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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 Jul 24. 2021

미국 의대생 친구와의 하루

"늦어서 미안.. OBGYN 돌고 있어서 힘들어 돌아버리겠어 ㅎㅎ 오랜만이야!!!" 미국에서 의대 본과 3학년을 다니고 있는 친구의 첫 인사에 '여기도 한국이랑 똑같이 힘들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의대생활이 어떻게 잘 맞느냐는 질문에 "이제 철이 들어서 먹고 살려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 뿐이야" 라고 웃으며 답한다. 친구는 UC버클리에서 물리학 학사를 마치고 Argonne 연구소와 Baylor 의과대학에서 5년동안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나이 서른에 Texas A&M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Texas A&M 의대생들은 College station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1.5년동안 기초의학부터 임상의학까지 모든 수업을 듣고 4번째 학기부터는 휴스턴에 있는 Methodist 병원에서 실습을 돈다. 미국 의대의 가장 보편적인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4년안에 하라고 해도 힘들만큼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의학 공부를 2년 만에 끝내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1.5년 만에 마쳐야 한다니 미국 의대생들도 참 고생이 많을 것 같았다. 자, 이제 미국의대생이 된 것 마냥 여행을 떠나보자. 


Methodist병원은 Texas Medical Center라고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메디컬 컴플렉스 심장부에 위치해있었다.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구글 맵에서 같은 배율로 캡쳐한 세브란스병원과 Texas Medical Center를 확인해 봐도 대충 상상해 볼 수 있다. Methodist병원 옆으로 나란히 보이는 MD Anderson 암센터, 텍사스주립대 (UT Southwester/Healthscience) 의과대학 및 부속병원, Baylor 의과대학 및 부속병원등이 위용을 뽐내고 있어서 이곳에 서 있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웅장해진다. 길가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가운을 휘날리는 모습을 봐도 이곳에 의료인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 이건희 회장도 이곳 Methodist 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았다고 하니 이 곳의 규모와 실력은 더 이상 설명해 봤자 손가락만 아플 듯 하다. 


(사진1. 신촌 세브란스 병원) 


(사진2. 텍사스 메디컬 센터)


이렇게 가까운 곳에 다양한 병원과 대학, 연구시설들이 몰려 있으니 공동 연구도 활발하다. 친구는 Texas A&M의대에서 수업을 듣고, Methodist병원에서 임상실습을 하지만, Baylor의대에서 연구도 하고 있었다. 연구시설에 들어가니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는 논문들과 연구실 사람들이 밝게 맞이해준다. 처음 보는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고 반갑게 환영해주는 모습에, 나도 자연스럽게 본인 소개를 하게 된다. 


(사진3. Baylor의대 연구실)


다음은 Baylor의대 연구실 창밖으로 보이는 Methodist병원을 방문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외부인은 들어갈 수가 없었다. 환자인척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Covid-19 상황 때문에 보안 수준이 높았다. 


(사진4. Methodist 병원)

(사진5. Methodist 병원 연구소)

(사진6. MD Anderson 병원 연구소)

(사진7. MD Anderson 병원 연구소)

(사진8. Baylor의대 어린이병원 연구소)

(사진9. Baylor의대 병원)


Methodist 병원 옆으로는 Methodist Research Institute가 있었고 바로 옆으로 MD Anderson 이라고 쓰인 건물들도 역시 연구소라고 한다. 그 옆에는 Jan and Dan Duncan Neurological Research Institute 라고 불리는 Baylor 의대 어린이병원 부속 연구소도 크게 자리잡고 있다. Texas Medical Center에 있는 병원들이 임상연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병원 건물보다 연구소 건물이 더 크고 많았다. 임상과 연구를 동시에 하고 싶은 Physician Scientist들에게 필요한 모든 시설들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모든 시설들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게 Medical Center 라는 이름 아래 공동으로 관리되고 있는데 궁금하면 웹 사이트에서 다양한 정보를 직접 확인해보자. https://www.tmc.edu/about-tmc/







공립대학인 Texas A&M과 연계된 사립병원인데 대학 부속 병원이 아니라는 점이 한국과 다르다. 미국 병원들은 일반적으로 대학과 별개로 운영되며 정치/경제적인 이유로 언제든지 다른 대학과 인연을 맺는다고 한다. 친구에게 Texas A&M 의과대학 자랑좀 해보라고 했더니 미국 최초로 Engineering oriented medical education을 제공한다는 의대 공학관을 구경시켜 줬다. 의대생들만 사용하는 공간이라는데 HW 프로토타입 제품을 만들 수 있는 makers lab 부터 SW를 개발할 수 있는 컴퓨터 센터가 영락없는 공대 캠퍼스 처럼 보였다. "A&M은 의대생들에게 공학 공부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어. 의학~공학 연계과정 학생들을 특별전형으로 선발하고 있는데 네들은 수업도 안들어와. 일반 과정 학생들과 함께 시험을 보는데도 성적을 따로 주있으니 의대에서의 성적 때문에 주눅들지 않고 본인의 적성과 특기를 살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  특별전형 학생들의 시험 성적은 비교적 저조하지만 학교에서는 이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아".  신기한 교육과정이었다. 같은 의과대학 학생인데도 입학 전형에 따라서 전혀 다른 커리큘럼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졸업하면 똑같이 의사 면허를 취득하게 되겠지만 학생때는 일반 의대생들과는 달리 출석체크도 없고 병원 로테이션도 도심에 있는 주요 병원에서만 돌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니 경쟁이 꽤나 치열할 것만 같았는데 그렇지만은 않았다. "공학 백그라운드가 없으면 합격하기도 힘들고, 의대 다니는 것 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는데 공대 수업도 듣고 연구까지 하라고 하기 때문에 그렇게 인기가 좋은 과정은 아니야. 중간에 포기하고 일반 과정으로 전환하는 학생들도 꽤 많아".


원래부터 미국에 오고 싶었는데 듣다보니 더욱 더 미국에 오고싶어진다. 나도 미국에 오고 싶어 죽겠다고 하니 USMLE step1이 사라져서 외국인 학생들이 미국 병원으로 실습 오는게 더 힘들어졌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병원 매칭에 있어서 step1 점수가 가장 중요했는데 이제 step1 점수가 Pass/Fail로 바뀌었으니 앞으로는 실습 점수가 더 중요해질 것 같아. 미국 출신이 아니라면 실습 점수에 대한 reference가 부족할테니 논문이나 특허 같은 실적을 잘 쌓는게 좋을 것 같". 과도한 시험점수 경쟁을 지양하기 위해 바꾼 정책의 결과로 이제는 공부머리가 아니라 연구머리와 일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미국 의료계에서 경쟁우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인기있는 과를 물어보니 성형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흉부외과가 가장 돈을 잘 벌고 ROAD가 work life balance가 좋아서 인기있는 전공이라고 한다. ROAD는 Radiology 영상의학과, Opthalmology 안과, Anasthesiology 마취통증의학과, Dermatology 피부과를 뜻한다. "마취과는 원래 인기과였는데 요즘은 마취 전문 간호사들이 대거 양산되고 있어서 마취과 의사들이 간호사들이랑 경쟁을 하게 생겼어. 때문에 갈수록 연봉이 낮아지고 있어서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어". 우리나라 의사, 의대생들이 정부 정책에 불만이 많듯이 미국 친구도 정부 정책에 불만이 많아보였다. 생명을 다루는 일에 경제적 논리를 가져와서 가격경쟁을 부추기는게 말도 안된다며 한참동안 불평을 늘어놓았다.


"내일 새벽 5시에 출근해야 해서 정말 아쉽지만 슬슬 일어나봐야 할 것 같아" 10년만에 만난 15년지기 친구랑 저녁만 먹고 바로 헤어져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종일 함께 어울리고 싶었겠지만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 고된 일정 때문에 술 한잔 함께 하는것도 어려운 것이 의대생의 현실이었다.


의사가 되는 길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로 길고 고된 길이다. 한국의 현실이 점점 각박해진다고 미국에서의 삶 무조건 낙관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국 의대생들도 본인들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까봐 불안해하고, 고된 병원생활에 시달리느라 힘들어하고, 날이 갈수록 의사들을 존중하지 않는듯 해 보이는 정부 정책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한국 의대생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렇지만 민간주도의 혁신, 어마무시한 연구 인프라, 학벌 등 백그라운드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환경,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는 분명 한국 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수한 인재를 존중하며 대우하는 문화와 정책이 정말 부러웠다. 미국에서 인턴, 레지던트, 박사과정 진학을 꿈꾸고 있다면 막연한 동경을 멈추고 전략적으로 매칭을 준비해보자. 미국은 역시나 능력있는 사람들을 언제나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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