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상이 Nov 02. 2023

*숙*그녀의 정체를 오늘 알았다

Friend 이백삼십 번에서  18

젊음은 기존 질서를 체계적으로 세우기 위해 混沌(혼돈)의 상태로

되돌아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관념 속에

또한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자 여기까지 왔고

무엇이 되고자 끝없는 정열로써 한 생을 불태울 것인가.

미친 척 비틀거려도 보고 취한 듯 날뛰어도 보아 그것이 젊기때문에

아름다움 사실을 부정할 자신이 있거든 부정해보자 ( 뭔소리인지 ...ㅋㅋ)

안녕,

승리와 성공을 위해 열심히 생활할 줄 널 생각하며

이글을 띄운다.     

버스 창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산과 들. 노을에 대한 향수를 만끽하며

푸르고 높은 창공을 바라볼 때의 가을에 대한 울렁거림을

느낀단다.

아침 저녁으로 을씨년스런 날씨가 가끔 우울하게도 만들지만

요사이는 꽤 유쾌한 편이란다.

공부시간에도 선생님과의 철학적인 대화라든가 아니면 지성이 넘치는 대화

모든 지식을 겸비한 전인교육에 관해 열심히 언급중이란다.

밤거리의 P의 거리는 더욱더 정다와 보이고 포근해져서

고향에 온 듯한 향수에 젖었었단다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기 위하여 씩씩하고 밝게 노력한단다


..... 중략.......   

  

에 내가 한 이야기들 농담이야. 한번 네가 어떻게 하나 볼라고

했어. 부담 갖지 말아라

괜히 고민 할까 봐 전하는 거야 ( 고백했었나?)

...

그럼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안녕

잊어가는 꿈나무 그늘 아래 *숙이가 너에게 희망을

꽃들에게 희망을  - 내가     

일천구백팔십년구월십일일목요일열한시오십분오십초    

  


         

오늘에야  알았다

이 편지의 주인공을

겉봉투에 ‘숙’ 한 자만 써서 보내거나

‘내가’ 라고 쓰거나

‘Friend 이백 삼십번에서’

이렇게 쓴 편지들이 모두 *숙 동일인이었다.     

그 ‘숙’은 나도 잘 아는 여자다.     


결혼 전에 길거리에서 남편과 대판 싸운 적이 있었다.

화가 나서 내가 씩씩대고 있는데

남편이 누군가를 향해 웃었다.

쳐다보니 그 ‘숙’이가 활짝 웃으며 남편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내가 쳐다보자 ‘ 숙’이는 얼른 높이 흔들던 팔을 내렸다.     

그때 그 행동이 나는 몹시 기분 나빴었다.

우리 셋이는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숙과 나는 선후배로 제법 친했는데 )

우리 둘이 같이 있는 걸 알면서

그녀는 남편에게만 손을 흔들다가 내가 쳐다보자마자 얼른 팔을 내렸다.


평소라면 내가 먼저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을 텐데

" 어디가는 거야?" 말을 걸었을 텐데

마침 우리는 거리에서 싸우는 중이었고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할 기분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화가 나 있는데

내가 옆에 있는데 나를 빼놓고 둘이 웃는다?

지금의 나 라면 그날로 당 헤어졌을 텐데......


남편과 살면서 수없이 크고 작은 일로 싸우기도 하고 큰일들도 있었을텐데

그 사소한 날 거리에서 그녀가 웃으 손을 흔들던 장면이 내게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 알았다.

이렇게 둘이 한때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였음을...  ( 물론 그들은 어렸다 아직 애덜ㅎㅎ)   

  

나는 왜 이런 남자와 결혼했을까.

왜 이런 남자에게 걸려들었을까.     


언젠가 아빠에게 불만이 많았던 작은 녀석이

화가나 씩씩대며 나한테 따지듯이 말한 적이 있다.


“ 아휴, 엄마는 왜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을 했어? 그렇게 남자 보는 눈이 없었어?  ”

......

나는웃으며  딸내미를 안아주고 얼굴을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이렇게 너를 만나려고 그랬지"


딸은 금세 화를 풀고 ( 그러나 웃지는 않고) 말했다

“그래. 알았어....”  

 그순간 딸에게서 아빠에 대한 미움이 사그라지는 것이 보였다.


나 또한 왜 이남자와 결혼을 했을까 생각하면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지금 나의 두 딸을 생각하면

어떻게 너희들이 내게 왔는가 생각하면

그 모든 미움과 서운함, 나 자신의 어리석음, 자학하고픈 마음까지도 소중해진다.


**숙

그녀는 내가 지금 이 편지를 간직하고  이렇게 공개하는도 모를 것이다.

그녀와 남편은 지금도 동창회에서 마주칠 수도 있을 것이다.

** 숙, 내 앞에서 제법 똑똑한 척 많이 해던 그 선배 ( 물론 아직 다들 어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그녀는 축하한다는 말도 한 번 안 했던 것 같다.

그 후 나에게 아는체도 안했던 것 같다.

우린 그래도 나름 친했었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