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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 Apr 15. 2016

아워북스 #39 - 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 김연수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곳은 소란스럽고 바쁜 뉴욕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자리한 작고 작은 나만의 보금자리. 지금은 회사일로 정신없을 하루 중 지켜낸 소중하고 소중한 자투리 시간. 벚꽃은 피기 시작했다지만 아직 제대로 본 적 없고, 봄이 오고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아직은 겨울 코트를 입어야 하는 그런 날이다.


뉴욕에 온 후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석사 학위를 받았고, 세 번의 이사를 했고, 세 번째 회사를 거쳐서 새로운 회사에 출근한지 한 달 하고 반이 지났다. 그동안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났고, 시간을 쌓았고, 떠나보냈고, 아쉬워했다. 채 돌아볼 여유도 없이 흘러간 시간 동안, 내가 만든 제품이 출시되거나 공모전에 당선됐을 때는 짜릿한 희열을 느끼기도 했지만, 너무 창피해서 숨어버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열 번 정도는 세상이 끝난 듯이 울었던 것 같다. 매일의 일상을 기록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의미를 아직은 이해할 수 없어 제대로 표현하고 정리할 수 없는 이유는, 왠지 말하기도 어색한 ‘청춘’이라는 시간을 지나는 중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래도 스무 살 무렵보다는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게 많아졌으니 계절이 변하는 시간에 조금 더 가까워진 걸까. 그런 혼란 스라운 시간을 보내는 중에 아워북스를 통해 ‘청춘의 문장들’이라는 책을 만났다.


반짝반짝하고 아날로그 사진 같은 파스텔 빛 청춘을 생각한다면 약간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같기는 한데 도대체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고, 하고 싶어도 돈이나 기회가 없어 할 수 없는 그런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시간이 너무 많아서 도대체 뭘 하며 채워야 할지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하기는 해야겠고, 사랑인지 아닌지 헷갈리지만 누군가를 만난다. 돈이 없어서 살던 달동네 단칸방의 궁상맞은 시간들도 되돌아보니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첫사랑, 첫 등단, 첫여름, 첫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에게 와 닿은 고시와 엮어 이야기하고, 그 모든 시간들 후에 작가는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한 마음도 엿볼 수 있다.


정신없이 폭 빠져서 읽으면서 나도 도넛이 된 것처럼 마음이 텅 비었다가, 깔깔 거리며 웃다가, 말 참 예쁘게 하네 감탄하고, 또 나의 마음을 대신 표현해주는 것만 같은 문장들에  많이 공감했다. 마지막 장을 읽고 뭔가 아쉬움이 남아서 다시 읽어보니 벌써 옛날 사진을 보는 것처럼 아련하다. 지식을 전달하는 글이었으면 이러 이런 걸 배웠지 라며 요약이라도 할 텐데 사진처럼 찰나와 같은 순간을 포착해 놓은 글이라서 요약할 재주는 없고, 마음에 쿵하고 와 닿았던 문장들을 옮겨 놓는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을 이루지 못한 나이. 그 누구와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으나 다음날이면 남남처럼 헤어질 수 있는 나이. 그래서인지 우리는 금방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친해질 수 있었다.

- 등나무엔 초승달이 벌써 올라와 136p


아직 나이가 어린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 당시만 해도 나는 내가 서른 살이 넘어서까지 살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내 계획은 정확히 입대할 때까지만 세워져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20대 후반까지는 간신히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지만, 서른 살 너머까지는 무리였다. 그러므로 서른 살 이후라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내가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 살 그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

- 이따금 줄 끊어지는 소리 들려오누나 122p 


그해 겨울, 나는 간절히 봄을 기다렸건만 자신이 봄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만은 깨닫지 못했다.

-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131p


그리고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빵집 아들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한 시절들, 내가 사랑한 사람들, 내 안에서 잠시 머물다 사라진 것들, 지금 내게서 빠져 있는 것들... 이 책에서 나는 그 일들을 적어놓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일들을 다 말하지는 못하겠다. 내가 차마 말하지 못한 일들은 당신이 짐작하기를. 나 역시 짐작했으니까.

- 한 편의 시와 몇 줄의 문장으로 쓴 서문 7p 


그리하여 나도 얼른 6학년이 되어 수학여행을 가리라 결심했다. 간절히. 손꼽아. 그리고 세월은 흘러갔다. 책을 사고 싶으니 돈을 달라고 말하면 늘 돈과 함께 나오던 어머니의 한숨마냥 느릿느릿. 읽은 책을 또 읽고 또 읽고 또 읽어서 결국에는 다 외워버릴 정도가 될 정도로 느릿느릿. 그렇게 천천히 세월이 흐르고 나자, 나도 동네 꼬차녀석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수학여행을 가게 됐다. 재촉하는 만큼 빨리 흐르지는 않는다고 해도 나이가 들고 싶다는 아이의 소원쯤이야 들어준다는 것, 삶이 너그러운 건 그때뿐이다.

- 검은 고양이의 아름다운 귀울림 소리처럼 2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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