쟁 상황보다는 갑작스런 친목과 극한 스케쥴(ex. 새벽 2시에 기상해서 아침(?)먹고 한 겨울 지리산 하이킹)에 대한 당황스러움이 주로 느낀 감정이었지만, 그 때 2주 가량 연수원에서 동고동락했던 입사동기들과의 기억이 떠올랐다.
MBTI가 I로 시작하는 나이기에 이제 막 사람들과 친해질 무렵에 연수가 끝나버렸지만, 어쨌거나 그 때 같이 고생(알고보니 회사생활 중 가장 여유롭고 즐거웠던 한 때였다)한 기억 때문인지 그 후로도 자주 밥을 먹고 틈틈이 사내 메신저를 하며 친해질 수 있었다. 대학 시절에는 왠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낯설어 엠티도 가지 않았고, 사람들과 억지로 점심 약속을 잡지도 못했다. 그저 큰 나무가 있는 계단 아래 앉아 혼자 휴식을 취하거나, 학교에서 한 블럭 떨어진 카페에 가곤 했는데 도리어 입사이래 처음으로 인사이더가 된 느낌을 받았다.
네버엔딩 진로 고민
방 정리하다가 발견한 노트에서는 무려 2005년 쯤에 쓴 2030년까지의 연도별 인생 플랜이 있곤 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계획대로 옹골차게 살지는 못했다. 어른이 되어버린 후 돌아보니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렇게나 꿈이 야무진 시절도 있었는데, 현실과의 가위바위보 속에 이기고 지고 비기며 손에 쥔 것들을 내어주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나는 첫 회사 취업으로 그 지난한 과정에 이제 마침표를 찍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서비스 기획 업무로 인턴을 하다가, 경영관리 재경 업무로 신입사원을 시작하고, 마케팅으로 다시 직무를 변경했다. 중간 중간 리트 시험을 보며 로스쿨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갑자기 노무사 시험을 봐야겠다면서 인강을 끊기도 했다. 경영컨설팅 스터디도 잠깐 했고, MBA 입시 설명회에도 갔었다. 가만히 있는 것 빼고는 다 했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지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 무엇을 잘하는 지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부족했다. 어디서부터 꼬인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보다 남이 나를 바라볼 때 그럴듯해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그러다보니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그나마 대충 대기업에 일단 들어오고 나니 마음 속의 압박감이 수그러질 때가 있었고, 그제서야 내가 언제 무엇을 할 때 즐거운 지 알아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주어진 서로 다른 업무들을 수행하면서 내가 이런 성향이라 이 업무를 좋아하는구나, 나는 도저히 이런 업무는 맞지 않는구나를 판별해나갔다. 소설 <펀펀 페스티벌>과 유사한 경험 덕분에 대학시절보다 더 폭넓은 인간 관계를 갖추게 되었고, 그 덕분에 또 여러 친구들의 모습에 나를 비추며 좀 더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도 있었다.
'이런 것들을 대학생때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때는 그 소중한 시간들을 나를 탐색하고 알아가는 시간으로 쓰질 못했다. 성적이 잘 나올 것 같은 수업 위주로 수강신청을 하고, 아르바이트에 지치고 밥벌이를 못하고 살까봐 불안하여 전전긍긍하기에 바빴다는 것이 나의 변명이었다. 입사 첫 날 나의 첫 팀장님은 내게 "돈을 받고 일하면 이제 프로다. 프로답게 일하는 사람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셨다. 현실의 나는 회사를 학교처럼 다니는 아마추어였다. 모르는 것을 친절히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스스로 물어가며 알게 되고, 데이터 교육이나 사내 공모전 기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조금씩 성장해 나갈 수 있었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며 돈 받고 일하는 만큼 기여를 하라는 말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그 어디든 학교가 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하여 졸업합니다
퇴사가 아니라 졸업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렇다. 많이 배웠고, 정들었던 이 곳을 떠나 다음 스텝을 향해 갈 때가 되었고, 때가 되니 떠나는 것일 뿐이었다. 회사 안에서 총 세 개의 다른 조직에 있으면서 나를 파악한 결과 좀 더 자율적이고, 도전해볼 수 있는 경험과 새로움이 있는 곳이 내게 더 잘 맞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결정하게 된 이유다. 현 조직에서 더 이상 동기부여가 되지 않아 퇴사 한다고 말하자, 어떤 분은 내가 옮길 작은 조직에서는 어쩌면 대기업보다 작은 일을 하게 될테고, 그러면 오히려 동기부여가 떨어질 수 있지 않냐는 우려를 표하셨다. 그로스 마케터라는 직무가 조용한 내 성격과 어울릴까 하는 걱정도 해주셨다. 그 분이 보시기에 지금 회사에서는 나와 잘 어울릴 것 같은 기획이나 관리 업무를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나가는 것이냐는 말씀이었다. 합리적 의심이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 5년 전의 나였으면 그 말에 몹시 흔들렸겠지만, 지금의 나는 나의 성향은 내가 더 잘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고민 끝에 나는 불편한 마음을 감수하고 지내느니 리스크를 안고 새로운 상황으로 나가는 것이 더 좋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내 선택을 좋은 선택으로 만드는 것은 남은 숙제다. 앞으로 펼쳐질 상황에 나 역시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나에 대한 고민은 내가 제일 많이 할 것이기에, 내가 내린 결론이 나의 최선이라 생각하려한다.
출근일이 다가올수록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뭐가 됐든 일단 숙제는 잠시 미루고, 우선 남은 방학을 아주 재밌고 알차고 행복한 시간으로 보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