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혜임 Aug 17. 2023

렘브란트의 마지막 그림

시므온의 찬양의 노래: 렘브란트가 목숨과 바꾼 그림

      장소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검은색의 배경 속에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노인이 있다. 노인의 옆에는 깊은 어두움 속에 검은 베일을 쓰고 어두움 속에 얼굴이 가려져 표정을 알 수 없는 여인이 있다. 깊은 어둠 속에 태어난 지 얼마안 된 어린 아기는 주변의 어둠을 밝히는 따뜻한 빛을 발하고 있다. 이 따뜻한 빛은 아기를 안고 있는 노인의 얼굴을 비추고 노인의 백발의 수염과 머리는 그 빛을 받아서 밝게 빛나고 있다. 그러나 여인과 가까운 쪽에 있는 노인의 얼굴은 살짝 어둠에 묻혀있다. 공손히 두 팔로 아기를 받쳐 들고 기쁜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의 노인과 노인의 품에 안겨서 순진하게 쳐다보고 있는 아이의 표정은 둘 사이의 관계를 궁금하게 한다. 노인은 주름진 두 손은 공손이 모은채 아기를 안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듯 입술을 살짝 벌리고 있다. 깊은 어둠 속에서 검은색 베일은 쓴 거 같은 여인이 어둠 속에 얼굴을 감추고 알 수 없는 표정을 하면서 아이를 쳐다보고 있다.


노인은 아기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있고 옆에 있는 여인의 표정은 왜 어둠 속에 잠겨 있을까?

여인은 슬픔에 잠겨 있는 것일까 아니면 함께 기도하는 것일까?

Rembrandt, Simeons song of praise, c. 1669. Oil on canvas, 98,5 cm × 79,5 cm

25. 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므로,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계셨다. 26. 그는 주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27. 그가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마침 아기의 부모가 율법이 정한 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28. 시므온이 아기를 자기 팔로 받아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29.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 주십니다.

30.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31.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32.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므온이 아기에 대하여하는 이 말을 듣고서, 이상하게 여겼다. 34. 시므온이 그들을 축복한 뒤에,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35.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25절-33절


    

    이 작품은 빛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t, 1606-1669)가 죽기 전까지 작업했던 유작인 <시므온의 찬양의 노래(Simeon’s song of praise), 1669>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성경 누가복음 2장 25절에서 33절에 나온 평생을 기다려온 그리스도를 성전에서 만나 기뻐하며 축복하는 시므온을 그린 작품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앙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성경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던 렘브란트에게 성경의 주제는 매우 매력적인 그림의 소재였다. 램브란트는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거나 성경을 읽고 있는 안나 선지자의 모습으로 어머니를 그려서 그녀의 깊은 신실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Rembrandt, Old Woman in Prayer, 1630(좌)/The Prophetess Anna (Rembrandt`s Mother), 1631(우)

그는 초상화가로 유명해진 뒤에도 그리고 사람들에게 잊혀 가던 노년에도 계속 성경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들을 남겼으며 죽기 한 달 전까지 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성전에서 평생을 기다려온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는 시므온과 안나는 렘브란트가 이전에도 그렸던 내용이었다.

Rembrandts,  (좌) Presentation in the Temple, 1628



약 40년 전 젊은 렘브란트는 <성전에 나타타심(Presentation in the Temple, 1628)>이란 작품으로 처음 시므온이 아기예수를 안고 축복해 주는 주제의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에서는 시므온과 아기 예수보다 뒤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고 놀라는 표정을 짓고 두 손을 들고 있는 나이 든 여인이 좀 더 그림에서 강조되어 있다. 이 여인은 누가복음 2장 36절부터 이어 소개되고 있는 안나라는 나이 많은 여자 예언가로 그리스도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증언했던 사람이다.


36.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로 안나라는 여예언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많았다. 37. 그는 처녀 시절을 끝내고 일곱 해를 남편과 함께 살고, 과부가 되어서,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왔다. 38. 바로 이때에 그가 다가서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였다.”

‭‭누가복음서‬ ‭2‬:‭36‬-‭38‬ ‭


Rembrandts, Simeons song of praise, 1631

3년 뒤인 1631년에 그려진 <시므온의 축복의 노래(Simeon's Song of Praise)>는 웅장한 성전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위엄 있는 표정의 시므온이 수많은 성전에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빛을 발하는 아기 예수를 안고 하늘의 쳐다보며 기도하고 있다. 안나 선지자는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붉은색 수놓아진 실크로 된 것 같은 옷을 입고 한 손을 들고 놀란 자세로 아기 예수를 쳐다보며 뒤를 돌아선 모습으로 그려졌다.

Rembrandt, Simeon holds the infant Jesus in his arms. Etching by Rembrandt, ca. 1639

1639년에 그려진 에칭 판화 작품에서도 렘브란트는 성전에서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아기 그리스도를 안고 축복하고 있는 시므온과 안나를 그렸다. 아기 예수를 쳐다보고 두 손을 들고 서있는 베일을 쓰고 있는 여인 뒤에는 하늘의 빛을 받아서 빛나고 있는 성령의 비둘기가 그려져 있어서 그녀가 성령이 함께한 선지자 안나임을 알 수 있다. 성령에서 시작된 빛은 아기 예수님을 밝게 비추고 있으며 그 빛은 시므온을 비롯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밝게 비추고 있다.

    화려한 성전의 배경과 많은 사람들을 그렸던 예전의 그림들과 마지막에 그린 작품에서는 모든 배경과 사람들이 사라진 채 어둠 속에서 노인과 표정과 나이와 표정을 알 수 없는 여인 그리고 아기 만이 그려졌다.

Rembrandt, Simeons song of praise, c. 1669. Oil on canvas, 98,5 cm × 79,5 cm

    렘브란트는 죽기 한 달 전까지 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죽기 전에 그를 방문했었던 제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렘브란트는 어둠 속에 있는 노인이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시므온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 달 뒤에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고 그가 죽은 뒤에 다른 제자가 그림에 베일을 쓴 여인을 그려서 그림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렘브란트의 이 작품이 나에게 예술가의 혼이 담긴 슬프면서도 기쁨과 희망이 담겨 있는 명작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목숨과 바꿀 만큼 소중히 여기며 완성하고자 했던 그림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제일 잘 나가는 작가로 빛나는 젊은 시절 돈과 명예를 얻으며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승승장구했던 렘브란트는 노년에 모든 희망과 빛이 사라지고 어둠에 묻힌 것처럼 모든 것을 잃은 채 파산하고 유대인 지구 빈민가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63세에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끼니를 때우지 못할 만큼 형편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이 그림을 팔지도 않고 먹을 빵을 살 돈도 없으면서도 비싼 물감을 가지고 마지막까지 이 그림을 그리다가 쓸쓸히 눈을 감았다. 그의 죽음의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방문했을 때 그는 끼니를 때우지 못할 만큼 힘든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굶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축 하는 사람들도 있다.

    솔직히 지금도 유화 물감을 사용해서 1미터 가까이 되는 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려면 한 끼 밥을 사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아니 한 끼가 무슨 말인가?! 어쩌면 일주일이 넘게 버틸 수 있는 빵을 살 수도 있는 돈이다. 지금도 그림을 그리는 재료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먹고사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사치스러운 물건이다. 먹고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물감과 캔버스를 사서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른다. 십 년 전 갤러리에서 일할 때 대학원을 졸업한 젊은 작가들 작품을 공모해서 전시했던 적이 있었다. 그중 작품이 매우 특이하고 좋았던 한 작가가 있었다. 조선족 출신으로 홀로 한국에서 생계를 이어가며 좋아하는 그림을 그렸던 그는 학비와 캔버스와 물감을 살 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전시 오프닝 날 깡마르고 작은 체구를 가진 조선족 사투리로 수줍게 얘기하는 작가가 안타까웠다. 마음을 담아서 그의 그림을 설명하고 팔아주고 싶었지만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그의 그림은 뜻대로 팔리지 않았다. 지금도 미술 작가가 되어서 원하는 그림을 그려서 먹고산다는 것은 솔직히 여유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렘브란트가 살았던 16세기 네덜란드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파산하고 빈민촌에 살았던 렘브란트는 그는 그림을 완성하는 것을 포기하고 모든 물감과 캔버스를 팔아서 끼니를 때우면서 버틸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죽기 한 달 전 제자들이 방문했을 때 완성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에게 가끔 그림을 의뢰하는 후원자에게 이 그림을 팔아서 얼마의 돈을 벌 수도 있었다. 결국 이 그림은 마지막까지 그가 놓은 수 없었던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돈과도 바꿀 수 없었고 꼭 완성하고 싶었던 소중한 그림이었다.


 무엇이 그에게 이 그림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었을까? 밥도 먹지 못하는 가난한 상황에서 눈도 침침한 60대가 넘은 노인은 왜 계속 이 그림을 놓지 못하고 그리고 있었을까? 렘브란트는 이 그림을 통해서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을까? 성경의 여러 주제 중 왜 렘브란트는 시므온과 아기 예수를 선택했을까?


이 그림은 나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며 나는 점점 더 이 그림을 사랑하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