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글로 읽는 것과 영화로 보는 것 중 무엇이 더 어려울까. 나에겐 글이 더 어렵다. 영화는 감독이 정교하게 설계한 이야기를 따라가면 되지만, 글이란 놈은 작가가 아무리 잘 설계해 놓았다손 치더라도 독자가 종종 길을 잃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접촉이라는 측면에서 이미지가 텍스트보다 우위에 있음은 분명하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침투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빠르고 텍스트는 느리다. 왜 그럴까. 이미지는 편하고, 텍스트는 불편해서가 아닐까. 만들어진 음식을 먹는 손님과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의 차이처럼. 이질적인 생각이 마음으로 침투하는 순간. 이미지는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텍스트는 언제나 재구성한다. 그러므로 텍스트는 이미지보다 명백히 불리하다.
그러나 나는 글쟁이이므로, 텍스트의 장점을 외면할 수 없다. 느려터진 텍스트의 장점은 뭘까. 가장 먼저 글이 주는 자유로움을 꼽을 수 있겠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내가 읽고 있는 상황. 다른 작가의 생각을 내가 읽고 있는데 자유로움이라니. 잠깐 진정해 보시라. 내가 말하고 싶은 자유로움은 이런 것들이다. 작가와 내 생각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피어나는 생경한 생각들, 작가가 일부러 만들어놓은 구멍들을 내 상상으로 채워나가는 자유.
우리는 글을 읽을 때, 작가가 만들어놓은 감옥에서 글을 읽는 것은 아니다. 탈출할 수 없는 알카트로스 섬. 섬 자체가 감옥인 그곳의 철창에 갇힌 독자란 상상하기 힘들다. 좀 더 격하게 표현하면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작가의 심상이 생각으로 정제되고(1차 변형) 생각이 압축과 생략을 거쳐 글이 되며(2차 변형) 독자는 예쁜 디자인과 함께 포장된 글을 보고(3차 변형) 글은 독자의 경험을 통과하며 심상으로 각인(4차 변형) 되기 때문이다. (사실 더 많을 수도 있다)
작가의 생각이 100% 정확하게 독자의 마음으로 침투한다? 불가능한 이야기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왜곡과 변형이 수도 없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작가는 사실 알카트로스 섬만 만들었을 뿐이고, 우리는 마치 로빈슨크루소처럼 섬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상황이다.
예외적인 상황이 있다. 아주 가끔, 극소수의 어떤 작가는 섬에다가 감옥이 아닌 놀이공원을 만들어놓는다. 분명히 글을 읽고 있는데 작가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상상은 언제나 기억에 의존하는 법. 떠오른 이미지가 새로운 기의(記意)를 창조하는 순간이다. 작가는 그렇게 독자에게 저장된 기억을 호출하고 이미지와 텍스트를 씨줄과 날줄 삼아 이야기를 직조한다.
필연적으로 기묘한 혼종이 탄생한다. 기표가 새로운 기의를 창조하고 다시 기표에게 영향을 미치는 절묘한 순환. 이런 비형식의 형식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섬을 감옥이 아닌 놀이공원으로 만든다. 놀이공원은 안전하게 스릴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에너지를 뺏기면서 충전하는 기묘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피곤하면서도 즐거운 감정을 느끼는 것이리라. 자고 일어나면 내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충전시켜 주는 놀이공원 같은 글.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