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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Sep 16. 2023

23.08.21-23.08.22 거제/통영 여행 후기

8월 여름날 거제/통영은 내 피부에 태양의 타투를 남겨놨다. 바닷가 쪽이라 시원할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후 렌터카를 통해 거제도로 넘어갔다. 첫날은 한려해상공원을 둘러보는 게 목표였다. 초등학교 수업 때 아름다운 곳이라 듣고 줄곧 염두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확인하는 기회를 가진 것이다. 1시간 반 동안 운전해 겨우 9시 배를 잡았다. 배를 타고 15분쯤 지났을 때 기암으로 이루어진 섬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났다. 듣던 대로 아름다웠지만 감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여행하면서 아름다운 곳을 이미 많이 봐서 그런 걸까? 굳이 비교하자면 베트남에 있는 하롱베이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계속되는 선장님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둘러볼 수 있었다. 해금강은 꽤 볼만했다. 선장님이 말씀하시길 오늘은 파도가 잔잔해 절벽 사이까지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했다. 두 절벽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바닷물의 철썩거림이 웅장함을 주었다.

중간에 기착한 외도 보타니아 가든도 좋았다. 한 박사님이 평생에 걸쳐 가꾼 섬이다. 남해의 남이섬으로 보면 되겠다. 정원사를 포함한 직원들이 더운 날에도 땀 흘려 손질하는 모습에서 섬에 대한 애착이 느껴졌다. 땀 흘려 섬 정상까지 올라간 후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아차! 뜨거운 걸 시켜버렸다. 6천 원을 주고 이열치열을 해야 했다.

둘째 날은 통영의 동피랑, 서피랑을 구경했다. 피랑은 벼랑이라는 뜻이다. 두 피랑 사이 거리가 얼마 안 되어 20~30분 정도 서피랑을 둘러보고 1.5km 정도 걸어서 동피랑에서 1시간 정도 보내면 충분히 다 돌아볼 수 있다.

여기서부터 아쉬움이 생겼다. 동피랑을 둘러볼 동안 보이는 가게들은 '이쁘기만' 한 카페뿐이었다. 맛은 안 먹어봐서 모르겠다. 사진 찍기용 천사 날개도 곳곳에 보였다. 한마디로 인스타용 장소로 범벅이 됐다. 벽화들도 이쁘지만 역시 인스타용으로 밖에 안 보였다. 이럴거면 서울 이화벽화마을을 가지 왜 통영까지 내려와야 할까 의문이 생긴다. 벽화나 가게에서 통영의 정체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서울을 카피하려고 애쓴 흔적만 보였다.

물론 너무 비판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죽어가는 마을과 예술인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만든 건 좋은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창의성이나 정체성 측면에서 아쉬웠다. 생각해 보면 한국이 관광자원으로서 지방을 살펴보기 시작한 역사는 30년이 채 안될 듯싶다. 제주도는 사람들이 꾸준히 방문했기 때문에 나름의 정체성이 생겼고, 귤과 하루방 굿즈도 생겼다. 그보다 관광지로서 역사가 짧은 통영쪽 입장도 이해할 만하다. (자주 방문했던 일본도 조금만 뜯어보면 복사판이 많다. 버스터미널 - 상점이 있는 긴 인도 - 인도 끝에 신사나 관청, 성이 있는 구조다. 다만 몇 백 년 전부터 이미 관광이 유행했고 긴 국토가 지방색을 좀 더 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상점 유형도 더 다양하다.)

다행히 통영은 관광자원이 풍족한 편이라 앞으로가 기대할 만하다. 일단 통영 = 이순신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고, 거북선도 있다. 동피랑과 서피랑이라는 이쁜 언덕도 있기 때문에 두 피랑 사이 짧은 길을 차 없는 인도로 쭉 만들고 간식거리나 여러 상점으로 채우면 연인, 가족끼리 걷는 소소한 재미가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동피랑에서 본 항구 마을이 이뻐 보였다. 여기는 밤에 저녁 먹기 좋은 장소로 만들면 어떨까? 피랑 사이에서 놀다가 해질녘 피랑 정상에서 본 부둣가의 은은한 조명에 이끌려 내려가 허기를 채우는 코스다. 포르트갈의 포르토처럼 말이다. 이런 생각을 아는 분께 말하니까 공무원 마인드라고 하더라.ㅎㅎㅎ 나 때는 힘들겠지만 내 자녀나 조카가 그렇게 즐겨보길 기대한다.

포르토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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