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감정이나 기분은 익히 잘 알고 있었고
때론 나쁜 생각이나 상상도 해볼 정도로
종종 내가 꽤 어둠 속에 들어간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내가 정말로 병원에 가야겠다고 결심한건,
다른 때였다.
기분을 넘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날 때.
머리로는 일어나야지, 힘내야지 마음 먹어도
도저히 몸이 일어나지지 않을 때.
내일부터 다시 재밌게 해봐야지 다짐해도
가만히 있다가 순간순간
울컥해져서 머리 끝까지 터져버릴 것 같고
어느 때에는 이 모든 걸 끝내려면
내가 없어지는 수밖에 없겠다 싶고
얽힌 것들을 풀 수가 없어서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꾹 눌려 죽을 것 같은 때.
이것들이 정말 내 몸에 나타날 때.
그때다.
너무 감사하고 기쁜 일들이 많은 요즘이지만
문득 해서는 안 될 상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갑자기 눈물이 미친듯이 머금어질 때,
나는 그 때가 다시 온 걸 느낀다.
그래 이건
무책임한 대표때문이야,
아니,
나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의뢰인 때문이야,
아니,
애초에 하기 싫었던 변호사 일 때문이야,
아니,
연약하고 못난 나 자신 때문이야.
탓하는 화살은 빙글 빙글 바뀌어 가다
결국 나에게 멈추어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