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ㅇㅇ
묵은해를 보내는데 많은 회오의 밤이 지루하도록
길었던 만큼이나 아쉬움을 남기고
가느다란 소망을 안고 맞이하게 되었구나
... 중략...
하얀 눈 속에 지난 1년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들을
묻어버리고 싶은 심정과 비례해서
하얀 눈 속을 배경으로 해서 거리를 헤매던
학교 생활이 그리워졌나 봐.
쨍쨍한 햇빛 속에서 소나기를 그리워하고
쏟아지는 소낙비 속에서 한 가득의 햇빛을 기다리는
것처럼 인간 본연의 마음일까.
... 중략...
이제 출발선에 선 마라톤 경기의 주자의 긴장된 마음으로
새해를 꾸려가자꾸나.
차분하게 성숙을 위한 기도도 드려가면서
여유를 갖고 생활하자고.
네가 지금껏 지녀온 지성을 고이 간직하면서
그 위에 차곡차곡 열은 하얀 소망을
얹으면서 꽃을 가꾸는 정원사의 마음으로
우리의 얘기들을 열어보자꾸나.
어떤 명확한 목적과 연결 속에 맺어지는 선보다
우연할 때 마음속에 남겨 놓은 점이
때로는 마음을 가득 채우는 현란한 추억이
되는 쪽을 더욱 훨씬 좋아지게 되는 때에
다시금 추억거리도 되살려 보기도 하고 말이야.
언제나 작은 기쁨으로 하루를 장식하는 친구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이 밤도 깊이 사색하는 하얀 소망으로 잠들길 바라면서
또 연락 주고
안-녕
1982 1.7
※ 생일 미리 축하해
나와 남편은 양가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다.
이 남자가 '나 아니면 안 된다'라고 강하게 나오니까, 그 신의를 지키는 것.
그것이 우리를 위한 옳은 길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양가 부모님이 반대해도 나는 이 사람과 함께 길을 따라나섰다.
살아가면서 사랑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아름다움이라 믿었던 상대에 대한 신의가
'오히려 죄악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말라"는 말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그때 저 사람의 사랑을 거절했다면, 우리는 서로 더 나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 기회를 내가 뺏었는지 모른다는 생각. 반대로 저 사람을 안 만났다면 나 또한 더 나았을 거란 생각.
그러나 더 살아가다 보니 이 또한 부질없는 생각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연습 없는 실전인 삶을...
여기 이 편지의 주인공은 가까운 경로로 남편을 한 번쯤은 만났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남편의 오랜 여친이었던 이 편지의 주인을 나도 잊지 않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