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선 Feb 04. 2023

포토샵 학원에서 남몰래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내 꿈은 디자이너(?)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작.. 가.. 요. “


나라에서 주는 구직촉진수당을 받기 위한 첫 번째 면담날, 담당 선생님에게 희망 직업을 수줍게 말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 중에 제일 좋아했던 일은 글쓰기였다고, 그래서 지금은 하고 싶은 직업을 굳이 고르자면 작가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작가는 힘든데요.”


돌아오는 답은 거절이었다. 구직촉진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제도 지원 절차에 따라 한 달에 최소 2개 이상의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데, 작가는 현실적으로 구직활동을 인정받기 힘들다는 설명이었다. 취업을 위한 공신력 있는 직업 훈련 과정도 없고, 업체에서 일을 하는 일경험도 하기 어렵고, 구인업체 입사 지원이나 면접도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작가가 되려면 뭘 해야 하죠?”

“우선 글을 써야 할 것 같아요. 혹시 글을 쓰는 건 구직활동 인정이 안 되나요?”

“아… 창착활동은 인정이 어렵습니다.”


살짝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이 제도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일을 하고 있지 않거나 못하는 청년들을 일하게 하는 제도이고, 이로써 국가가 얻는 것은 세금 및 생산량 증대 같은 것이니까. 내가 어엿한 작가가 돼 한몫을 하는 것은 가능성이 낮은 일이기도 하고. 그런 낮은 가능성을 보고 글을 쓰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전처럼 하루 8시간씩 열심히 일하며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것이 나라에 도움이 되겠지. 이 모든 불만을 떠나 내가 받을 수 있는 300만 원(구직촉진수당은 50만 원씩 6개월 지급된다)은 소중했다.


“그럼 작가 안 할게요.”


바로 꿈을 버린 나를 보며 선생님은 조금 황당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다시 아까와 같은 평온한 표정이 됐다. 내가 작가를 한다고 우긴다면, 이후 구직활동을 인정받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평이한(구직활동이 용이한) 직업을 선택하는 게 둘 모두에게 나았다. 문제는 작가를 포기하고 나니 딱히 원하는 직업이 없었다는 거다. 당장 아무 직업이나 골라 취업을 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선생님은 일단 생각을 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3주가 흘렀고, 또다시 그의 앞에 앉아있다.


“희망 직업은 정하셨어요?”


사실 취업을 하고 싶지가 않은데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킨다. 대신 멋쩍게 웃어 보인다. 취직할 의사는 강력하지만, 아직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본다. 상담 선생님은 작가와 비슷해 보이는 직업 몇 가지를 추천해 준다. 유망 분야는 나라에서 비싼 훈련을 지원도 해준다는 얘기와 함께. 내 기준 그 직업들 중 글을 쓰는 직업은 아무것도 없다. 작가와 비슷한 직업이 아니란 얘기다.


“그럼 원하는 직업 훈련은 있으세요?”


구직 활동을 인정받기 위해서(구직촉진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 이상의 직업 훈련을 받아야 한다. 희망 직업으로 접근하기 어렵다면, 배우고 싶은 것을 말해보라는 얘기였다.


“네, 저 포토샵을 배우고 싶어요.”

“그러면 일단 희망직업 1순위로 시각디자이너를 올려 둘게요.”

“디자이너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얼렁뚱땅 내 꿈은 갑자기 시각디자이너가 됐다. 나라에서 준 꿈이다. 지금 컴퓨터 학원에서 포토샵 수업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라쏘툴을 이용해 다스베이더 이미지를 오려서, 스타워즈 포스터를 만들고 있다. 겉으로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구직활동을 하며, 남몰래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는 셈이다. 어쨌거나 처음 작가로서 글을 쓰면서 돈을 벌고 있는 거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나? 희망회로를 돌려본다.

작가의 이전글 괜스레 뿌듯한 마음을 매일 느끼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