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선 Feb 02. 2023

괜스레 뿌듯한 마음을 매일 느끼는 법

꿀꺽 넘기면 그만인 그 액체에 빠져버렸다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던 카페에서 브루잉 클래스를 연다는 글을 봤다. 커피와 공간에 대한 진심이 묻어 나오는 곳이라 애정이 있던 카페였다. 그즈음 식사 후 자유시간을 즐기며 커피에 대해 관심이 생기고 있던 참이었다. 핸드드립 원데이 클래스를 기웃거리던 와중이었는데 좋아하는 카페에서 클래스를 연다고 하니 안 갈 이유가 없었다.


도착하니 숫자가 적힌 하얀색 종이컵 네 잔이 눈앞에 놓여있었다. 서로 다른 네 가지의 원두로 내린 드립커피가 각각의 컵에 담겨 있었다.


“차례대로 맛보시고, 맛이 어떤지 평가해 보세요. 어떤 표현이든 괜찮습니다.”


커피 맛을 평가해 본 적이 있었던가. 기껏해야 산미가 있네, 고소하네 정도였다. 카페에서 선택하라는 두 가지 원두 중에 “산미 있는 걸로 주세요!”라고 말하는 정도의 얕은 취향. 처음에는 4잔의 커피가 다 똑같이 느껴졌다. 첫 번째 잔을 마시고, 음 산미가 있네. 다음 잔을 마시고, 이것도 산미가 있는데?. 그다음잔도 그다음잔도. 네 칸에 모두 ’ 산미‘라고 적자 선생님은 ”신 맛은 다 있어요. 좀 더 자세하게 표현 주세요.”라고 했다.


커피를 입 안에서 열심히 굴려봤다. 목구멍으로 꿀꺽 넘기면 그만인 그 액체를 아주 소중하게 다뤄보았다. 뭔가 다른 맛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아까랑 완전 맛이 달라졌어요.“라고 말하자, 선생님은 ”맞아요. 커피는 온도에 따라 맛이 계속 달라져요.“라고 답했다. 그 변화를 감지해 낸 게 괜스레 뿌듯했다.


참여자들은 돌아가며 조심스럽게 어떤 맛을 느꼈는지 말을 했다. 나는 어떤 커피에서 인센스스틱 맛이 난다고 평했다(이제 알았지만, 이건 경우에 따라 배려심이 없는 모욕적인 말이 될 수도 있다) 옆에 앉은 바리스타는 ’감 맛’이 난다고 했다. 그냥 감 맛이 아니라, ‘가을에 수확한 단감의 풋풋하면서 과하지 않은 단맛’이라고. 그의 섬세한 표현에 우리는 모두 입이 벌어졌다. 나는 아무리 입맛을 쩝쩝 다셔봐도 감 맛은 안 나고, 심지어 맛에 대해 떠올릴수록 감이 정확히 무슨 맛인지도 기억이 안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맛에 대한 표현은 어려웠지만, 그래도 입맛에 맞는 커피는 선택할 수 있었다. 4개의 종이컵을 맛있는 순서대로 배열했다. 선생님은 내 취향에 대해 “음, 비싼 원두를 좋아하시네요.”라고 평가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또다시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돌아보면 비싼 원두가 입맛에 맞는다는 사실은 커피에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쓸 확률이 높다는 얘기였는데 말이다.


그날 커피에 대해 눈을 떴다. 처음 마리아쥬 프레르의 마르코폴로를 마시고, 홍차의 맛을 알게 된 때처럼 한 차원 더 나아간 커피 맛의 존재를 인식하게 됐다. 다만 홍차와의 만남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여느 직장인처럼 커피를 매우 자주 마시는 사람이었다는 거다. 당연할 걸까? 출근하자마자 빈속에 때려 붓는 프랜차이즈 아이스 아메리카노, 자극적인 점심을 먹고 입가심을 위해 반쯤 기능을 잃은 혀로 느끼는 라떼 같은 것과 같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백수로서, 그리고 미니멀리스트로서 대뜸 핸드드립 용품을 살 순 없었다. 충동적으로 물건을 구매하고 한 구석에 박아두는 그런 시기는 지났다. 약 한 달 동안 내가 정말 커피에 대한 열망이 커졌는지 확인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불현듯 자꾸자꾸 생각이 났다. 특히 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맛있는 커피가 생각이 났다. 그냥 그런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그 단감 맛이 난다고 하는 향긋한 드립 커피 말이다. 전에는 관심 갖지 않았던 원두들도 눈에 들어왔다.


결국 최소한으로 핸드드립을 위한 용품을 구매했다. 어떤 분야를 알게 되는 것은 기쁘면서도 어느 정도 두려운 일이다. 그 세계는 언제나 정교하고 거대하므로. 혹시 이 세계와 내가 맞지 않으면 어쩌지? 나는 조금 걱정되는 마음으로 커피 내리기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핸드드립을 내린 날, 커피에서는 과도하게 신 맛이 나서 위가 아플 지경이었다.


꾸준하게 시도했다. 약 2개월 정도 약속이 없는 날에는 매일 같이 커피를 내려 마시고 있다. 심지어 부모님 댁에 갈 때는 같이 맛보고 싶은 마음에 커피 용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부모님까지 영업하진 못했다. 아직 내 커피가 객관적으로 별로인가 보다) 벌써 세 번째 원두를 뜯었다. 아주 조금씩 내 입맛에 가까워지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 단감 비슷한 맛도 나는 것도 같다. 오랫동안 이 취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과하지 않은 방식으로 매일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하루 10분, 커피에 눈 뜬 그날처럼 괜스레 뿌듯한 마음을 매일 느낄 수 있는 건 덤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 입맛에 딱 맞는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