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있는 사무실은 파트너 1명,
어쏘 1명의 매우 작은 펌이다.
지금보다는 더 큰 회사에 있으면서,
10몇위권에 드는 로펌에 합격을 하고서도
지금 사무실에 온 데에는
나름의 당찬 비전과 포부가 있었다.
일찍 개업을 해서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만들고
나를 브랜딩해서
내가 출근하고 싶을 때 출근하고
일하고 싶은 장소에서 일하고
한 달에 딱 몇 사건만 수임하면서
여유있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래서 개업 연습을 하기 위해서
일종의 과도기적인 훈련 기간을 갖기 위해서
지금 있는 사무실로 오게 되었고
첫 몇달은 정말 나의 모든 열정을 다하여
새로운 사건들을 공부하고,
의뢰인을 대하고,
업무 피드백을 매일 기록하고,
몰랐던 것을 체크하고 분석하면서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래서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돌아보니 그동안 정말 배운 것도 많고
성장하고 겪은 것도 많다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처음 보는 의뢰인을 단독으로 상담하고
혼자 운전하여 멀리 있는 법원에 다녀오고
매일 같이 걸려오는 의뢰인의 각종 전화와 연락과 푸념을
다 감내하고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대안을 고민해주며
내가 변호사로서 참 멋지게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 적도 많지만
이제 조금씩 나의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는
인상이 들기 시작했다.
1인 파트너 변호사님은 매일 바쁘시다.
각종 연락과 영업과 수임을 위한 노력에
연락이 바로 안 될 때도 많고
내가 물어본 것들에 모두 대답을 하지 않으실 때도 많다.
또 내가 처음부터 맡은 사건이 아니며
대체 어떤 취지와 연유로 이렇게 진행되고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데도 냅다 예전 기록을 보고
알아서 그 뒤를 끼워맞춰야 할 때도 많다.
하지만 엄밀히 이 사건들은 "내 사건"이 아니고
의뢰인들은 "내 고객"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이 모든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없다.
그래서 파트너의 컨펌과 방향 제시가 중요한 거고,
의뢰인 핸들링에 대한 개입이 필요한 거다.
나는 대체 나의 역할이 어디까지일까 생각한다.
나는 그의 피고용자이고,
내 업무 범위는 그가 시키는 것들에 한하며,
나 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그렇기에 나는 모든 서면이나 답변이 나가기 전에
항상 그에게 확인을 받기 때문에
사건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질 수 없다.
나는 매번 최선을 다하겠지만,
매일 같이 나에게 연락 오는
서로 다른 의뢰인들이 수십에
진행 중인 사건만 해도 수십 건인지라
나도 실수를 할 때가 있고,
나의 판단이 최선이 아닐 때도 있을 것이다.
내가 물론 틀리지 않고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변호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나 혼자서 그럴 능력이 아직 부족한 거라면
이 사건을 자신의 이름으로 수임하고 진행하겠노라고 한
파트너 변호사가 함께 고민해주고
디테일하게 체크해줬어야 하는 거 아닐까.
나는 이제 만으로 2년 조금 넘게 실무를 해봤을 뿐이다.
나는 아직 성장할 여지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다.
특히 몇몇 의사 결정은 내 권한 밖에 있기 때문에
나에게 너무도 낯설고 어렵다.
이럴 때 어쏘나 파트너가 여러 명이었다면,
혹은 정말 믿을만한 직원이라도 있었다면 나았을까?
1인 어쏘로 정말 기댈 곳이 하나 없다고 느껴질 때,
참 똑똑하다고 느껴졌던 대표님이
무책임하고 정신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이제 이곳을 나가야할 때가 되었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개업해서 멋지게 내 사건 하고
내 고객이 생기고 내 시간 자유롭게 쓰면
그게 최고일 줄 알았다.
그런데 개업해서 10여년 동안 사무실을 잘 꾸려오신
우리 대표님을 보고 깨달아 버렸다.
이렇게 훌륭하게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개업변의 삶도
결코 멋지거나 화려하지 않다는 걸.
그저 더 많이 바쁘고 더 많이 정신 없고
더 꼼꼼하게 사건을 봐드리지 못하고
더 야무지게 사건을 분석하지 못하고
퇴근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일 뿐.
내가 지향하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희망찬 개업의 문은 닫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