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 이라는 책 제목을 봤을 때,
와~ 정말 제목 잘 지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해하다'는 익숙한 단어가 '사람'앞에 수식어로 쓰이니 신선하게 느껴졌다.
무해한 사람.
무해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말 그대로 해가 되지 않는 사람, 어딘가 순하고 모두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는 사람일까?
비유하자면 유해조수가 아닐까 싶은 나도 이제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
로봇을 도입한다면 인건비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까.
경영관리팀에서 시작된 사회초년생 시절,
로봇 도입에 따라 절감될 수 있는 인건비를 구하라는 미션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다시말해 반복 업무 자동화가 되면 계약직을 월별로 몇 명씩 자를 수 있는지 구하라는 것이었다.
그 일을 맡긴 팀의 선임은 일단 보여주기식으로 필요한 자료이니 대충하라는 말을 곁들였으나,
혹여나 나는 괜히 내가 짠 계획의 초안이 누군가에게 해가 될까 두려웠다.
그 일은 선임 말대로 정말 보여주기식 계획 업무로 끝이 났고 자료가 더 활용되는 일은 없었다.
다만 내게는 회사의 생리에 대해 체감하며 이해하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옆자리 동료도 나도 소중한 팀원임과 동시에
노동력이었고 인건비였다.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매출을 높이고 비용을 아끼고 수익을 최대화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곳에서 비용을 아끼는 포지션에 있었다.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비용을 아낄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기획하는게 내 업무였다.
재고가 없는 회사에 다녔기에 내가 줄여야하는 비용은 판촉비와 인건비가 전부였다.
비용 절감은 내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마치 늘어나지 않는 내 연봉과 늘어만가는 카드값 사이에서 파산하지 않으려면 아끼는 것이 시작이듯
회사는 비용TF까지 만들어 모든 규모의 지출을 아끼고자 했다.
모두의 직장인 이 곳이 망하지 않도록, 회사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단지 나는 그 일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내보내는 사람들은 제 몫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더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쁜 회사여서 사람을 홀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회사에 남는 것은 결국 숫자 밖에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었다.
커튼 뒤에 얼굴만 가리는 어린아이의 숨바꼭질처럼,
당시의 나는 그런 일들이 내 일상에서 보이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 그 팀을 떠난지도 거의 5년이 흘렀다.
그러나 마케터가 된 지금의 나는 그 때의 고민을 아직도 한다.
새롭고 재밌는 일만 할 줄 알았던 마케팅 업무는 그 무엇보다 극강의 효율성을 추구해야하는 일이었다.
마케터는 전사에서 돈을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이고, 매출의 근간이 되는 고객 유입을 책임져야한다.
그러다보니 비용 관리는 기본이고, 고객 유입을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채널을 발굴해야한다.
내년도 마케팅 목표와 비용 계획을 수립하며, 나는 대면 영업 채널을 이제 닫아야 했다.
파견직으로 근무하시던 분들은 계약 종료와 함께 이 회사를 떠날 것이다.
그 분들이 제 몫을 못해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효율적인 채널이 있기 때문이었다.
더 효율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는 것은 이 세계의 룰이 아니었다.
이직 후 몇 달간 회사에 소프트 랜딩을 했다고 생각한다.
조기 정착을 위해 내 일을 열심히 한 결과였다.
주 업무인 온라인 세일즈 성과가 드라마틱하게 좋아졌고,
비용은 아끼고 효율은 높이고 유입도 늘리는 가장 최적의 결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이 과연 최적의 결과가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인력 조정에 대한 논의를 마치고 회의실을 나서며
나는 한참을 달아나 왔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원점이었다는 공포 이야기가 떠올랐다.
또 다시 5년 전의 그 때처럼 고개만 감추는 숨바꼭질을 하고 싶지는 않은데,
일단은 숨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번 생에 무해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무해한 사람이 되어보자는 결심이, 무해한 삶을 살겠다는 의지로 나아갈 수 있을까?
닿지 않는 곳에 손을 뻗는 것은 정말 무의미할까?
효율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탓으로
그동안 쉬운 대답을 찾고 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괴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