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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구마깡 Apr 23. 2024

예견된 국민연금이 버린 세대 2편

삼성전자 개성공단 캠퍼스의 리 대리 -22-

투표는 리 대리도 알고 있다. 다만 99.99%의 찬성 투표만이 북한에서 가능할 뿐이다. 투표 독려를 위한 캠페인이 없으며 뉴스에서는 당의 방향이 철저히 반박불가로 맞다고 외칠뿐이다. 반대에 관한 의견을 내는 사람은 일절 없다. 그나마 민주주의 국가라는 구색을 갖추기 위해 당에서 물러난 원로들이 내는 소수 의견이 있을 뿐이지만 그것도 딱히 반대가 아닌 정도의 차이만 얘기하고 있다. 그에 반해 남한은 매번 왜 그리 난리인지 모르겠다. 때로는 서로를 헐뜯으며 중심인물을 몰아내기 위한 선거 운동을 하고, 다른 때는 상대 진영이 추진하는 정책을 무너뜨리기 위한 운동도 펼쳤다. 비판 정도를 떠나 비난과 힐난이 난무했고, 남한이 북한을 비판하는 것보다 더 정도가 심했다.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선거 운동이 무슨 민주주의일까 하는데 남한 사람들은 또 거기에 호응하여 투표를 한다는 게 리 대리는 이해가 안 갔다. - 도무지 파악하기 힘든 나라란 말이지. - 그런데 손주를 위해 투표한다는 건 무슨 말일까? 자식도 없는 사람들이 무슨 잘 못을 저질렀을까?


"전무님 손주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요?" 리 대리가 물었다.

"손주한테만 생긴 일이 아니라 손주 세대 전체가 큰 일을 겪게 될 것 같아요. 아휴 불쌍한 것. 다 욕심 많은 어른 때문이야." 노 전무는 짧아진 담배를 재떨이 비볐다. 그리고 담뱃갑에서 한 대를 더 꺼내 입에 물었다. 리 대리가 자세히 보니 외산 담배였다. - 미제 담배를 피우다니 부끄럽지 않소? - 라는 말이 하고 싶었지만 그런 걸 따질 상대도, 그럴 순간도 아니니 침을 삼키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전무 미간의 주름이 빨아들인 담배만큼 깊어졌다. 다시 연기를 내뿜어도 사라지질 않을 주름들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면 다음 국회 때 상속세를 확 올린다고 하는 놈들이 있는데 지지를 꽤 받고 있어요. 자식 없는데 노후는 걱정되는 노망 난 놈들의 지지를 받는 것들이지. 지들은 언제 세금 잘 내고 애국자셨다고 세금을 올리라니 합니까? 대한민국에서 이런 것들은 없어져야 해요." 노 전무는 흥분한 말투로 말했다.

"상속세가 뭐죠?" "참 리 대리는 모를 수도 있네요. 한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자신의 재산을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가 있는데, 이때 여기에 세금을 매겨서 국가가 거둬가요. 근데 정도껏 해야지. 확 올린다는 게 말이 됩니까? 내가 고생해서 세금 떼고 번 돈! 내 자녀, 내 손주에게 주겠다는데 그걸 왜 나라가 또 훔쳐가냐 이 말입니다." 전무의 흥분은 가시지 않았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그럼 자식 없는 사람들은 왜 상속세를 올리자고 하나요? 자기들은 자식 없으니 올려도 상관없다 이 말인가요? 좀 이기적으로 들릴 수 있겠네요." "그렇다 마다요!" 노 전무는 맞장구쳤다. 그리고 한숨을 쉬고 잠시 말이 없었다. -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 노 전무는 생각했다.

"이게 다 나라 곳간이 점점 비게 돼서 생긴 일이오." "남한 사람들은 모두 등 따술 줄 알았는데 곳간이 빈다는 걸 무슨 말씀인가요?" 리 대리가 점점 궁금해졌다. "아직은 그렇죠. 하지만 장기간 동안 초저출산을 겪은 한국에서 앞으로 일할 젊은이들 수는 정해졌고, 그에 따라 걷을 세입도 구멍 뚫릴 게 뻔해요. 안 봐도 비디오지." - 안 봐도 비디오는 또 무슨 말인가요? - 라고 리 대리는 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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