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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 Jan 31. 2023

내 입맛에 딱 맞는 하루

대단한 요리법은 필요 없어

지난 주말 산책에 다녀오는 길에 청과가게에 들러 로메인 한 묶음을 샀다. 비닐봉지에 20장 정도 담겨 있는 로메인이 천 원. 상추나 깻잎의 맛이 조금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서 쌈채소로 선호하는 야채다. 약속 없는 평일 점심, 로메인을 메인으로 오늘 메뉴를 쌈밥으로 정했다. 우선 좋아하는 흑미, 귀리를 넣어 밥을 하고 로메인을 미리 씻어두었다. 쌈밥에 넣어먹을 재료는 두부텐더, 닭가슴살, 대파. 세 가지 재료를 트레이 위에 올려 올리브유를 뿌리고 에어프라이어에 구웠다. 쌈장 대신 냉장고에 있던 오징어 탕탕이 젓갈을 택했다.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전보다 더 내 마음에 꼭 드는 식사를 하는 빈도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꽤 그럴듯해 보이는 식사를 해 먹는 나에게 친구들은 칭찬의 말을 건네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이건 요리가 아니라 조합이야.”


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를 선호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대접해야 할 때는 기쁜 마음으로 요리를 하지만, 혼자 먹을 때는 너무 많은 시간을 요리에 투자하다 보면 그만큼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충 먹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열과 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하고,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데 집중한다.


대부분의 식사는 내가 애정하는 식재료들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이고,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를 쓰는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 가는 재료 위주로 냉장고를 채운다. 야채는 루꼴라, 로메인, 시금치, 알배추. 과일은 식사에 곁들일 수 있는 토마토, 아보카도. 고기는 자주 사지는 않지만 냉동 닭가슴살을 주로 활용한다. 무엇보다 그때그때 가장 맛있는 제철 식재료에 마음이 활짝 열려있다.


오늘처럼 좋아하는 식재료를 담은 나만의 플레이트를 만든다. 대단한 조리법 없이도 뷔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담았을 때처럼 즉각적인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운이 좋게도 내가 선호하는 음식 대부분은 건강에 좋은 음식들이다. 게다가 본연의 맛을 좋아하다 보니 조미료는 최소화하는 편이다. 음식의 주된 양념으로 쓰이는 소금, 설탕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신 후추를 조금 뿌린다. 맛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파슬리도 기분 좋으려고 톡톡 얹는다.


늘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회사를 다니며 온갖 미팅과 회식을 해야 했을 때는 체지방률이 30%가 넘었다. 얼핏 겉보기에는 정상 체중처럼 보였지만 속은 지방으로 차올라 건강검진에서 비만 판정을 받았다. 돌아보면 그때 먹은 음식은 중독적이었다. 손님을 잡기 위해 자극적인 조미료를 사용한 음식들, 피로한 회사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고칼로리 식사들을 매일 같이 먹었다.


퇴사 후 별다른 운동 없이 나다운 식습관으로 체지방률은 자연스럽게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를 선택하고 부담되지 않을 만큼 먹고, 식사 시간에 집중했을 뿐인데 말이다. 이 과정에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생략된다. 처음 보는 사람과 어색하게 밥 먹기, 밥 먹으면서 관심 있는 척 대화하기, 대화 내용 억지로 기억하기, 몸에 안 좋은 음식 왕창 먹기 등등.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싫어하는 것은 선택하지 않기. 단순한 기준을 두고 식재료뿐만 아니라 모든 순간을 마음 가는 것들로만 조합하고 있다. 매일 같이 입맛에 맞는 하루가 탄생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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