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와 기억은 누구나 다 다르다.
나의 어렸을 적 가장 좋았던 기억 중 하나는 가족들과 바다와 산으로 캠핑을 다니던 기억이다. 지금처럼 캠핑 장비도 시설도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텐트와 부르스타만 들고 계곡이나 바닷가에서 가서 놀면서 간단한 찌개와 밥을 해 먹고 좁고 딱딱한 텐트 바닥에서 네 식구가 자고 오는 코스였지만 좋았었다. 답답한 도시와 집을 벗어나서 좋았고 바다와 계곡에서 실컷 놀 수 있어서 좋았고 밖에서 먹는 밥이 좋았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가족이 함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여름이면 우리 가족은 여름휴가로 당연히 작은아버지네 가족들과 같이 서해로 남해로 섬으로 시원한 계곡으로 캠핑을 다녔다. 어른이 되면서 달라진 점이라면 작은 아버지가 콘도를 분양받아서 더 이상 텐트를 들고 밖에서 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달라졌다. 두 가족은 바닷가가 보이는 콘도에서 편히 자면서 회를 사다 먹거나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서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의 오빠와 사촌오빠는 지금도 종종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만나서 캠핑을 가거나 콘도를 빌려서 같이 놀러 다닌다. 나에게 캠핑은 밝고 따뜻한 노란빛의 추억이다.
하지만 나의 남편에게 캠핑이란 우울하고 짜증스러운 회색빛 기억이다.
캐나다는 정말 자연이 예쁘고 캠핑하기 좋은 곳이 많다. 밴쿠버에 처음 와서 나는 남편에게 같이 캠핑을 가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별빛으로 가득한 밤하늘도 보고 싶었고 아무도 없는 조용하고 푸른 호수에서 같이 수영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편과 같이 나의 어린 시절의 좋았던 추억처럼 야외에서 캠핑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캠핑이란 단어에 그의 인상이 굳어졌다. 나와 달리 그의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다녔던 캠핑은 짜증 나고 힘든 기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기 방에 혼자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했던 그와 달리 아버님은 가족들을 다 데리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편하고 안락한 공간을 떠나서 좁은 텐트에서 가족과 함께 지냈던 그 시간이 너무나 힘들었고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나는 캠핑을 가면 한 텐트에서 아빠 엄마 그리고 오빠랑 같이 자는 것이 좋았다. 그게 불편하고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그를 통해 알았다.
그가 나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우리 가족이 작은 집에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그는 캐나다에서 집에 수영장이 있는 엄청 큰 집에서 살았었다. 부모님이 쓰는 방이 다른 층에 있는 큰 집에 살아도 그는 부모님과 같은 집에 있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24평의 작은 아파트에서 네 식구가 부대껴가면서도 편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우리 가족이 신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나와 결혼하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우리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결혼을 통해 둘 다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다른 것들을 배우고 있다.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나는 더 이상 캠핑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그를 통해서 나는 캠핑이라는 단어가 전혀 다른 기억과 느낌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고 사귀게 되면서 캠핑에 대한 또 다른 의미를 배우게 되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엄마랑 자란 A에게 캠핑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았던 경험 해보지 못한 꿈같은 단어였다. 이곳에서 제일 먼저 친해진 그녀에게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캠핑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캐나다에서 자라긴 했지만 부모님이 이민을 와서 바쁘게 살면서 캠핑을 다녀본 일이 없어서 그런지 캠핑을 가는 것이 귀찮고 싫다고 했다고 한다. 그녀와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는 두 남편이 친해져서 같이 캠핑을 가는 것이다.
그녀에게 캠핑은 영화에 본 낭만적인 핑크색 꿈같은 단어였다.
캠핑은 또 다른 누군가한테는 한 번도 안 해본 새로운 도전이자 아이들을 위한 사랑이었다. 십 대 싱글맘 밑에서 두 동생을 돌보면서 자랐던 그는 아빠에 대한 존재감도 기억도 없이 자랐다고 했다. 오히려 어린 나이부터 철없는 엄마 대신 밥 굶는 동생들을 위해 음식을 해주고 아빠처럼 돌보았다고 한다. 나는 그를 만나기 전에 나는 캐나다 사람들은 다 좋은 환경에서 풍요롭게 자랐다고 생각했다. 부모 세대도 아닌 나와 같은 나이의 캐나다 사람이 어린 시절 굶어가면서 동생들을 돌보면서 자랐다는 것은 나한테 새로운 충격이었다. 삶이 힘겨웠던 그에게 아빠와 가족들이 함께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캠핑이라는 단어와 기억은 일도 없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어느새 세 아이의 아빠가 된 그는 여름만 되면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몇 주 동안 캠핑을 다닌다. 좋은 캠핑카도 장비도 없지만 자신한테 없었던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그는 아이들과 함께 오래된 작은 차에 짐을 싣고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사람들이 모르는 자신들만의 캠핑장을 찾아 떠나간다. 한 번은 두 아들만 데리고 남자들끼리 밴쿠버에서 알래스카로 캠핑을 갔다가 전화도 안 되는 곳에서 차가 완전히 퍼지고 고장 나는 바람에 엄청 고생을 했다고 한다. 나와 친한 그의 와이프의 설명에 의하면 결국 고장 난 차를 팔고 세 남자가 완전 노숙인처럼 돼서 겨우 겨우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고 했다.
내가 캠핑을 좋아하는 이유는 늘 편하고 즐거웠기 때문은 아니다.
나도 어렸을 때 가족들과 섬으로 여행을 가면서 작은 배를 탔다가 배가 파도에 크게 흔들거려서 온 가족들이 다 멀미를 하고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투명하고 파란 남해 바다에 처음으로 놀러 갔을 때는 아빠가 나를 장난으로 바다에 빠뜨렸다가 물에서 못 나오고 죽을 뻔한 기억도 있다. 내가 캠핑을 좋아하는 것은 좋거나 힘들거나 그 모든 순간에 가족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힘들었던 순간마다 나에게 힘을 주었던 것은 함께 했던 가족들과의 기억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면 다 이겨 내고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을 나의 기억은 나에게 알려주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알게 된 것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한 번도 한해본 쉽지 않은 길도 노력하면서 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철없는 싱글맘 밑에서 아빠라는 존재와 경험을 티브이와 책으로 통해서 간접적으로 배웠을 그에게 아빠가 되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힘든 일이었을지 상상이 간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아빠와의 캠핑이라는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아빠의 그런 노력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캠핑을 가면 와이파이가 안 돼서 핸드폰을 하지 못해서 불편해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내가 그랬듯이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기억인지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힘든 기억이 있어서 다른 누군가는 해보지 않아서 혹은 귀찮아서 하지 않는 캠핑이라는 길을 그는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도전하며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그에게 캠핑은 희망을 주는 파란색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