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맘대로 Aug 23. 2024

풍요롭고 안전한 사회의 역설

지금처럼 풍요로운 사회, 매우 안전한 사회에 태어난 아이들은 과연 그렇지 못한 과거 세대 사람들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어쩌면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별다른 갈등도 없이 모두가 그저 행복하고 별 일 없이 사는 모습을 찍은 영화를 생각해보자. 그런 영화가 재미가 있을까? 그런 영화를 찍는 감독과 배우들은 영화를 만들면서 신이 나기나 할까? 사람들이 좋아하고 몰입하는 영화는 살인자가 언제 튀어나와 주인공의 목숨을 위협할 지 모르는 영화, 끊임없이 쏟아지는 고난을 극복하고 마지막에 결국은 원하는 것을 성취해내는 영화다. 


갈등과 고통, 고난과 결핍은 충만한 삶을 사는데 있어 필수 요소다. 아무런 방해물도 없는 삶은 무료함과 나태함, 공허감만이 남는다. 안타깝게도 그냥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져 버렸다. 정확하게는 그런 인간들만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고 보는게 맞다. 우리 몸은 자주 굶주리고, 툭하면 맹수들의 습격을 받고, 각종 재난 상황을 극복하고 살아남아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삶의 만족과 충만함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와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부류는 인류 진화 역사의 어느 과정에서 도태되어 사라져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전쟁이나 가난, 다양한 재난과 인재가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결국 살아남는데 성공했다면, 자기 삶에 만족하고 삶의 의지를 갖기 쉽다. 그런 고난의 환경이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보상을 준 셈이다. 반면 풍요롭고 매우 안전한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삶의 목적을 잃고 쉽게 방황하며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공허감에 빠지기도 쉽다. 이것이 바로 풍요의 역설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착각한다. 과거 힘든 시절에 태어난 사람들보다 지금처럼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더 축복받고 더 많은 기회를 가지게 된 것 아니냐고. 이것이 그럴듯한 생각처럼 보이는 이유는, 과거 힘든 시절 사람들이 설정했던 목표가 지금의 풍요로운 사회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고난이 있고, 해결할 과제가 있으며, 그것들을 해결한 후 성취할 목표가 있을때 삶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존재다. 어떤 고정된 상황에서 만족하기 보다는, 더 나은 무엇인가를 꿈꾸며 나아갈 때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다. 전쟁이나 가난 같이 고통스런 상황이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겠지만) 그런 상황에선 '풍요로운 사회'를 간절히 꿈꾸게 되고, 그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더이상 고난도, 해결할 과제도 없거나 그리 크지 않으며 딱히 이루어야 할 절박한 목표도 없다. 


'여유 있게 살았으니 배가 부른 거다' 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역시 대단한 착각이다. 인간은 풍요롭고 안전한 곳에서 행복을 느끼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과거보다 '더 나은' 곳에 살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이 있을때 행복을 느끼는 존재라는 표현이 더 진실에 가깝지 않나 싶다. 


어떻게 보면, 전쟁과 가난은 그 시대를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축복의 환경이었을 수 있다. 지금의 풍요롭고 안전한 사회는, 지금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쉽게 불행을 안겨다줄 환경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을 직감적으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바로 그런 착각 때문에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못된 목표 -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누려야 한다는 - 를 설정하는 것일 수 있다. 


저출산이 과연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풍요롭고 안전한 사회의 결말이 국가 소멸일 수도 있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을, 이런저런 저출산 정책으로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풍요롭고 안전한 사회를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사회가 놓치고 있는 그 무엇 때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소멸하고 있는 과정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고생 안하고 자라서 결혼도 출산도 안하고 힘든 일도 안하려 든다' 라고 비난하는 것은, 그렇잖아도 삶의 목표를 잃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게 더 큰 부담을 짊어지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난하고 다같이 못사는 시절에 태어나 많은 것을 이루고 삶을 충만하게 살아온 기성세대들, 그들이 누려온 가장 큰 축복은 바로 '가난하고 다같이 못사는 시절에 태어난 것' 일 수 있다. 인류는 늘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서 살았기에 늘 그런 축복을 누리며 살았던 것이고, 이제 그 축복의 시간이 끝난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조직 문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