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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든 Nov 30. 2019

도련님

백구 잡문집

도련님



  마산은 남해의 파란 물을 모아 담은 조촐한 어항(魚缸)이다. 앞바다가 내륙 깊숙이 들어와 있고, 수면이 호수처럼 잔잔해 어항(漁港)으로 발달하기 적합한 도시다. 도련님은 그곳에서 나고 자랐다.




꼭두새벽마다 마산항이 고깃배의 접항으로 소란해지면, 인부와 아지매들이 어류와 어패류가 담긴 나무상자를 육지로 나른다. 푸른 가스등 아래로 그들의 잔상이 분주하고, 등과 겨드랑이는 땀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액체로 흥건하게 젖어있다. 소금기 가득한 어시장의 공기, 일사 분란한 상인들의 움직임. 새벽을 여는 풍경이었다.


바다가 도토리묵에서 청포묵으로 그 색을 바꾸면 경매시장이 열린다. 빨간 고무다라이 속 물고기들이 생의 마지막 발악을 꾀하고 있다. 경매사는 확성기를 들고 주문 외우듯 가격을 부른다. 손님들은 지폐를 흔들고, 도련님의 부모님도 그 속에 섞여 있다. 생선들이 도매나 소매로, 이 집 저집으로 팔려나간다. 도련님은 그때 부모님이 떼 온 고등어, 갈치, 조기, 명태, 아귀, 오징어를 먹고 학교를 다녔다. 새벽부터 굳이 경매시장에 나가 물고기를 사 오는 이유를 물으면 부모님은 항상 "그래야 싸니까요."하고 대답했다.




이 풍경들이 펼쳐지는 동안 도련님은 잠을 자고 있었다. 세상 모르고 쿨쿨 자고 있었다. 도마에 칼 부딪히는 소리, 쌀 씻는 소리, 무언가 지지고 볶는 소리, 찌개가 끓는 소리가 모두 들려야만 도련님은 이불 속에서 기어 나온다. 도련님은 절대로 부모님보다 먼저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식사 준비도, 빨래도, 집 안 청소도 할 줄 몰랐다. 말 그대로 '도련님'이었다.


도련님은 가끔 고상한 시를 썼다. 대부분 대화만 있고 행동이 없는 속 빈 강정 같은 작품이었다. 풋내가 진동했다. 삶에 대한 현실적 고민 없이 땀내 나는 글을 써내는 것이 가능할 리 없었다. 도련님은 행동을 묘사하는 것에 늘 애를 먹었다. 앉아서 입만 놀렸다. 떠들기만 했다.




아침 메뉴는 고등어 자반이었다. 자반은 도련님의 살찐 자의식만큼이나 기름졌다. 늙어가는 어머니는 쌀밥 위에 고등어 살점을 올려 도련님의 입에 넣어주었다. 


도련님은 손이 없는 게 분명했다. 자기 입에 들어오는 음식을 보지도 않고 책을 읽고 있었다. 우물거리던 도련님이 말했다. "껍질은 비리니까 떼고 주세요." 늙어가는 어머니가 안타까워했다. "도련님, 등 푸른 생선의 영양분은 껍질에 다 있는데 말이죠." 벗긴 껍질은 차곡차곡 그녀의 밥그릇에 쌓였다. 도련님은 깨작대다가 금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는 도련님이 남기고 간 밥을 위장으로 설거지하기 시작했다. 꾸역꾸역, 식은 밥 위에 비린내 나는 고등어 껍질을 올리고 한 숟갈씩, 밀어 넣었다.


공부하는 게 무슨 벼슬이라고 우리 도련님, 참 얄밉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2009)를 보며 어머니와 도련님을 떠올렸다. 마더(김혜자)가 담벼락에 노상방뇨하는 모자란 아들 도준(원빈)의 입에 한약을 떠먹이는 장면에서 특히 그랬다. 


아들의 시원찮은 오줌발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기어코 한약을 다 떠먹이려는 마더와, 채 다 먹지도 않고 훌쩍 떠나버리는 아들. 아들이 떠난 자리를 널빤지로 슬쩍 덮는 마더와, 밤마다 늘어진 마더의 젖가슴을 조물락거리는 커다란 아들.


도준을 모자란 청년으로 설정한 것이 신체적 장애를 넘어 부모의 눈에는 으레 모자라 보일 수밖에 없는 자식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그런 바보 같은 자식보다 더 '바보'인 마더는, 못난 자식을 위해서 본인의 인생을 기꺼이 희생한다. 심지어 그 자식이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라 해도 말이다.




모성애가 뭘까. 피나 혈육이 다 뭘까. 그런 게 대체 뭐길래 마더(mother)가 머더(murder)하도록 만드는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모성애의 신화는 한 여자를 어머니로 만들어놓더니 이제는 광기어린 마녀의 탄생을 종용하고 있다. "모성이 과연 아름다우냐, 혹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냐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에는 모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날선 비판이 담겨있다. "우리가 아무리 모자 관계를 신비화시키려 해도, 그것은 결국 인간과 인간의 관계일 뿐"이다.


내 어머니는 확실히 '현모양처'다. 모성애의 신화에 젖은 희생자라는 뜻이다. 나는 그녀가 그 굴레에서 벗어나본인의 삶을 회복하길 바랐다. 어머니는 "네가 학교만 졸업하면, 군대만 전역하면, 취업에만 성공하면, 결혼하고 애만 낳으면……" 하며 아직도 불 앞에서 땀 흘리며 고등어를 굽고 있다. 내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진심으로 걱정하며 그런 소리 마세요, 한다.




도련님은 어릴 적부터 다져온 그 뻔뻔스러움을 한번만 더 발휘하기로 결심한다.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말이다. 


어머니, 저는 현모양처라는 단어가 불편합니다.


물론 감정표현이 서투른 도련님은, 그 말을 "시발, 엄마같은 여자랑은 절대 안 만날거야!"라는 문장으로 바꿔 뱉어버렸다. 귀엽게 봐주려 해도 병신같은 우리 도련님은, 결국 또 도련님이었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도련님이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으니, 모성애가 낳은 아이러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어머니가 도련님의 실체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이면 무조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어머니의 말은 도련님을 납득 시키지 못했다. 다소간 오해했기 때문에 가능한 사랑이었다고, 도련님은 확신한다.


이해받지 못하면서 사랑받는 그 부조화는 괴롭다. 이해와 사랑을 동시에 얻는 것은 불가능하구나, 다소간 체념하면서 사회생활을 할 때도 둘 중 하나를 포기하게 되는 것을 자연스러운, 혹은 불가피한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도련님은 사랑 받지만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알게 모르게 그들의 품속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사실 그 외로움도 가짜일지 모른다. 어쩌면 오해는 사랑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일 수도 있다. 오해 없는 사랑은 불가능한 것이며, 어느 정도 오해를 동반해야만 사랑이 되는 것임을 간과한 탓에 외로웠던 것일 수도 있다.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린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또 외면할 수도 없다. 사랑은 다소간 오해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도련님도 모르지는 않았다.


하루는 어머니의 안부가 궁금해 전화를 했다. 어머니가 도련님을 모르는 것만큼 도련님 역시 어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추상적인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집에서 고등어의 껍질을 먹어 보았다. 고소했다. 영양이 몰려있는 그 고등어 껍질이 어릴 땐 왜 그렇게 싫었는지……. 온통 나에게 몰려있는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이 불편했던 탓일까.


나는 모성애가 불편하다.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 어머니가 불편하다. 그런 채로 또 사랑을 넙죽넙죽 받고 있는 내가 불편하다. 역시 그 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것은, 불편해하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 나다. '도련님' 이다. 평생 등 푸른 생선 굽다 등 굽은 어머니. 당신의 변하지 않는 마음과 변해가는 몸. 도련님이 할 수 있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고상한 글을 끄적이는 것밖에는 없었다.


어머니가 도련님의 뺨을 매만진다. 손에서 물 비린내가 난다. 모성의 채취였다.  <끝>



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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