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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호사 G씨 Oct 08. 2024

성장의 벽에 계속 부딪힐 때

= 나가야 할 때

지금 있는 사무실은 파트너 1명,

어쏘 1명의 매우 작은 펌이다.

지금보다는 더 큰 회사에 있으면서,

10몇위권에 드는 로펌에 합격을 하고서도

지금 사무실에 온 데에는

나름의 당찬 비전과 포부가 있었다.


일찍 개업을 해서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만들고

나를 브랜딩해서

내가 출근하고 싶을 때 출근하고

일하고 싶은 장소에서 일하고

한 달에 딱 몇 사건만 수임하면서

여유있고 자유롭게 살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래서 개업 연습을 하기 위해서

일종의 과도기적인 훈련 기간을 갖기 위해서

지금 있는 사무실로 오게 되었고


첫 몇달은 정말 나의 모든 열정을 다하여

새로운 사건들을 공부하고,

의뢰인을 대하고,

업무 피드백을 매일 기록하고,

몰랐던 것을 체크하고 분석하면서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래서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돌아보니 그동안 정말 배운 것도 많고

성장하고 겪은 것도 많다는 게 여실히 느껴진다.


처음 보는 의뢰인을 단독으로 상담하고

혼자 운전하여 멀리 있는 법원에 다녀오고

매일 같이 걸려오는 의뢰인의 각종 전화와 연락과 푸념을

다 감내하고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대안을 고민해주며

내가 변호사로서 참 멋지게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 적도 많지만

이제 조금씩 나의 한계에 다다른 같다

인상이 들기 시작했다.


1인 파트너 변호사님은 매일 바쁘시다.

각종 연락과 영업과 수임을 위한 노력에

연락이 바로 안 될 때도 많고

내가 물어본 것들에 모두 대답을 하지 않으실 때도 많다.


또 내가 처음부터 맡은 사건이 아니며

대체 어떤 취지와 연유로 이렇게 진행되고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데도 냅다 예전 기록을 보고

알아서 그 뒤를 끼워맞춰야 할 때도 많다.


하지만 엄밀히 이 사건들은 "내 사건"이 아니고

의뢰인들은 "내 고객"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이 모든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없다.

그래서 파트너의 컨펌과 방향 제시가 중요한 거고,

의뢰인 핸들링에 대한 개입이 필요한 거다.


나는 대체 나의 역할이 어디까지일까 생각한다.

나는 그의 피고용자이고,

내 업무 범위는 그가 시키는 것들에 한하며,

나 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그렇기에 나는 모든 서면이나 답변이 나가기 전에

항상 그에게 확인을 받기 때문에

사건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질 수 없다.


나는 매번 최선을 다하겠지만,

매일 같이 나에게 연락 오는

서로 다른 의뢰인들이 수십에

진행 중인 사건만 해도 수십 건인지라

나도 실수를 할 때가 있고,

나의 판단이 최선이 아닐 때도 있을 것이다.


내가 물론 틀리지 않고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변호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나 혼자서 그럴 능력이 아직 부족한 거라면

이 사건을 자신의 이름으로 수임하고 진행하겠노라고 한

파트너 변호사가 함께 고민해주고

디테일하게 체크해줬어야 하는 거 아닐까.


나는 이제 만으로 2년 조금 넘게 실무를 해봤을 뿐이다.

나는 아직 성장할 여지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다.

특히 몇몇 의사 결정은 내 권한 밖에 있기 때문에

나에게 너무도 낯설고 어렵다.


이럴 때 어쏘나 파트너가 여러 명이었다면,

혹은 정말 믿을만한 직원이라도 있었다면 나았을까?

1인 어쏘로 정말 기댈 곳이 하나 없다고 느껴질 때,

참 똑똑하다고 느껴졌던 대표님이

무책임하고 정신없다고 느껴질 때,

나는 이제 이곳을 나가야할 때가 되었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개업해서 멋지게 내 사건 하고

내 고객이 생기고 내 시간 자유롭게 쓰면

그게 최고일 줄 알았다.


그런데 개업해서 10여년 동안 사무실을 잘 꾸려오신

우리 대표님을 보고 깨달아 버렸다.

이렇게 훌륭하게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개업변의 삶도

결코 멋지거나 화려하지 않다는 걸.


그저 더 많이 바쁘고 더 많이 정신 없고

더 꼼꼼하게 사건을 봐드리지 못하고

더 야무지게 사건을 분석하지 못하고

퇴근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일 뿐.


내가 지향하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희망찬 개업의 문은 닫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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