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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든 Nov 30. 2019

아귀

백구 잡문집

아귀



  '무진, 앞으로 10km.'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 속 '나'는 서울이라는 일상에서 벗어나 무진이라는 탈일상의 세계로 향한다. 무진은 꿈같이 아늑한 곳이지만 영원히 머무르기 위한 장소는 아니다. 말 그대로 꿈같은 곳이다. 어쩌면 그것은 악몽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언젠가는 깨어나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내게도 무진과 같은 공간이 있으니, 고향인 마산이다. 마산은 내가 실패할 때마다 도피하듯 내려가는 공간이자, 성공을 위해 떠나야만 한다고 생각되는 곳이었다. 헌신하는 부모님이 계신 그곳을 나는 다소간 그런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었다.


수면제 같은 물안개 자욱한 그곳에서 나는 나태한 몸을 소파에 파묻는다. TV 채널을 돌리며 "요즘은 옛날만큼 볼 게 없어." 하고 말한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측은히 여겨 차마 핀잔주지 못하고 그저 밥이나 과일 따위의 주전부리를 끊임없이 날라다 주었다. 밖에서 얼마나 고생했으면, 또 얼마나 쪼들렸으면, 하며 최선을 다해 나의 무능력을 이해해보려는 것이었다.




"친구라도 만나지." 아버지가 참지 못하고 타이른다. 도련님은 한숨을 쉰다. 부자지간이지만 몰라도 정말 너무 모른다고 생각한다. 도련님은 소설 속 '나'와 달리 고향에 친구가 없다. 이곳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다녔으나 남은 몇몇 친구들의 연락도 끊긴 지 오래였다. 물론 도련님 쪽에서 먼저 끊었다. 잘 지내는지 안부가 궁금한 친구가 이곳에는 없었다. 연고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도련님은, 그러니까 나는, 철저하게 이 지역의 이방인이었다.


언제나 여길 뜨고 혼자이고 싶었다. 이왕이면 서울로, 그래, 서울로 가고 싶었다. "나도 미세먼지 마시고 싶어! 지옥철의 혼령이 되고 싶어!" 한때 서울병이 도져 이렇게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서울에는 내가 글 쓰며 사귄 문우들과 재수 생활을 함께 보낸 학우들이 있었다. 그들은 적당히 혼자인 것처럼 보였고,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반면 마산 사람들은 서로가 너무 끈끈했다. '정'이라는 이름 아래 똘똘 뭉쳐 혼자서 외로워할 틈을 주지 않았다. 명절마다 뒷굽이 접힌 검은 구두들이 신발장에 시체처럼 쌓이는 게 부담스러웠다. 혼자 밥을 먹고 있으면 "왜 왕따처럼 혼자 먹고 있니?" 하며 걱정해주는 그 말들이 불편했다. 그들은 늘 내 곁을 채워 주고 싶어 했다. 호의가 계속되자 기분이 구렸다. 사나이들의 뜨거운 우정 같은 건, 정말이지 내 체질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소파에서 나를 파내 손톱을 잘라주었다. "도련님, 혼자 자를 때 너무 짧게 자르지 마세요. 손톱이 살을 파먹고 들어가요." 가볍게 타이르고 금새 귀이개도 들고 와 능숙한 솜씨로 나를 무릎에 누인다. "이어폰 끼고 자는 습관 아직도 못 고쳤어요? 그러다 귀 나빠져요." 부스럭거리며 귀지가 빠져나가자 어머니의 잔소리가 더욱 잘 들려왔다. 정말 마산에 왔구나, 실감이 났다. 


어머니와 도련님은 함께 소파에 누웠다. TV 화면에는 무엇이든 맛있게 먹는 녀석들이 나오고 있었다. 어머니는 습관처럼 "도련님이 바깥에서 못 먹고 다녀서 너무 말랐다"고  중얼거렸다. 그녀는 늘 바깥 음식을 신뢰하지 않았다. 나는 젖가슴의 온기를 느끼며, 죄송하다고 중얼거리다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꿈에 어시장을 활보했다. 가판대에 반으로 갈려 내장을 드러내고 누운 아귀들이 보였다. 다른 생선들과 달리 그 생김새가 너무도 처참해 꼭 해부된 시체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먹고 자란 물고기 중에 가장 나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건 바로 그 아귀였다.


아귀는 경상도 말로 '아구'다. 그래서 마산 명물이 아귀찜이 아니라 아구찜이다. 원래부터 아구가 명산물이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옛날에 이 지역에서 고깃배 몰던 어부들은 아구가 생김새도 흉측하고 크기에 비해 먹을 것이 없어, 그물에 걸리면 곧장 떼어내 배를 가르고 그 속에 있는 생선들을 꺼낸 뒤 물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천대받던 아구는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콩나물과 미나리라는 킹메이커를 만나 이 지역의 올타임 넘버원 맛스타가 되었다. 이거야말로 인간승리, 아니 아구승리다. (물론 아구 입장에서 보면 비극이다.)




그러나 마산 아구찜은 실제로 먹을 게 별로 없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시장님!) 투명하고 굵은 뼈에 붙은 살점을 몇 번 뜯다보면 어느새 찜 접시 위에는 양념 묻은 미나리와 콩나물만 가득 남는다. 먹은 살점보다 버리는 뼈가 더 많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니까, 멍하니 양념 묻은 손가락만 쪽쪽 빨다가 괜히 인간의 탐욕이나 끝없는 욕망 같은 이상한 상념까지 떠올리게 만든다. 실제로 그물에서 건져 올린 아귀의 배를 갈라보면 자기 몸보다 더 큰 생선 혹은 부산물이 가득 들어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꼭 내 뱃속을 해부해놓은 것 같아 헛웃음 짓게 만들었다.


입 안 가득 아구 살점을 넣고 못생긴 얼굴로 우물거린다. 어머니는 옆에서 푸른 미나리만 아삭아삭 씹고 있다. 불교의 세계관에서 탐욕으로 업보가 쌓인 중생을 '아귀'(餓鬼)라고 부른다던데, 혼자 아구를 독차지하고 먹는 도련님의 모양새가 딱 그렇다. 어머니 입에 한 점 넣어드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도련님은 자식을 위해 스스로를 버리는 부모가 안쓰럽고 심지어 밉다. 그리하여 괜히 더 많은 살점을 본인 입에 쑤셔 넣으며 자식이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부모 배도 든든해진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꾸역꾸역 입증하고 있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마산명물 아구찜 거리.'




복귀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도련님은 입가에 고춧가루를 묻힌 채 휴대폰 메모앱에 무엇인가 열심히 쓴다.  '부모의 삶은 온통 나로 채워져 있고, 내 삶도 오로지 나로 채워져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일기였다. 일부만 살펴보면 이랬다. '나로 가득한 세상이므로 수많은 물고기를 씹고 뜯어도 내 마음에 누군가가 들어올 틈은 없었다. 내 입 속에 내가 넘어져 있어서,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그렇게 먹어대도 결국 내 몸에는 비린내 비슷한 냄새조차 배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내가 마산이라고 대답하면 "그런데 사투리를 전혀 안 쓰시네요?" 하며 깜짝 놀란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무언가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어디서나 이방인이 되어 버리는 기분이었다. 함께 한 시간이 쌓이면 마음이 깊어진다는 통념과 반대되는 삶을 산 것이, 그 통념 속에 내가 포함되지 못한다는 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상처로 집 짓고 있었다.


고속버스터미널 보인다. 조금 전까지 내가 마산에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결국 또 서울이었다.   <끝>



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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