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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요니 Apr 20. 2023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은 그냥 월세 냈다고 생각하세요

전세사기 부동산 중개업자

4월 3일 월요일.

 집주인의 건물이 처음 경매에 넘어간 지는 2주, 우리 건물이 넘어간 지는 3일이 지나서야, 중개인은 경매사실을 알렸다. 그것도 하필 금요일에. 주말 동안 알아서 정보도 찾고 감정 정리도 하라는 의도였는지, 경매장보단 자신을 통해 알게 되는 게 그나마 나을 거란 배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중개사에겐 탁월한 선택이었다. 반대로 임차인들은 최악의 주말을 보내게 되었지만.


 주말 내내 머릿속을 뒤집어 놓은 온갖 추측들은 확인되지 못한  월요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고 지루한 주말이였다.


 드디어 월요일 아침. 먼저 중개인을 만나야 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성공시킨 미라클 모닝 덕분에 부동산이 열기까지 또다시 기다려야 했다.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애타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지난주 등록한 4  요가 수업을 들었다. 오랜만에 하는 운동이라 가벼운 동작에도 온몸에 자극이 왔지만 어떤 자극에도 집중할  없었다. 수업 시간은 분단위로 세어질 만큼 느리게 흘렀고, 이렇게 지루할  알았으면 차라리 집에 있을걸 하고 후회하는 사이 수업이 끝났다.


 다시 부동산을 찾았지만 여전히 문은 닫혀 있었다. 중개인은 30분은  걸릴 거라며 그냥 전화로 하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이미 이틀을 기다렸는데 30분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사이 주변 다른 부동산들을 방문했다. ( 동네에 부동산이 카페보다 많다는  처음 알았다.) 아무 부동산에나 들어가, 집주인을 아는지와 그의 매물을 중개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개중엔 집주인의 매물을 중개한 부동산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나를 꺼려하는 분위기라 은 건 없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김*희'의 부동산을 발견했다. 집주인과 같은 이름이었다. 집 근처에 공인중개사인 집주인의 부동산도 있었기에 이곳도 집주인의 부동산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김*희'는 동명이인일 뿐, 집주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수확이 아예 없지 않았다. 직업도 나이대도 같은 동명인 중개사는 집주인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었다.


1. 집주인의 대리인이 건축업자라는 것.

 동명인 중개사는 집주인의 대리인이 자신에게도 매물을 부탁한 적이 있었지만, 그가 업자였기에 거절했다고 했다. 나는 집주인이 건축업자라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전세사기가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요즘에는 집주인 직업 확인도 필수라고 한다. 부동산 경기가 나쁜 시대인만큼, 임대업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보다는 (공무원이나 회사원 등)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집주인이 선호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대리인은 '건축업자', 바지사장은 '부동산 중개업자', 모두 임대업자였다.


2. 집주인과 그녀의 대리인이 중개사들 사이에서 자취를 감춘건 작년 말부터라고 했다. 집주인을 비롯한 건축업자들이 줄줄이 무너져 내리는 추세라는 말도 덧붙였다. 임차인들은 아무도 몰랐지만, 사태가 이리될 것이라는 것을 이 동네 중개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


3. 근방에 있는 집주인 소유의 6개의 건물 주소도 알려주었다. 모두 도보가능한 거리였다.





 임대차 계약을 중개한 부동산이 열렸다. 중개인은 돌려받지 못할 나머지 보증금은 월세로 생각하면 그다지 손해 보는 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날뛰는 물가상승률만큼 하락한 현금 가치와, 예금만 해도 오천만 원이면 월 15만 원 이자가 붙는 고금리 시대임을 감안하면, 보증금을 모조리 돌려받는다 할지라도 이미 월세를 지불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애초에 전세의 이유가 월세를 아끼기 위함인데, 월세로 퉁쳤다고 생각하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위로라도 되는 것 마냥 말하는 뻔뻔한 태도가 어이없었다.


 그러면서 소송을 만류했다. 민사는 승소해도 돈을 돌려받을  있을 확률이 낮고, 형사는 증거불충분으로 기소조차 어렵다는  이유였다. 괜한  하지 말라는 은근한 뉘앙스에 반해, 근거는 명확했다. 그동안 집주인으로 알고 있었던 대리인 *진의 흔적은  어떤 서류에서도 찾을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이 *진이었다는 사실도 집이 경매에 넘어간 후에야 알게 되었다.) * 연락한 핸드폰, 부증금과 관리비가 입금된 계좌 명의까지 모두 집주인의 명의였다. 2년을 넘게 '*' '*' 알았을 정도로, * 흔적을 기 힘들었. 모순적이게도 명확함을 넘어 명쾌하기까지  중개인의 설명은 그들이 결백하다는 증거임과 동시에 처음부터 철저히 계획된 것이라는 고의성의 증거였다.


 임대차 계약서에도 문제가 많았다. 대리인이 계약을 진행할 경우 임대차 계약서에 대리인의 서명도 필요했지만, 계약서 어디에도 * 서명은 없었다. 또한  13호인 건물이 14호로 기재되었고, (최근 4 확정일자가 6순위였던 걸로 보아) 계약시점에서도 절반 이상이 전세였지만, 전세는 2개로 기재되었다. 하지만 전세기입은 임대차 계약서의 필수항목이 아니며, 임차인은 이를 공개할 법적 의무가 없음으로 위법도 아니었다.


 당시 전세가 2개라고 속인 중개인이라도 물고 늘어지고 싶었지만, 중개인은 '집주인이 그렇다길래 나도 그런 줄 알았다'라고 해명했다. 중개인이 김*희의 건물 대부분의 전세 계약을 체결했기에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심증일 뿐이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2년 전 세입자들을 찾아 중개인을 확인해야 했지만,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동명인 중개사 덕분에 알게  정보들을 늘어놓자 중개인은 그제야 (내가 아는 한에서만) 정보를 주고는 미묘하게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불리한 질문에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그런데,,,"라는 말로 대답을 이어갔다. 이미 녹취 중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덕분에 거의  시간에 달하는  시간 동안 같은 말만 반복되는 무의미한 대화만 이어졌다. 녹음을 종료하고, 마지막으로 중개인의 면허와 사업자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중개인은 갑자기 얼굴색을 바꾸며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이상 도와줄  없다' 정색했다.


 다음날 중개인은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이 아시면 놀라실까 봐 나에게 먼저 전화했다던 중개인은, 엄마에게 전화해 내가 형사소송을 준비한다는 것을 일러바쳤다. 그러고는 이런 식으로 나오면 자신도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다며, 협박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간 이상 중개인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아치피 불가피했지만, 전날까지만 해도 우리만이라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있도록 집주인을 설득해 보겠다던 중개인이 토록 빠르게 태세전환할 줄은 몰랐다.




 전세계약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중개인을 신뢰했다. 영리한 중개인은 누구보다도 임차인의 심리를 잘 알았다. 임차인들의 불안요소를 회피하기보단 먼저 언급하며 안심시켰고, 임대인보다 임차인의 권리를 우선시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2021 2, 동생의 대학 입학을 앞두고 부모님은 자취방을 구하기 위해 인천으로 올라왔다. 하지만 (본가가 있는) 경산과 인천을 하루만에 오가야 했기에 시간은 넉넉지 않았다. 인천아무런 연고도 없었기에, 부모님은 카카오맵에 가장 평점이 높은 부동산을 찾아, 세네 개의 방을 둘러보고는 오천짜리 방을 골랐다. 미추홀구에서 오천이면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지만, 정신병이 있는 동생을 위해 대학가 원룸치고는 조금  방을 구했다. 그래봤자 10평도   되는 원룸이었지만, 부모님이 인천에 오실 때면 하루 정도 자고 가기에도 충분한 크기였다.


 '2016년, 준공과 동시에 근저당이 잡혀있었지만, 근저당이 시세에 70프로 수준이며, 13호의 방 중 전세계약은 2개뿐이라 경매에 넘어간다 하더라도 보증금을 모두 회수할 수 있다'며 설득했다. 그 말에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바로 가계약금 500만 원을 입금하고 바로 본가로 내려갔다. 중개인 말만 믿고 속전속결로 진행한 계약이었다.


 내가 중개인을 처음 대면한 , 올초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한 세입자가 시세보다 싸게 내놓은 집에 임장을 다녀온 날이었다. 다음날 예정되어 있던 임장도 취소할 만큼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 그날 바로 부동산에 들려 계약서를 부탁할 , 근저당 없는 깨끗한 등기부를 내보였다. 그러자 중개인은    경매에 넘어간 같은 건물 2층의 낙찰가를 보여주며, 전세가가 매매가 보다 높으니 당연히 근저당이 없을 수밖에 없는 깡통전세라는 사실을 알렸다. 당시 중개인은 폭탄 돌리기에 열일인 세입자에게 속아 깡통 전세를 떠안을   상황을 막아준 구새주였다. 그러면서 비슷하게 좋은 조건의 매물을 소개했다. (결국  매물의 임장예약.) 중개인은  나지 않게 최대의 이익을 취할  아는 탁월한 장사꾼이었다.


 동생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중개인은 거짓말을 했다고 했다. (임장 왔을 때는 전세입자가 졸업해서 방을 뺀다고 했지만, 입주 때는 전세입자가 가족과 살게 되어 이사를 간다고 하는 등) 신경 쓰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사소한 거짓말들이, 더 이상 문제가 사소해지지 않은 이제야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집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아 미치겠다던 중개인. 하지만 (중개인에게 연락을 하면 집주인이 전화가 온다는 다른 피해자의 증언으로 보아,) 중개인과 집주인의 사이는 여전히 끈끈했다. 이제야 깨닫는다. 뱀의 혀를 가진 여우 같은 중개인에게 돈을 쥐어주는 건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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